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고대 신들의 나라 그리스로 가는 길 아테네의 어느 신전에서 ⓒ 양학용
▲ 고대 신들의 나라 그리스로 가는 길 아테네의 어느 신전에서
ⓒ 양학용 |
|
그리스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국경(Svilengrad-Ormeni)에 이르는 불가리아 쪽 도로가 엉망이었다. 혹시 이 지역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있었나? 도로라고 할 수 없을 지경으로 폭격을 맞은 듯 온통 크고 작은 구멍으로 파헤쳐졌다.
이런 상태로 방치해두는 당국도 대단하지만 아랑곳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트럭운전사들이 더 존경스러웠다. 하긴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여행자 신분으로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외면하고 그리스 동북부 가장 끄트머리의 외진 국경을 택했으니.
평균 시속 15km로 국경을 넘자 이제 도로 표지판이 문제였다. 왜 지금껏 몰랐을까. 그리스 문자는 영어나 독일어 등 유럽 여러 나라 언어와는 알파벳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 뜻은 물론 읽을 수조차 없으니, 표지의 지명이 아테네인지 이스탄불인지 그야말로 눈 뜨고 장님이었다.
알파벳 대조표를 보며 목적지를 그리스문자로 하나하나 적어두고 ‘휙휙’ 지나가는 표지판과 맞춰보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낯선 지명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반대 방식으로 알파벳 대조표와 비교해야 했다.
a
▲ 폭격을 맞은 것처럼 대단했던 도로 불가리아 쪽 국경 스빌랜글라드(Svilengrad)로 가는 길
ⓒ 양학용
▲ 폭격을 맞은 것처럼 대단했던 도로 불가리아 쪽 국경 스빌랜글라드(Svilengrad)로 가는 길
ⓒ 양학용 |
|
신경이 곤두서다 결국에는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지도에 없는 마을들만 나타나더니 방향 감각까지 잃어버렸다. 그래서 찾아든 마을이 페트로타(Petrotá)였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나. 하루 밤 묵어갈 요량으로 마을을 둘러보는데 뜻밖에도 폐교가 하나 있었다.
“여기도 시골엔 아이들이 없나?”
아내의 추측과 달리 아이 두 명이 언제 나타났는지 호기심어린 눈빛을 하고는 우리 부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왔다. 아내가 아이들을 불렀다.
“안녕, 우린 코리아에서 온 여행자야. 들어봤니? 코리아?”
아이들이 안다는 듯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내는 손짓 몸짓을 보태어 아이들에게 오늘밤 잠자리를 알아본다.
“학교 운동장에 차를 대고 하룻밤 신세질까 하는데, 어때? 문 닫은 학교 같은데, 괜찮겠지?”
두 아이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다가 이내 좀 전보다도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밤에 다시 놀러오라 하고는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아마 생선깡통조림에서 매콤한 냄새가 흘러나올 즈음이었을 것이다. 별안간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경찰 두 명이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험악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a
▲ 그리스 정교회 테살로니키에서 ⓒ 양학용
▲ 그리스 정교회 테살로니키에서
ⓒ 양학용 |
|
“당신들 누굽니까?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아, 네, 저기… 길을 잃었는데… 폐교인 줄 알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지금 아이들이 수상한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신고해서 온 겁니다!”
“네? 그럴 리가?”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빗나간 모양이다. 경찰은 식사를 마치고 광장 앞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내가 그토록 동경해마지 않던 그리스 땅에서 경찰서 신세라도 지게 되려나? 광장은 유럽 어느 도시가 다 그렇듯이 예뻤다. 한 쪽에 식료품점이 보이고 그 옆 카페에서 노인들이 커피를 마셨다. 다른 쪽으로 마을회관 같은 건물이 있었고 그 끝에 경찰서가 있었다.
“여기 광장에다 주차하고 잠을 자세요. 지켜 드리죠.”
지켜주려는 것인지 감시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다행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곳 사람들은 다가오진 않고 광장 멀찍이서 서성거리며 두 이방인을 훔쳐보기만 했다. 쑥스러워서 라기 보다는 이방인을 경계하는 느낌.
a
▲ 길을 잃고 찾아든 마을 그리스 동북부의 시골마을 페트로타 ⓒ 양학용
▲ 길을 잃고 찾아든 마을 그리스 동북부의 시골마을 페트로타
ⓒ 양학용 |
|
평소라면 아내가 먼저 ‘하이, 호호호호’하며 다가설 텐데 그날은 그녀나 나 역시 피곤한 날이었다. 하루 종일 덜컹거리며 차를 타서 그런지, 이마에 열도 있고 으스스한 것이 감기가 오려는 모양이었다. 곱게 굽은 마을길을 산책하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 빗방울이 굵어지고 어둠이 내렸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광장에는 우리 애마만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창문에 습기가 차오르고 음악은 흐느적거렸다. 아내와 난 서로 말이 없다. 비가 내리는 이런 밤에 이국 땅 낯선 마을에서 차 안에 갇혀 앉아있는 일은 굳이 김광석의 음악이 아니더라고 서글프다. 우린 왜 떠나왔을까. 그리고 난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왜, 무엇이 그리도 그리웠을까.
