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위기? 거품 빼야 모두 산다

[주장] '박신양 출연정지' 사건 통해 들여다 본 드라마 시장

등록 2008.12.12 17:24수정 2008.12.1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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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7월 박신양은 <쩐의 전쟁> 제작사에 출연료 미지급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박신양은 <쩐의 전쟁> 제작사에 출연료 미지급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 SBS


탤런트 박신양이 드라마제작사협회(이하 협회)로부터 '무기한 출연 정지'라는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전례 없는 강경 조치다. 협회는 이러한 처분의 배경에 대해 드라마 제작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높은 박신양의 출연료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건 지난해 여름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의 연장방영분이었다.

<쩐의 전쟁>이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은 물론 대부업이란 소재를 다룸으로써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되자, 당연한 수순으로 스페셜 형식의 4회분을 추가로 제작해 연장방송하기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주연배우 박신양은 제작사와 총 6억 2천만원, 회당 1억 7050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기로 계약했는데, 드라마가 종영된 지 1년이 넘은 지난 7월까지도 제작사는 박신양에게 약속한 출연료의 반에 해당하는 3억 4천만원을 지급하지 못했다. 결국 박신양이 제작사를 상대로 밀린 출연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는 드라마 제작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거액의 출연료를 요구하고 소송까지 제기한 박신양은 물론, 그런 무리한 요구를 들어 준 제작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박신양에게는 협회 소속의 제작사에서 만드는 드라마에 대한 무기한 출연 정지, 해당 제작사에게는 드라마 편성 금지 및 협회의 협회원으로 입회 불가라는 처분을 각각 내렸다.

한류 바람 타고 치솟은 주연배우 출연료

드라마 주연배우들의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올라간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2002~2003년만 해도 주연배우들의 출연료는 회당 600~700만원 수준이었다(<장희빈>의 김혜수, <대장금>의 이영애). 그러던 게 2005년 들어 <프라하의 연인>의 전도연이 회당 1500만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급등하더니, 이어 <슬픈연가>에서 김희선, 권상우가 회당 2천만원을, 2006년에는 <여우야 뭐하니>의 고현정과 <연애시대>의 손예진이 회당 2500만원을 받았다. 2007년 들어서는 몸값이 더욱 급등하여 <쩐의 전쟁>의 박신양이 회당 4천만원, <에어시티>의 이정재는 회당 5천만원을 받았다. 누구보다 '억'소리 나는 출연료를 받은 건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으로, 그는 이 작품에서 무려 회당 2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주연배우들의 몸값이 이처럼 치솟게 되면서 자연스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첫 번째 문제는 전반적인 배우들의 몸값 상승이다. 흔히들 배우의 몸값은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른다고 한다. 방송국과 제작사에서 배우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약속하는 건 배우의 연기력과 인지도에 대해 그만큼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흥행이 실패해도 배우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해당 작품에서는 물론이고, 차기작에서도 전작의 흥행 실패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논리도 없고 기준도 없는 영역인 셈이다.

이렇게 한 번 배우의 몸값이 정해지면 그 때부턴 어지간해선 오르막길만 있을 뿐 내리막길은 없다. '아무개가 회당 얼마를 받았다더라'하면 동급의 다른 배우들 역시 '아무개만큼은 받아야지' 생각한다. 배우 한 명의 몸값 상승이 동급의 동료 배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주연배우들뿐만 아니라 지명도 있는 중견급 조연배우, 신인배우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출연료 상승에 남은 건 제작환경 부실화

두 번째 문제는 제작환경의 부실화다. 주·조연배우들의 몸값이 껑충 뛴 만큼 드라마 제작은 그에 반비례해서 어려워진다. 최근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2억원 선, 몇 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올랐다. 배우들의 높아진 몸값 때문이다. 그런데도 드라마 제작비에서 배우들의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나 된다. 출연료를 제외한 나머지 30%로 제작해야 하니, 좋은 드라마가 나올 턱이 없다.


여봐란 듯한 세트도 물 건너가고, 단역도 마음껏 쓰지 못한다. 돈 들어가는 신(scene)의 촬영도 여의치 않다. 재벌 회장이 가정부 한 명 없이 대저택에서 혼자 살고, 사극의 대규모 전투 장면에서 고작 수십 명의 병사들이 옹색하게 싸우는, 비오는 장면에서 화면 바깥의 땅은 뽀송뽀송한, 웰메이드는커녕 평범한 드라마조차 나오기 힘들게 된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드라마 제작기반의 붕괴다. 2000년 이후 지상파 방송국의 광고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동시간대 1위의 시청률을 올린다고 해도 광고가 100% 붙는 드라마가 드문 실정이다. 드라마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 시장이 이처럼 얼어붙고 있는데도 주연배우들의 몸값은 계속 올라만 갔다.

이렇게 되자 피해를 보는 건 제작사, 스태프, 조연·단역배우들이다. 드라마가 수익을 못 내니 제작사는 형편이 어려워지고, 그렇다 보니 스태프와 일부 조연 및 단역배우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여력조차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종영한지 1년이 넘은 <태왕사신기>나 <이산>의 보조출연자들에 대한 출연료 지급이 안 되고 있다는 소식은 최근까지도 들렸다.

'거품' 빼야, 주연과 조연, 방송국, 제작사 산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배우들의 몸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까? 그 원인은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방송의 외주제작화를 들 수 있다. 1991년 방송산업 육성과 콘텐츠 다양화를 이유로 도입된 지상파 외주방송 의무편성 비율은 최근 40%까지 확대됐고, 드라마 쪽만 따지면 90%가 넘는다. 방송사의 자체제작 드라마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외주제작 드라마의 경우 자체제작과는 다르게 기업협찬이나 간접광고가 가능하다. 이것들로 인한 수익 증가가 주연배우 몸값 상승으로 이어진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 시장에 불어 닥친 한류 붐도 한몫했다. <겨울연가> <대장금>같은 우리나라 드라마가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자 드라마는 돈이 된다는 생각에 많은 자본이 드라마 시장에 몰렸다. 이와 함께 외주제작사의 수도 증가했다. 그런데 외주제작사는 많아졌지만 방송국의 편성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다. 자연스레 외주제작사에선 편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타 배우들의 캐스팅에 열을 올리게 됐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주연배우들의 몸값은 나날이 상승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자 드라마 관계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양이다. 이번 박신양 제재 건도 그 일종으로 보인다. 현재의 드라마 위기 상황을 타개할 가장 큰 대책은 '거품'을 빼는 일이다. 주연배우들의 몸값에 들러붙은 거품을 빼고, 그로 인해 제작비의 거품이 빠지고 나면 지금처럼 방송국은 울상 짓고, 제작사는 도산하고, 스태프와 출연자들은 임금을 못 받는, 드라마는 성공해도 누구 하나 웃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현실성 있는 출연료 계약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또한 인기스타만 캐스팅되면 다른 건 고려되지 않는 묻지마 식의 편성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다행히 권상우, 최지우, 송승헌 등과 같은 톱스타들이 자진해서 출연료 삭감에 나섰다. 드라마제작사협회, 드라마PD협회 등의 관계자 단체에선 세미나, 토론회 등을 열어 위기 극복의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익 창출 방법의 다각화 등 현실성 있는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방송국에서도 드라마 자체제작을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폐지된 공채탤런트 제도를 부활시킬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분명 현 상황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의 총체적인 난국이자 위기이다. 그러나 배우, 제작사, 방송국 등 관계자 모두가 합심하여 노력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미드, 일드보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더 즐겨보는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부디 이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
#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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