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소비자? 결국 쇼핑 중독이잖아~

쿠폰인생 소비자의 '인터넷 쇼핑' 할 말 있수다

등록 2008.11.28 10:11수정 2008.11.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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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몰에서 발급하는 각양각색의 쿠폰


난 대부분의 쇼핑을 인터넷에서 해결한다. 옷들은 물론, 각종 생활잡화에서 가구, 가전, 식품까지 다 '클릭'으로 해결한다. 아,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렇게 추운날 밖에 나가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이 편하게 집으로 배달되어 오다니. 게다가 2천원대에 이용가능한 택배는 대중교통 왕복 차비와 같은 수준이 아닌가.


얼마전부터는 '쿠폰'으로 쇼핑하는 재미에 맛들렸다. 똑같은 제품을 더 싸게, 그것도 얼굴 붉히며 흥정할 필요도 없이 살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인터넷 쇼핑의 최고 장점 아닐까. 5천원 할인쿠폰으로 4900원에 결제한 어그부츠나, 2천원 할인받은 1만9000원짜리 쌀 10kg, 50% 할인쿠폰으로 3만원에 구입한 겨울 코트를 떠올리며, 스스로 알뜰쇼핑이라 흐뭇해마지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도 인터넷 쇼핑 삼매경에 빠져든다.

50% 할인 쿠폰 받겠다며 헐레벌떡 달려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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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노리는 건 '선착순' 쿠폰. 정시에 선착순으로 버튼을 클릭한 사람 100명에게 쿠폰을 발급해주는 식이다. 흔하지 않아 가격 할인의 효과가 쏠쏠하다.


'오전 10시, 오후 3시, 오후 9시 선착순 100명 50% 할인쿠폰.'
'여성이면 제한없다, 쿠폰 100% 발급 5% 할인쿠폰.'
'매일매일 특별한 50% 찬스, 하루 한 상품 매일 50% 쿠폰 다운로드 가능 오전 10시, 오후 10시.' 

온라인 쇼핑몰에서 발급하는 각양각색의 쿠폰 공지 문구들이다. 몇 만원 이상 구매시 몇 천원 할인쿠폰, 몇 %씩 가격을 할인해주는 쿠폰, 배송비 무료 쿠폰 등 종류도 다양하고 응모와 추첨부터 선착순, 쇼핑 마일리지 등을 모아 교환하는 발급방식까지 참 복잡하다. 

이중 내가 주로 노리는 건 '선착순' 쿠폰. 정시에 선착순으로 버튼을 클릭한 사람 100명에게 쿠폰을 발급해주는 식이다. 흔하지 않아 가격 할인의 효과가 쏠쏠하다. 게다가 응모하고 추첨을 기다리는 '운'이 아니라, 누가 빨리 클릭하느냐의 문제라서, 내 실력(?)으로 받아낸 '할인'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만든다. '쿠폰이 발급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창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미션 석세스~!"라고 환청이 들려오는 듯하다.  


오늘도 아침부터 어김없이 체크한 쇼핑몰 리스트, 간만에 맘에 쏙 드는 게 올라왔다.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패딩 점퍼다. 마침 내가 사고 싶었던 브랜드의 아이템, 그것도 재고 상품이 아니라 '신상'이다! 게다가 50%나 할인되는 선착순 발급 쿠폰이라니.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는 거 봤나. 일정 체크를 해봤더니, 마침 저녁 늦게 밖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다. 잘하면 끝나고 빨리 집으로 와서 쿠폰 받아 사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웬 걸. 오늘따라 모임이 길어진다. 그렇다고 "쿠폰 받으러 먼저 집에 갈게"라고 말할 수 없도 없고. 

결국 몇십 분 남지 않은 상황, 거의 포기한 상황에서 모임은 저절로 끝났다. 맘을 비우고 버스를 탔는데, 어라? 오늘따라 버스가 빨리도 달린다. 신호등도 쑥쑥 지나쳐서 집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쿠폰 발급시간 10분 전! 이건 '지름신'의 계시다. 평소 걸어서 10분 거리인 집인데 내리자마자 달렸다.

