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런 길은 그나마 쉽다. 카메라마저 꺼낼 수 없을 만큼 아찔한 바위들...나도 넘다니!
김현자
내가 올라 서있는 바위는 내 키보다 훨씬 높은, 그리하여 바위 아래가 까마득했다. 게다가 좀 전에는 '사고 다발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까지 세워져 있지 않았던가! 순간 오금이 저리며 발이 후들거리더니 공연히 이곳으로 왔다는 후회가 번쩍 들었다.
결국 동행한 분의 위험을 무릅쓴,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도움(?)으로 등을 바위에 붙인 채 더듬더듬 간신히 내려왔지만, 계속되는 바위 길에 이제는 힘이 따라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금 걸었을 뿐인데 자꾸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하여 난 결국 "공연히 이 길로 왔다"고 함께 간 사람에게 경솔하게 말하고 말았다.
동행한 분은 아무런 말이 없다. 변변한 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내게 지팡이를 내준 채 섭섭한 표정 한번 없이 사명감처럼 변함없이 이끌어 줄 뿐이다. 함께 걷는 동안 생각이 분분해졌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경솔하게 하고 말았다는 후회도 컸다. 좋을 때는 헤헤거리고 힘들어지자 금방 표가 나는 내 가벼움을 자책하기도 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힘들다고 금방 후회를 하다니! 사람 사는 것도 이러면 안 되겠지? 좋을 때는 고맙다고 헤헤 거리고 힘들어지면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이끌어준 사람 탓하고 원망하고 말이야.'우리가 택한 길은 문수봉 우회길. 북한산성 암문 중 하나인 청수동 암문까지 오르는 길은 더욱 가팔랐다. 작은 돌과 바위가 섞인 흙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 어림짐작 70도 가량쯤으로 여겨지는 경사. 앞서가는 사람들 중에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숨이 가빴었거든요. 자꾸 산에 오르다 보면 나아질 겁니다. 그래도 산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오늘 문수봉 바위를 타셨어야 하는데...(빙긋 웃으며)"드디어 청수동 암문에 도착했다. 청수동 암문을 지나 대남문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이 산성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북한산성만을 따라 걸으면 얼마나 걸릴까 싶어 아까부터 셔터를 계속 누르고 있던 남자에게 물어보니 "등산에 익숙한 남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바쁘게 걸어야 할 정도"라고 답해준다. "힘든 구간도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산 능선 산행의 설렘을 가진채 친정에 일이 있어서 며칠간 다녀왔다. 토요일 밤늦게 집에 도착했는데도 일요일 새벽 눈이 번쩍 뜨였다. 자꾸 북한산 능선이 아른거렸다. 그리하여 이번 일요일에는 쉬자던 생각과 달리 다시 산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