12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6자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지난 7월 수석대표 회담 이후 5개월 만이다. 그런데 이보다 1주일 앞서 북한은 지난번 경고했던 남북관계 엄격 제한 및 차단에 들어갈 예정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국제관계의 '극적인 엇갈림'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극적인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면 이러한 엇갈림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임기 말에 몰린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 2단계 이행조치를 마무리하고 검증 논란을 매듭지어 '북핵 해결'에 크게 기여한 정권으로 평가 받고 싶어 한다. 내년 1월 20일에 출범할 오바마 행정부는 "거침없고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포괄적인 해법을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북미관계와 6자회담의 급진전이 예상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역주행을 거듭해온 남북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달 '남북관계 전면 차단'을 경고한 북한은 '1차적'으로 12월 1일부터 개성관광 및 남북 철도운행 중단, 개성공단 남측 인원 감축 등 '고강도' 차단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전면 중단될 처지에 몰렸고, 개성공단 역시 고사 상태에 빠져들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조치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심각한 유감"을 표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 대통령의 지침을 고수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하나씩 풀어가는 수순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남북이 생산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연합뉴스 11월 24일)은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려고 하는 의지가 과연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거듭 갖게 한다.
자유민주주의로 통일?
특히 북한이 11월 12일 남북관계 엄격 제한 및 차단 방침을 경고한 이후 나타난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오늘날의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북한이 강력하게 문제 삼은 삐라 살포와 관련해 정부는 강력한 제지 움직임을 보이는 척했지만 결국 경찰의 호위 속에 삐라 살포는 강행되었다. 또한 최초로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한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한 대표적인 경우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 방문 기간 중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 목표"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통일 대상으로 언급된 북한은 이 자체로도 자신의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흡수통일을 시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김정일 위원장 건강이상설과 작전계획 5029 추진, 삐라 살포 행위 방조, 대북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등과 맞물려 있다. 북한으로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을 더욱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구나'라는 탄식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6자회담, 역주행하는 남북관계 멈춰 세울까?
그렇다면 실 끝에 매달린 남북관계를 구할 계기는 없을까? 일단 벼랑 끝 전술을 통해 극적인 반전을 모색하는 데 익숙해 있는 북한이 일방적인 양보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기다림의 미학'을 엉뚱하게 적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기대하기도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색국면 타개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대북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추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설사 남측에서 특사를 보내려고 해도 북한이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화 채널의 복원 수준이 아니라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 전면 전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희망의 실마리는 베이징 6자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시나리오는 이번 6자회담에서 검증 논란과 에너지 제공 문제를 매듭짓고 3단계 협상의 기초를 닦아,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 방지와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검증 논란과 관련해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조속히 에너지 자재 제공을 마무리 짓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공정한 중재자 역할이란, 초기 검증 조치는 7월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결과 및 10월 초 북미간의 평양 합의에 기초해 마련하되, 논란이 되고 있는 시료채취는 북한이 추후에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6회담 진전에 따라 추가로 협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가 계속 지연하고 있는 에너지 자재 제공도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업적 빈곤증에 허덕이고 있는 부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오바마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북한의 대남 인식 전환 및 신뢰구축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명박 정부가 체면을 살리면서 실질적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1석 3조 효과는 한미공조를 튼튼히 하면서 남북관계도 정상화할 수 있는 '확산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반대로 12월 8일부터 열릴 6자회담이 남북관계 파국에 쐐기를 박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검증 합의서에 시료채취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의 시료채취 수용 여부를 에너지 자재 제공과 연계시키는 경우에 이러한 사태는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악수(惡手)는 부시를 빈손으로 백악관에서 떠나게 만들면서 백악관의 새주인에게 큰 부담을 떠넘기고, 북한의 대남 불신을 극대화시키며,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안팎에 천명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위기 뒤 극적 반전? 공짜는 없었다!
정부 일각에서는 한참 위기가 고조된 이후에 "생산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전쟁위기까지 치달았다가 제네바 합의로 귀결된 1994년, 금창리 핵의혹 시설과 대포동(광명성) 1호 발사로 위기가 고조되었다가 페리프로세스 도출 및 북미관계 급진전이 이뤄졌던 1998-2000년, 북한의 미사일 및 핵실험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 뒤따른 2006년 등은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가 기회로 반전된 데에는 그만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4년에는 지미 카터의 방북, 1990년대 말에는 김대중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2006년 말에는 부시의 대북정책 전환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위기 국면을 타개할 실질적인 조치에는 눈감으면서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상황 악화를 자초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회는 6자회담에 있다. 다른 기회를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 회담에서 남북한 대표가 시료채취 및 에너지 자재 제공을 둘러싸고 말싸움을 벌인다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중간에 서 있는 남북관계는 그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반면 위에서 제안한 것처럼 남측 대표단이 공정한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해서, 북측 대표단의 눈과 귀를 의심케 만든다면, 남북한은 일단 다리 위에서 멈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요 기사]
☞ "폭락 끝, 이젠 상한가?" '미네르바' 경제전망, 틀릴 수도 있지만...
☞ "강만수 대신 미네르바를"... 신뢰 잃은 장관과 아고라의 경제 대통령
☞ "새차 목숨 걸고 타라?"... 차 중대 결함 세 번까지는 교환 불가
☞ 기자→ MB특보→ 언론사 사장은 '불법유턴'
☞ [블로그] 전경련 회장단회의 '와인'이 한국 경제지표?
☞ [엄지뉴스] 이래도 담배 안끊을겨? 광고냐 협박이냐
☞ [E노트] '왕년의 독설가' 김구라의 말로는 음악DJ?
2008.11.25 14:29 | ⓒ 2008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공유하기
'기다림의 미학' 엉뚱하게 적용하는 이명박 정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