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땅끝 사구미에 2008 발자국 찍다

[그 품에 안기고 싶다 107] 겨울햇살 퐁당퐁당 빠지는 바다와 모래밭

등록 2008.12.28 15:06수정 2008.12.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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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이곳 바닷가를 찾은 권 사장(51)이 수평선이 바라다 보이는 모래밭에 홀로 서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다 ⓒ 이종찬



그 어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8 쥐띠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국가경제는 물론 서민경제마저 깡그리 무너진 올 한 해가 얼마나 힘에 부쳤던지 구멍이 뻥 뚫린 가슴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씽씽 불며 난도질을 하고 있는 듯하다. 서럽다. 깡소주 몇 병이라도 들고 어디론가 훌쩍 여행이라도 가서 무너진 마음을 새롭게 추스르고 싶다.


2009 소띠 해에는 올해보다 더 혹독하고 매서운 추위(경제위기)가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 지독한 추위를 이겨보려는 사람들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세월이 어려워도 기어이 살아남아야 이 어려운 세월을 헤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누가 가난한 서민들을 이토록 위태로운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가를 꼬옥 기억해야 되지 않겠는가.

겨울바다가 그립다. 지난 해 이맘 때 땅끝마을로 가다가 우연찮게 만났던 그 은빛 찬란한 겨울바다. 짙푸른 하늘을 쨍그랑! 깨며 촤르르 쏟아지는 겨울햇살이 퐁당퐁당 빠지는 바다. 그 바다를 황진이 눈썹 같은 부드러운 치마로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모래밭. 그 아름다운 살가운 바다에 나그네 2008 마음을 꼭꼭 찍고 싶다.

그 고운 모래밭에 나그네 2008 발자국을 꼭꼭 찍고 싶다. 그 바다에 2008 나그네 마음을 찍으며, 2009 기축년 한 해를 살며시 열어보고 싶다. 그 모래밭에 2008 나그네 발자국을 찍으며, 2009 기축년 한 해는 제발 가난한 서민들이 돈가뭄에 시달리지 않게 해달라고, 가정이 무너지는 그런 불행한 일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싹싹 빌고 또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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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사구미(전남 해남읍 송지면 통호리 사구미 마을) 바닷가는 나그네가 두 번째 찾는 곳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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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사구미 바닷가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동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요하고도 포근한 해수욕장이다 ⓒ 이종찬


저무는 12월,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도 어둡다

저무는 12월. 가난한 사람들 대부분은 '망년회'라는 걸 열어 2008 아픈 기억을 모두 잊고 2009 새해에는 새 출발하자고 밤새 깡소주를 마시며 악을 바락바락 쓴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2008년이 낳은 경제위기가 2009년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서글픈 말들을 서슴없이 쏟아내고 있다.


아프다. 해남읍내에서 땅끝마을 사구미 바닷가로 가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얼굴도 몹시 어두워 보인다. 나그네 마음 또한 마주치는 사람들 어둔 얼굴 못지않게 어둡다. 올해 들어 집에 제대로 된 생활비는커녕 공과금조차도 제 때 제 때 내지 못해 얼마나 쩔쩔 매곤 했던가. 쌀값이 그리 비싸진 않지만 쌀이 떨어져갈 때면 얼마나 또 불안했던가.

지난 3월 13일(목)에는 맏사위(나그네)를 그렇게 아끼던 장모님마저 이 세상을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모든 일이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 이리저리 발버둥을 쳐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게 나그네 무능 때문인지 알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무능은 나그네 것이 아니라 정부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오늘따라 차창 밖으로 스치는 땅끝마을 겨울바람 소리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 저만치 짙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해남 들녘에는 겨울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다. 이 추운 땡겨울 속에서도 저 눈부신 겨울햇살을 야금야금 쪼아 먹으며 짙푸르게 자라고 있는 겨울배추와 마늘이 그나마 나그네 추운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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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사구미 바닷가에는 다른 해수욕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운 모래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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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사구미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예로부터 백사장 모래 속에 사금이 많다 하여 '사구'(沙口)라는 마을 이름이 붙었다 ⓒ 이종찬


2008 온갖 시름을 붉고 고운 해넘이에 넘겨 보내자 

사구미(전남 해남읍 송지면 통호리 사구미 마을) 바닷가는 나그네가 두 번째 찾는 곳이다. 지난 해 이맘 때 다녀갔으니깐. 근데, 그때 이 아름다운 바다와 고운 모래밭에 마음을 몽땅 빼앗겼던가 보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나그네 마음이 울적하고 쓸쓸할 때마다 하필이면 이 바닷가가 자꾸 눈에 밟히곤 했으니까.     

사구미 바닷가에 내려선다. 사구미 바닷가는 지금까지도 바깥사람들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바다다. 황진이 눈썹처럼 예쁘게 펼쳐진 고운 모래밭(1.5km)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모래밭 뒤편으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바다 양식장까지 있어 여름철 가족들과 피서를 즐기기에 아주 좋다.  