다음날 아침 눈 뜨니 온 몸에 열이 났다. 드디어 ‘그 분’이 찾아오신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감기가 들어 약을 지어먹었는데도 오히려 더 열이 오르고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가려움증에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되어 결국 병원을 찾았다. 내과를 거쳐서 찾아간 피부과에서 내린 병명이 ‘감기약 알레르기’였다. 세상에. 그런 병도 있을 수 있다니.
감기약을 먹는다고 반드시 병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감기를 이기지 못해 약을 복용하면 괜찮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다 몇 년에 한 번 꼴로 그 이상한 병에 걸려 홍역을 앓곤 했었다. 결국 대학3학년 때에 다시 한 번 호되게 고생한 후 감기약을 딱 끊어버렸다.
a
▲ 읽기 조차 어려운 그리스 문자 거리의 기도소에서(데살로니키) ⓒ 양학용
▲ 읽기 조차 어려운 그리스 문자 거리의 기도소에서(데살로니키)
ⓒ 양학용 |
|
그 후로 일 년에 한 두 번꼴로 찾아오는 감기는 내게 질긴 병이었다. 아무리 아파도 약을 먹을 수 없으니, 그저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며 이겨내야만 했다.
결혼 후로는 아내가 생강이니 무즙, 파뿌리니 하며 감기에 좋다는 것들로 차를 만들어 내었지만, 결국 그것들도 내 몸이 감기바이러스와 싸울 태세를 갖추게 도울 뿐, 기침으로 시작해 투명한 콧물로 흐르다 누렇게 변해 주변에 휴지로 쌓이다가 결국에는 코 주변이 벌겋게 헐어버릴 때까지의 그 한 ‘사이클’을 다 지나야만 감기는 물러가고는 했다.
세월이 쌓이면서 감기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달라졌다.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심스레 살펴본다. 왜 찾아왔는지, 며칠이나 머물다 가려는지.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생활 어떤 부분이 어긋나 있으며, 그래서 내 몸이 내게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라고 할까. 이제 감기는 내게 보기 싫고 부담스러운 친구 같은 것이다.
이번에는 그리스 땅으로 찾아왔다. 여행 떠나 세 번째다. 인도 우다이푸르에서는 이틀 동안 게스트하우스 천정만 보고 지내야했고, 이스탄불에서는 그 화려한 도시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도 ‘아야소피아’를 단 한 번 둘러보고 비행기를 타야했었다.
아마 여행을 떠나본 이라면 알 것이다. 길 위에서 아프면 참 속상하다. 그 때는 도처에 볼거리가 넘쳐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오래 여행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날은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길을 나섰다. 도로는 산을 굽이굽이 돌아 능선을 몇 개나 넘더니만 오후가 되어서 바다를 만났다. 네아 페라모스(Nea Peramos) ‘에게해’다. 이제부터는 도로가 해변을 따라 달려갈 모양이었다. 바닷물이 아주 맑아 보이는 모래사장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a
▲ 신들의 바다, 에게해 네아 페라모스(Nea Peramos)에서
ⓒ 양학용
▲ 신들의 바다, 에게해 네아 페라모스(Nea Peramos)에서
ⓒ 양학용 |
|
나는 차 안에 누웠고, 아내는 바닷가 산책을 나갔다. 1시간 쯤 후. 아내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돌아왔다. 몸보신 할 걸 잡아왔다고 했다. 일어나서 그녀가 내민 플라스틱 물병을 들여다보니 큰 멸치처럼 생긴 물고기가 제법 많이 들었다. 아내는 신이 나 있었다.
“내가 맨발로 바닷가를 걷는 중이었어. 근데 모래 위에서 뭐가 번쩍 하는 거야. 얼른 달려가 보니, 바로 요 놈들이잖아. 얼른 주워 담았지. 우리 남편 몸 보양하라고 하늘에서, 아니 바다 속 그리스 신이 내린 선물이니 고맙습니다, 하고.”
풋, 아내는 세상 어디에 떨어진다 해도 너끈히 살아갈 사람이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감기와 씨름했던 지난 기억 속에는 언제가 아내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이 은빛 물고기를 통째로 밀가루에 묻혀 튀겼다. 내 생애 가장 맛있는 ‘해산물요리’ 중에 하나였으리. 그리고 나는 다음날 아침 그리스 신들이 베풀어준 물고기 덕분인지, 아니면 아내의 사랑 때문인지 단 하루만에 ‘그 분’과 이별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