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 캐릭터의 진수를 보여줬던 <겨울새> 주경우역을 맡은 윤상현(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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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유난히 드라마 시장이 어려웠던 한 해였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주연배우들의 출연료 탓에 제작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반대로 광고 수익은 줄어들어 방송국, 제작사 가릴 것 없이 저마다 어려움에 아우성쳤다.
몇 년 동안 아시아를 달궜던 한류 붐도 서서히 그 열기가 식어갔다. 결국 관계자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고, 주연배우 출연료 상한제 도입이 추진되는가 하면 몇몇 배우들은 자진해서 출연료를 깎기도 했다. 최근까지 드라마가 방송되던 몇몇 시간대는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드는 예능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힘든 한 해였지만 그 와중에도 드라마는 그치지 않고 계속 만들어졌고, 방영됐다. 그중에는 시청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성공한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시청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은 실패한 드라마도 있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감독의 빼어난 연출? 이름 있는 작가의 눈물 쏙 빼는 극본? 명배우의 물 오른 연기? 물론 이런 것들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 설정되는 캐릭터를 빼고 드라마의 성공을 논할 순 없을 것이다.
캐릭터를 보면 드라마를 알 수 있다. 하나의 좋은 캐릭터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극본이 좋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극본을 소화하는 배우의 연기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걸 화면에 담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나야 한다. 결국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을 때, 비로소 그럴싸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다.
따라서 시청자들이 배우의 이름 대신 극중 인물의 이름을 더 많이 알 때, 드라마의 제목보다 캐릭터를 먼저 떠올릴 때, 그 드라마는 성공한 드라마라 평할 수 있다.
2008 브라운관, '찌질이' 캐릭터가 접수 2008년 방송된 수많은 드라마 중 단연 돋보였던 캐릭터들을 선택하라면, 단연 '찌질이' 캐릭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찌질이'. 약간 모자란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캐릭터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측은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 이들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해 다음 회를 꼭 보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뽐내기도 한다.
올 초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겨울새>의 주경우(윤상현 분)는 마마보이와 의처증으로 대변되는 '찌질이'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업을 하는 억척스러운 홀어머니(박원숙 분) 밑에서 곱게 자란 주경우는 뭐든지 어머니 말대로 한다. 자기 뜻이나 의지가 없다.
어려서부터 어머니한테 억압받으면서 자란 탓에 성격이 삐뚤어지고 괴팍하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순간 감정이 치솟아 오르면 난폭해진다. 화를 냈다가 울고, 웃다가 폭력을 행사하는, 감정선이 복잡한 캐릭터를 배우 윤상현은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실제로 <겨울새>의 시청률은 10%대 초중반으로 경쟁작인 SBS <조강지처 클럽>에는 늘 뒤졌으나, 시청자들은 "아드님(극 중 박원숙이 윤상현을 부르는 호칭) 때문에 드라마를 본다"며 윤상현의 연기를 극찬했다.
대한민국 대표 '찌질이'하면 역시 <조강지처 클럽>의 한원수(안내상 분)를 빼놓을 수 없다. 악랄한 찌질남의 대표주자 한원수를 연기한 덕분에 배우 안내상은 가족들과 같이 외출하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극중 한원수는 조강지처 나화신(오현경 분)과 부부 사이다. 그런데 어느날 모지란(김희정 분)과 바람을 피우게 되고, 그녀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화신에게 온갖 패악을 부린다. 이 과정이 아주 가관이다. 결국 견디다 못한 화신이 집을 나가고, 뜻대로 지란과 같이 살게 된 원수. 그런데 여기서부터 점차 그의 찌질 연기는 빛을 발한다.
집을 뛰쳐나간 화신은 구세주(이상우 분)의 도움을 받아 디자이너로 화려하게 변신, 당당한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게 되고 이 모습을 지켜본 원수는 다시금 화신에 대한 사랑이 싹트며 이젠 지란과 헤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지란을 내쫓기 위해 부리는 패악은 이전에 화신에게 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상식이 결여된, 비정상적인 악랄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안내상은 전에 없던 오버스러움을 곁들여 한원수라는 인물을 어딘가 모자란, 바보 같은 캐릭터로 버무려낸다. 그런 연기를 주문한 문영남 작가도 대단하지만, 끔찍하리만큼 잘 표현한 안내상의 연기 내공도 대단하다.
'찌질이' 주경우·한원수·박재성 계보 잇는 정교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