드디어 '헉헉' 거리며 집에 도착해 신랑이 미리 켜둔 컴퓨터 앞에 마우스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쿠폰이 발급된다는 그 시간, 분명 초 단위까지 세가며 정각에 클릭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쿠폰 100장이라니. 결국 '쿠폰이 모두 발급되었습니다. 다음 기회를…'이라는 메시지가 뜨는 걸 보고야 말았다. 으악. 쿠폰인생이 나만은 아니었구나.

클릭질보다 발품파는 게 낫겠다

나만 이런 건 아니다. 요즘은 쿠폰 받는 게 인터넷 쇼핑족들의 거의 필수 아이템처럼 되어 있다. 각종 쇼핑 관련 커뮤니티나 게시판 카페들에는 '각종 쿠폰 모음' '선착순 쿠폰 잘 받는 노하우' 등과 함께 '쿠폰 대리구매'까지 성행하고 있다. 

그만큼 이런 쿠폰 쇼핑은 거저 얻는 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쿠폰 발급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클릭질을 남발하는 건 예사고, 나처럼 밤 10시에 배부하는 쿠폰을 받기 위해 집까지 달려가는 수고도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더 싸게 사보겠다며 이곳저곳 쿠폰 할인율을 비교하고 계산하고 있노라면 인터넷 쇼핑이 발품 팔아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눈이 벌개지는 건 기본이고, 목까지 뻐근해지는 때면 이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엄습한다. 

간혹 배꼽이 배를 잡아먹기도 한다. 충동구매가 그것. 딱히 필요한 게 아니었는데도 싼 김에 사두자는 생각에 구매하게 되고, 꼭 사야 하는 게 아닌데도 이 기회를 놓치면 손해보는 것 같아 '질러' 주신다. 품질이 마음에 안 들어도 '싸니까 괜찮아'라고 사고 보는 것도 문제다. 지난 여름엔 3000~4000원짜리 샌들을 몇 켤레나 사서 얼마 신지도 못했다.

내 이런 쿠폰인생을 두고 신랑은 "좋게 말해 '알뜰'이지, 결국 쇼핑 중독이잖아!"라고 말한다. 쌀이 떨어져가는데 쿠폰 받으려고 용을 쓰던 내 모습을 보면서 한심해 하던 남편. 사실 나도 이런 내가 한심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남편에게 "이건 몇 천원짜리야~"라며 다시 한 번 알뜰 쇼핑임을 '항변'하곤 하지만, 나도 안다. '똑똑한' 나보다 한참 더 '똑똑한' 쇼핑몰 마케팅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3대 거짓말 중 하나가 장사꾼의 '남는 거 없이 판다'는 말이라고 하지 않나. 쿠폰을 괜히 발급하겠나. 일단 쿠폰이 발급된 상품이라며 떡하니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판매자의 입장에선(약간의 가격 손해를 보더라도) 그만큼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쿠폰 발급 덕에 순식간에 구매순위 1위에 올라가는 것도 효과적인 판매전략이다. 왜? 구매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믿음이 가는 게 인터넷 쇼핑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기회는 지금 밖에 없다'는 식으로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쿠폰의 유혹을 떨치기란 어렵다.

생각해봐라. 멀쩡하게 10만원에 팔던 제품을 5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퍼준다는데 마다할 리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한 번 이 세계에 빠지면, 쿠폰 없는 쇼핑이 얼마나 심심한지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난 그런 고도의 복잡한 계산과 마케팅 속에 놀아나는 소비자, 영리한 '척' 하지만 알고보면 '순진한' 소비자일 뿐이다. 그래도 어쩌랴. 당장 나에겐 조금이라도 더 싸게 구매하는게 더 절실한데. 아, 이 놈의 쿠폰인생, 언제쯤 벗어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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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쇼핑 #쿠폰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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