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누구에게나 항상
.. 성품이 온화하고 누구에게나 항상 친절했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우리와 안녕하려면》(양철북,2007) 6쪽
‘성품(性品)’이라는 말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만 이 자리에서는 ‘마음’이나 ‘됨됨이’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온화(溫和)하고’는 ‘따스하고’나 ‘따뜻하고’로 다듬어 봅니다. ‘친절(親切)했는데’도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한편, ‘웃는 얼굴이었는데’나 ‘넉넉했는데’나 ‘포근했는데’로 손볼 수 있어요. “호감(好感)을 갖고 있었습니다”는 “좋아했습니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로 손봅니다.
┌ 항상(恒常) : 언제나 변함없이
│ - 그녀는 항상 웃는다 / 그는 항상 바쁘다 /
│ 그는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
├ 누구에게나 항상 친절했는데
│→ 누구한테나 따뜻했는데
│→ 누구한테나 너그러웠는데
└ …
보기글은 겹말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구한테나 ‘늘’ 따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때는 따스하지만 다른 한때는 따스하지 않는다면 말입지요. 다만, 이 보기글은 “사람을 가려서 누구한테는 따스하고 누구한테는 안 따스한 모습”이 아니라 “어느 사람을 만나든 가리지 않고 따스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려 한다는 느낌이 짙기 때문에 겹치기가 된다고 느낍니다.
┌ 마음이 착하고 늘 따스했는데
└ 마음이 착하고 누구한테나 따스했는데
따지고 보면, 어느 한때는 사람들한테 따스하고 다른 한때는 사람들한테 안 따스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기 어렵겠지요. 한결같으니까, 꾸준하니까, 가림이 없으니까, 고르게 맞이하고 껴안을 줄 아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항상’을 풀이하는 말이 좀 얄궂습니다. “언제나 변(變)함없이”가 ‘항상’이라고 하는데, ‘변함없다’를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달라지지 않고 항상 같다”고 적습니다. 이렇게 되면 뭔 소리가 될까요? 어떻게 읽어내야 하나요? “언제나 달라지지 않고 항상 같다”가 ‘항상’ 뜻풀이가 되는 셈 아닌지요?
┌ 그녀는 항상 웃는다 → 그 여자는 늘 웃는다
├ 그는 항상 바쁘다 → 그는 언제나 바쁘다
└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 → 한결같이 부지런히 배우는
한자말 ‘항상’을 쓰고 싶은 분은 써야 합니다. 다만, 이와 같은 낱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알면서 써야 합니다. 쓸 때는 쓰되, 우리가 오랜 옛날부터 줄곧 써 오던 낱말 ‘늘’과 ‘언제나’와 ‘노상’ 같은 낱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잊으니 우리 말이 엉망이 되고, 우리 국어사전이 엉터리가 되며, 우리 삶터는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ㄴ. 헌신적인 희생
.. 그러나 자연에서 멀어진 요즘 아이들은 자기 목숨이 많은 생명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뒷받침되고 커다란 자연의 힘으로 살려지고 있는 것이나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23쪽
“자연의 힘”은 “자연 힘”으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살려지고 있는 것이나”는 “살려지고 있으나”로 다듬습니다.
┌ 헌신적(獻身的) :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 - 헌신적 사랑 / 이장은 마을 일에 헌신적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
│ 자식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쏟다
├ 희생(犧牲) :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 - 희생을 무릅쓰다 / 희생을 당하다 / 희생을 강요하다
│
├ 헌신적 생명으로 뒷받침되고
│→ 몸을 바쳤기에 뒷받침되고
│→ 바쳐졌기에 뒷받침되고
│→ 아낌없이 뒷받침되고
└ …
한자말 ‘헌신’이나 ‘희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낱말은 써야 할 자리에 알맞게 써야지요. 다만, 이 보기글에서 두 낱말을 함께 쓰면 겹치기가 됩니다. 헌신도 ‘바치는’ 일이고 희생도 ‘바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헌신적 사랑 → 몸바치는 사랑
├ 헌신적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 온몸을 아끼지 않고 바쳤다
├ 희생을 무릅쓰다 → 온갖 힘든 일을 무릅쓰다
└ 희생을 강요하다 → 온몸 바치라고 떠밀다
가만히 보면, 날이 갈수록 우리들 말씀씀이는 ‘헌신’과 ‘희생’ 또는 ‘헌신적’으로 바뀌고, ‘바치다’나 ‘몸바치다’는 뒤로 젖혀 둡니다. 흘러간 노래 〈논개〉에는 “몸바쳤어, 몸바쳤어 ……” 하고 나오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흘러간 노래에나 나오는 노래말일 뿐, ‘몸바치’며 사는 요즈음 사람을 찾아보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희생’하는 아버지와 ‘헌신’하는 어머니 말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힘 다하는’ 아버지와 ‘온몸 바치는’ 어머니를 찾아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문득, 지나간 민중노래 가운데 〈바쳐야 한다〉가 떠오릅니다. 바쳐야 한다, 그래, 바쳐야 하는 일인데, 우리들은 아무것도 안 바칩니다. 말 한 마디 알뜰하게 하고 싶어도 말을 배우고 가다듬는 데에 품과 땀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데, 우리 말을 올바르게 익히고 헤아리는 데에는 거의 아무런 품도 땀도 시간도 바치지 않습니다.
우리 이웃 아픔과 눈물을 헤아리는 데에도 거의 아무런 품과 땀과 시간을 안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 생채기와 슬픔을 둘러보는 데에도 거의 아무런 눈길과 마음길과 손길을 안 바치고 있습니다. 그저 쓰고 버리고 또 쓰고 버리고 다시 쓰고 버리는 일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8.12.14 10:21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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