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몽니연대', 6자회담 발목잡나

[심층진단] 북핵 '시료채취' 논란과 MB정부의 대북정책

등록 2008.12.05 11:42수정 2008.12.0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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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회담 참가국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검증의정서에 '시료채취'(sampling)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연일 천명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현 단계에서 시료채취는 합의한 바도, 합의할 사항도 아니라며, 시료채취를 이유로 에너지 지원을 꺼리고 있는 "일부 세력"에게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일부 세력"이라는 한국과 일본을 지칭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부시 행정부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부시 행정부는 사실상 임기 내 마지막 6자회담이 될 이번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의 2단계 이행조치, 즉 10.3 합의와 검증의정서 채택을 마무리짓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이번 6자회담에서 '한일연대'와 북한이 거친 말싸움을 벌이면서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도쿄에서 한미일 3자협의를 가진 데 이어,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양자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도 '한일연대'와 북한 사이의 입장 조율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까지 한국과 중국이 주로 담당했던 중재자 역할이 한국에서 대북 강경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일연대 "시료채취 반드시 들어가야"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6자회담 한미 수석대표 회동을 마친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가 9월 30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힐 차관보는 다음날 육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했다.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6자회담 한미 수석대표 회동을 마친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가 9월 30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힐 차관보는 다음날 육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6자회담 한미 수석대표 회동을 마친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가 9월 30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힐 차관보는 다음날 육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했다. ⓒ 연합뉴스

최근 6자회담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한일연대'의 부상이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불협화음을 냈던 두 나라는 이명박 정부 출범을 계기로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월에 제출한 핵 신고서에 '핵무기가 빠졌다'고 미국 네오콘과 똑같은 목소리를 냈는가 하면, 미국이 10월에 단행한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불평했다.

 

또한 북한이 11월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미간의 검증 합의에는 시료채취가 애초부터 들어가지 않았다고 발표하고 나서자, 한 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했다. 이는 미국 국무부과 북한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계속 논의할 사안"이라고 반응했던 것과 비교된다.

 

그리고 6자회담이 다가오자 한일 두 나라는 시료채취를 이유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 한국측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은 3일 한미일 3자 협의를 마치고, "어떤 종류의 합의가 어떤 형태로 나오든 간에 거기엔 시료채취가 의심의 여지없이 읽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대표인 사이키 아키타 외무성 아태국장 역시 시료채취와 관련해 "우리는 어떠한 오해를 가져서도, 어떠한 왜곡도 허용해선 안 된다"며, 6자회담 합의문에 반드시 명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힐 차관보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시료채취라는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 사용을 자제하면서 "우리는 검증의정서와 에너지 지원, 그리고 불능화 일정과 관련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검증의정서가 채택될 때 오해의 소지를 없애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료채취라는 표현을 회담장 밖에서 사용해 북한과의 마찰을 일으키기 보다는 회담에 집중하겠다는 협상 자세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시료채취, 진실은 어디에?

 

그렇다면, 논란의 핵심에 있는 시료채취의 총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은 지난 10월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표하면서 북한이 시료채취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안팎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는 북한이 상당히 양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테러지원국 해제는 10.3 합의의 미국측 공약이었던 반면에, 시료채취를 포함한 검증은 포함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미국이 북미간의 검증 합의 사항을 발표하면서 시료채취가 포함되었다고 발표했을 때, 바로 반박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함께 미국 주도하의 대북 에너지 지원이 신속하게 마무리 짓는 것을 조건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를 이유로 에너지 지원 불참 입장을 고수했고, 한국마저도 에너지 자재, 즉 3000톤의 강관 지원을 계속 늦춘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11월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최근 6자회담 10.3 합의 이행 지체"의 책임이 시료채취를 거부한 북한에 있는 것처럼 "그릇된 여론을 내돌리는 세력이 있다"며, 한국과 일본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10월 초 북미간의 평양 회담 문서에는 시료채취라는 표현 없이 "과학적 절차"라는 포괄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이는 11월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공개적으로 확인한 사안이다. 그러나 역풍을 우려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양해 하에 시료채취를 먼저 발표하고 나중에 북한과의 추가 협상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시료채취를 계속 문제삼으면서 에너지 지원을 하지 않자, 북한은 평양 회담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MB 정부, 남북관계 빌미로 6자회담 발목 잡나?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이유로 대북 에너지 지원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또 당분간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호주와 뉴질랜드 등 다른 나라로부터 '국제 모금'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시료채취를 이유로 에너지 지원을 늦추고 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MB 정부가 6자회담에서 '시료채취가 명기되지 않으면 에너지 지원도 없다'는 초강경 입장을 보일 경우, 이번 회담의 성공은 불가능해진다. 오히려 북한은 남한의 태도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원상복구에 다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MB 정부는 시료채취와 에너지 지원을 연계하려고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상당 부분 김숙 본부장이 밝혔다. 그는 "북한이 미국, 일본, 우리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북한의 향후 진로와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양자관계 개선도 강조해 나가기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이는 6자회담을 통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부의 의도는 '남북대화가 안 열리면, 6자회담의 진전도 곤란하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정부가 6자회담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이미 약속한 에너지 자재 제공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면서 시료채취 논란에 대한 창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인 모습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만약 북한의 비타협적인 입장과 한일 양국의 '몽니'가 충돌해 이번 6자회담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날개를 잃고 추락하고 있는 남북관계는 땅에 떨어져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유실되고 말 것이다. 또한 2단계가 완료와 검증의정서 채택에 늦어져 출범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에게 상당한 부담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이번 6자회담에서 아래와 같은 합의 내용을 담을 것을 권고하고자 한다.

 

"10.3 합의에 따라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및 영변 핵시설 불능화는 내년 2월까지 신속하게 마무리한다. 한국은 에너지 자재 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6자회담 참가국들은 잔여 분량 지원을 신속하게 마무리짓기 위해 노력한다. 검증과 관련해 초기 검증 대상은 불능화 시설로 하며 검증 방법은 현장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 인터뷰 등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의 합의 내용에 따른다.

 

북한은 지난 6월에 제출한 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 방법으로 시료채취를 포함한 과학적 절차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후 6자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과 방법을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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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시료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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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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