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는 2008년 성탄

등록 2008.12.25 17:02수정 2008.12.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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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오늘 예수 탄생을 기념했다.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다면 마음이 충만해야 했지만 왠지 마음이 허(虛)하다. 왜 그런지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 하나 '예수는 없다'였다.

 

교회들은 이 때만 되면 세상이 타락하여 '예수님'은 없고, 산타클로스와 선물만, 음란과 퇴폐만 가득 하다고 비판한다. 주인 잃은 성탄이라고 세상을 향하여 분노한다. 교회는 저 타락한 세상과 달리 진짜 성탄을 기념하자고 외쳐댄다. 교회는 아닌 것처럼.

 

하지만 예수님은 없다고 외쳐대는 교회도 '예수'는 없다. 다른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왜 예수님 없는 성탄이 되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모습과 이유를 안다면 쉽게 알 수 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누가복음 2장 7절)

 

'구유'에 누우신 예수의 모습은 그가 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따뜻한 방이 없었다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낮고 낮은 자를 위해서 오셨음을 선언하다. 가난한 자와 약자를 위하여 오셨음을 말한다. 부자와 배부른 자가 아니라 배고픈 자를 위해 오셨음을 말한다.

 

하지만 성탄을 맞는 교회는 어떤가? 서울 광장에 밝혀진 성탄 트리는 화려하다. 교회는 화려한 트리로 장식했다. '트리'와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데도 교회는 성탄절만 되면 트리로 화려한 치장을 하기에 바쁘다. 예수님 대신이 트리가 자리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은 교회가 버젖이 행하고 있다.

 

성탄 트리는 한 순간 지나가는 것일 수 있지만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짓는 '예배당'은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짜리' 건물이다. 아주 적은 목회자들이지만 목회자 연봉이 1억이 넘는다. 목회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수억씩 책정되어 논란이 이는 교회도 있다.

 

구유에서 나셨다고 설교하지만 말구유 같은 삶이 필요하다고 설교하지 않는다. 낮고 낮은 자로 오셨다고 설교하지만 그런 삶이 필요하다고 설교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들 배를 채우고, 부자되는 일에 필요한 예수일뿐, 예수님이 살아가신 삶은 귀찮을 뿐이다.

 

화려한 성전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교회는 오늘도 대리석으로 건물 짖기에 바쁘다. 성경 어디에도 말씀하지 않았지만 예배당 짖는데 돈 바치면 복 받는다는 논리를 내세워 피와 땀이 밴 신자들 주머니를 털고 있다. '예수'는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태복음 8장 20절)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는데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다. 그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자들이 입으로만 이 말씀을 전할 뿐 자기 삶과는 관계가 없다. 어쩌면 이런 성경말씀은 설교하기 가장 귀찮은 말씀이리라.

 

부자 되라, 복 받으라 외쳐야 하는데 믿음의 대상인 예수가 머리 둘 곳도 없는 분임을 설교할 수 있겠는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가? 없다. 찬양한다면 이는 위선이요, 거짓된 예배다.

 

예수님이 만난 이들은 갈릴리 어부와 세리였다. 여성과 장애인들이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예루살렘을 생각했지만 예수는 나사렛 사람이었다. 이는 그 동안 예루살렘 중심 사상인 기득권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우리 시대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신 이 길을 가지 않는다. 그 때 예루살렘 기득권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처럼 또 다시 기득권을 옹호하고, 기득권 편에 섰다. 아니 기득권이 되어버렸다. 그리니 '예수'는 없다.

 

성경은 말씀한다. 가난한 자와 고와와 과부를 돌보라고, 객을 돌보라고 말한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 (신명기14장 29절)

 

신자가 가야 할 길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자들을 사랑하고 함께 할 사람들임을 명한다. 기득권이 되기 위하여 살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로 살아가라 말한다.

 

예수님은 죽음 직전에 헤롯에게 섰을 뿐, 스스로 헤롯 앞에 서지 않았다. 헤롯이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만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바라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말씀하셨다(막8:15). '누룩'이란 위선을 뜻한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 의로운 척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닌 위선 말이다.

 

예수는 헤롯이 자기를 죽이고자 한다고 갈릴리에서 떠나도록 경고를 받았다. 이 때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지칭하였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32-33).

 

권력이 그를 방해할지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다. 권력은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자신의 나라와는 달랐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항상 권력자들과 대척점에 서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여 세상을 구원했다. 하지만 요즘 교회는 다른 것들을 죽여 자신이 구원받고자 한다. 예수님 제자들이라 말하지만 예수가 간 길은 관심이 없다. 다들 자기 자랑하고 높이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오늘도 예수님을 입으로 불렀는데 부른 이유는 내 배 채워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2008년 성탄절은 예수님이 없다. 내일도 그리 될 것이니 한국교회를 어찌할꼬.

 

2008.12.25 17:02ⓒ 2008 OhmyNews
#예수 그리스도 #성탄절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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