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한 각종고지서를 보고 있는 정조영씨
신문웅
거실에 들어서자 정씨는 더 많은 청구서를 살펴보면서 한 숨만 쉬고 있었다. 지난주 정씨는 가족회의를 통해 어려운 결단을 했단다. 어민들에게는 꿈과 같은 배를 감척(구조조정사업)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아버님께 죄송하지요. 평생 이루어 놓으신 배인데... 어쩔 수가 있나요. 도저히 이자 감당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기름유출 1년이 우리 부모님과 가정에 결국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정씨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배 감척은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기름유출사고이후 태안군이 2008년에 30척의 감척 예산을 세웠는데 경쟁률이 워낙 높아, 2009년도에는 최대 책정 예산을 65척으로 잡아놨다.
"현재 아버지 배 수준으로 보면 허가증까지 합쳐 8-9,000만원은 써야하지만 경쟁이 심하면 낮은 가격이라도 감척을 해야 할 실정입니다. 그래야 그나마 빚을 일부 갚아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정씨는 지난 2006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인을 설득해 아파트 등 있는 재산을 다 정리해서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와 공동 투자금과 2억원이 넘는 돈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서 2007년에 펜션을 지었다. 지난해 겨우 본격적인 펜션 운영에 들어가 단골손님들도 생기고 대기업을 통해 고정 고객까지 생기는 등 빚을 갚을 날이 멀지 않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기름유출사고는 정씨의 희망을 절망으로 바뀌어 놓았다. 정씨는 이 마을에서 몇 안되는 젊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고이후 소원면 대책위 사무국장으로, 파도리해수욕장 번영회 총무로 지역주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실질적인 손님은 10%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대기업들이 태안살리기 캠페인을 벌여 겨우 40-50%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올해와 내년은 어떻게 버텨보겠지만, 저희 또래들이 걱정하는 것은 3년 이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낙향한 젊은 친구들이 다시 상경하려는 움직움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9월 이후 손님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정씨는 "기름유출사고가 나처럼 부모님과 고향을 지키려고 돌아온 젊은이들의 '귀향'을 잘못된 선택으로 만들었다"며 "젊은이들이 고향을 계속지킬 수 있도록 장기적인 생계 안정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파도리 도로변에 펼침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기름으로 멍든 가슴 두 번 죽이는 송설재단은 각오해라."가장 큰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파도리, 모항리 주민들의 유일한 호구책은 논농사다. 정부가 기름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지난 11월 381억원의 사업비로 농촌 용수 개발 사업을 발표해 기뻐했으나 이도 잠시, 이 땅의 소유자인 송설재단이 이 땅을 전부 매각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경작 주민 150여명은 지난주 송설재단이 있는 경북 김천시로 충남도청으로 1박2일 원정시위를 다녀왔지만 좀처럼 이견을 좁히고 못하고 있다.
[소원면 모항항] 반도회관 김성회씨 "행사를 위한 행사에 주민만 또 죽습니다"모항항은 이번 기름피해의 직격탄을 받은 지역 가운데 최대 규모의 항구이다. 어선들과 낚시배들 50여척이 서로 엉켜 있었다. 사고 이전에 이 항구에는 횟집이 6곳, 수산가게를 겸한 횟집이 6곳 등 12곳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횟집 가운데 두 집은 아예 문을 닫았고 한 집은 횟집을 접고 수산 가게만 하고 나머지들은 수산 가게만 운영하고 있다. 문이 열려있는 반도회관을 들어섰다. 문을 열자 식당 안에는 김씨와 김씨의 어머니가 고구마를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입구에는 5일 날 자원봉사의 날에 50%로 할인한다는 작은 펼침막이 보였다. 손님 많이 예약이 많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40명이 8천원짜리 식사를 예약했단다.
김씨는 "군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50% 할인 펼침막을 붙이고 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으면 주말이면 학생 아르바이트 2-3명을 쓰고 평일에도 저녁 아르바이트 만 따로 써야 장사가 되었지만 사고 이후에는 주중에는 거의 손님이 없는 실정이란다. 기자가 찾은 오후 3시까지 손님은 한 팀도 못 받았다고 한다. 보일러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 작은 난로로 추위를 견디는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름 피해를 돕기 위한 각종 행사를 하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이 안 되지요. 행정 기관이 자신들의 실적만을 높이기 위해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 마지 못해 참여는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안 돼요. 모항항이 살아야 횟집들도 살아요. 하루 빨리 배가 출어를 해야하는데 사실상 출어도 끝나고 막막합니다. 작년에 비해 매출이 30%도 안 되니 순수익은 10%도 안 됩니다."
[만리포 해수욕장] "자원봉사대회도 규탄대회도 나가야지요"5일 자원봉사 사은 행사가 열리는 만리포 해수욕장은 무대를 꾸미고 곳곳에 자원봉사들을 환영하는 펼침막을 펼쳐놨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환영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만리포 슈퍼에서 만난 김복자씨는 "내일 자원봉사 감사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모레 열리는 규탄대회에도 참가해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말한다.
대화 도중 손님이 들어왔다. 그러자 김씨는 "찾아주셔서 고맙고 물건까지 사주니 정말 더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손님은 라면 5개와 작은 김치를 사고는 계산을 하려고 하자 김씨는 "젓가락도 필요하지요"라며 젓가락도 챙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