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익숙한 목소리, 반가운 종소리

자선모금운동의 대명사, '하나님의 사랑' 행하는 구세군 이야기

등록 2008.12.04 08:53수정 2008.12.0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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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오는 12월이면 거리에 익숙한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린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바로 구세군 자선냄비 말이다. 경기도 용인시 죽전역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웬 아주머니가 낑낑 냄비를 옮겨 오는 것이었다.

어쩐지 흔하지는 않지만 익숙한 옷차림새였다. 해마다 어김없이 거리에서 종을 흔드는 사람들. 아주머니는 바로 구세군이었다. 우리는 곧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마 자기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일이 아닐 테다. 다만 스스로를 구세군 사관학교 학생이라고 밝혔다.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 줄여서 '구세군'이란 말 그대로다. 왜 모두 군복 차림인지 딱히 모르고 있었는데 구세군이란 군대 체계를 따온 기독교 자선단체인 것이었다. 본디 '기독교선교회(The Christian Mission)'라는 이름이었지만, 곧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이제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사령관부터 말단 병사까지 군대식으로 조직되며 '참전'하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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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구세군 아주머니. 12월 동안 매일, 한나절을 꼬박 모금운동을 한다고 한다. ⓒ 허진무


기독교 단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놔야겠다. 세계적으로 가장 덩치 큰 교회들이 모여 있는 우리 땅에는,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제 잇속 챙기는 이들이 무척 많다. 이들은 황금으로 임의 존재를 간증한다. 목수로 살며 가장 낮은 곳에서 낮은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와는 달리, 벤츠 자동차는 신실한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가르치는 이들 말이다.

이들은 그런 '축복'이 너무나 소중하여 어두운 베일로 꽁꽁 감추어 놓는다. 회계 내역이 불투명하다 못해 깜깜하다.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이 어디로 가고 어떻게 쓰이는지 전연 알 수가 없다. 번쩍번쩍한 공룡 건물 십자가에 과연 예수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내 어디에서 불온한 기색이 비쳤는지 모르겠지만 구세군 아주머니는 단박에 눈치를 채셨는지 "구세군은 냄비의 돈이 어디 쓰였는지 내역을 다 밝혀요"라고 웃으며 가르쳐 주셨다. 구세군 홈페이지와 일간지에 해마다 자선냄비 내역을 게시한다는 것이다.

참 좋다. 감추는 것이 없다면 냄비에 돈 넣는 사람도 마음이 편하다. 가난한 이웃을 구하는 마음으로 쓴 돈이 한푼이라도 다른 곳에 쓰였다면 참으로 기분이 언짢을 테다.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한 돈은 모두 복지사업에 쓰이고, 회계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구세군은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가 런던에서 빈민들을 위해 만든 집단이다. 처음에는 수프를 끓이는 큼직한 솥을 걸고 돈을 모금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빨간 자선냄비로 변했다. 구세군은 가난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행한다는 뜻에서 출발했다. 영국 교회가 돈에 흥청거리며 가난한 이들을 들여보내지 않았을 때 구세군은 기꺼이 이들을 맞아들이고 돌보려 했다. 

이제 구세군은 108개 나라에 걸쳐서 연대하는 세계적인 기독교 단체가 되었다. 구세군은 무엇보다 '실천하는 신앙'을 중하게 여겨 백 퍼센트 자원하는 봉사활동이다. 구세군 아주머니는 세 가지 "S"를 말했다. "Soap(비누), Soup(수프), Salvation(구원)" 다시 말해서 "씻기고, 먹이고, 구원한다"는 뜻이란다. 아주머니는 또 "실천이 없는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 구세군을 많이 자원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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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정겨운 구세군의 빨간 자선 냄비. 날씨가 쌀쌀해지면 사람 많은 거리 어디서나 흔히 보게 된다. 한국 구세군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 허진무


구세군은 가두 자선모금운동의 대명사다. 보통 12월만 되면 거리에 구세군이 흔하지만 다른 달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세군은 딱 연말만 모금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끝인가' 싶은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나도 궁금하여 "구세군은 다른 달에는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았다. "봉사활동과 사회사업을 포함한 여러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세군이 결코 자선냄비 모금만 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단체인 만큼 선교도 하고 사회활동도 한다. 현재 구세군은 200개가 넘는 지역사회복지 시설과, 그와 비슷한 숫자의 교회, 전문 사회사업시설 47개가 있다. 아동복지부터 심장병 수술지원까지 복지사업 분야도 다양하다.

다른 기독교 단체보다 사회활동에 훨씬 적극적이다. 구세군의 역사를 살피면 사회 변화에 발맞추어 현실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부스는 산업혁명 시기 실직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동교환 센터를 세웠고, 실종자 찾기 사업을 벌이는 한편, 착취 없는 노동을 위한 농장을 구상했다.

세상이 많이 어렵다. 일하느라 등골이 휘는데 뉴스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다. 내 임금만 빼고 다 오른다. 하나에 300원이었던 호떡이 어느덧 500원이 되더니 오늘은 700원이라고 했다. 학교 앞 자장면과 김밥이 500원씩 올랐다. 지갑이 텅 비었다. 그래도 가슴까지 텅 비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세상, 혹은 뺏고 빼앗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누리는 삶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오늘의 행복 때문에 세상 누군가는 불행하리라. 그런 마음에 빨간 냄비에 부끄러운 액수를 넣었다. 대신 귓가에 쨍한 종소리와 함께 "행복하세요" 푸근한 말이 돌아왔다.
#구세군 #모금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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