하지만 나그네는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이곳을 찾는다. 까닭은 사람이 별로 없어 홀로 모래밭에 발자국을 꼭꼭 찍으며 스스로 되돌아보기에 차암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걷다가 가끔 나그네가 찍어놓은 발자국을 뒤돌아보며, 은빛 찬란한 바다에 한껏 취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때문이다.   

사구미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붉고 고운 해넘이도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저만치 아스라하게 보이는 땅끝 사자봉 왼 편으로 지는 겨울 해는 돌고래처럼 점점이 떠도는 자그마한 섬들을 붉게 붉게 물들이며 서녘바다로 쏘옥 빨려든다. 그 해넘이를 바라보고 서 있으면 2008 온갖 시름을 지는 해가 몽땅 끌고 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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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사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밭 곳곳에는 예쁜 조개껍데기가 널려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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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고운 모래밭 한 쪽에는 발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은 모래성 하나가 쌓여 있다 ⓒ 이종찬


사구미, 모래 속에 사금이 많다는 뜻

사구미 바닷가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동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요하고도 포근한 해수욕장이다. 안내자료에는 "사구미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예로부터 백사장 모래 속에 사금이 많다 하여 '사구'(沙口)라는 마을 이름이 붙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사구미란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몇 가지 더 있다.   

첫째는 모래가 많고 길게 펼쳐져 있다고 하여 '모래미'라는 말과 함께 '사구미'로 불리웠다는 설이다. 둘째는 모래 속에 규석이 섞여 있는 사금이라는 뜻에서 '사구미'라 불렀다는 설이다. 셋째는 모래 언덕 끝이라서 '사구미'(沙丘尾)였는데, 한자가 '사구'(沙口)로 잘못 쓰이게 되었다는 설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사구미 바닷가에는 다른 해수욕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운 모래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게다가 이곳에는 고산(孤山) 윤선도가 보길도를 오갈 때 시를 읊으며 가끔 쉬어갔다는 샘터 흔적도 남아 있다. 그러니까 사구미 바닷가 곳곳에도 고산 윤선도 숨결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곳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송지면 송호리에서 북평면 남성리까지 12km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잔잔한 바닷가에 점점이 떠도는 섬들을 품에 끼고 휘돌아 나간다. 특히 바다 안개를 하얗게 피워 올리는 수많은 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선경에 빠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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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태욱(9)이가 추운 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모래성을 쌓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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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자그마한 고깃배가 섬처럼 점점이 떠 있는 사구미 바닷가 ⓒ 이종찬


그 누군가 이루려 했던 모진 꿈처럼 쌓인 모래성 하나

"형! 낚시가 좀 돼?"
"노래미, 볼락, 학꽁치가 간혹 올라온다는 데 아직 소식이 감감해"
"겨울 낚시는 저어기 통호리 주변에 있는 대바위 등지에서 그럭저럭 된다던데?"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니까 바람도 쐴 겸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거지 뭐."

자그마한 고깃배가 섬처럼 점점이 떠 있는 사구미 바닷가. 같이 이곳 바닷가를 찾은 권 사장(51)이 수평선이 바라다 보이는 모래밭에 홀로 서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저만치 제 홀로 떠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고깃배 모습을 빼다 박았다. 고깃배는 제 홀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권 사장은 제 홀로 고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언제 쌓았을까. 고운 모래밭 한 쪽에는 발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은 모래성 하나가 쌓여 있다. 그 누군가 끝내 이루려 했던 모진 꿈처럼. 그 모래성 옆에서 권 사장 아들 태욱(9)이가 추운 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모래성을 쌓고 있다. 태욱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모래성을 쌓고 있을까.

사구미 바닷가 모래밭을 천천히 걷는다. 마치 사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밭 곳곳에는 예쁜 조개껍데기가 널려 있다. 또르르 밀려오는 파도가 매끄러운 조개껍데기 몇 개 더 부려 놓는가 싶더니 이내 조개껍데기 몇 다시 입에 물고 바다를 향해 또르르 달려가 버린다. 그래, 어쩌면 우리들 삶도 저러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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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미 바닷가 사구미 바닷가 고운 모래밭 위에 2008 발자국을 꼭꼭꼭 찍었다 ⓒ 이종찬


저무는 2008년 12월. 나그네는 눈부신 사구미 바닷가 고운 모래밭 위에 2008 발자국을 꼭꼭꼭 찍었다. 그 발자국 하나하나에 2008년 내내 나그네를 몹시 우울하고 쓸쓸하게 만들었고, 삶을 모질게 황폐화시켰던 모든 시름을 담았다. 다가오는 2009년에는 더 이상 큰 시련이 없기를 빌고, 또 빌면서.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천안-논산천안고속도로-광주-나주-해남읍 13번 국도-완도 방면 20km-땅끝마을 표지판 1번 국도 11.4km-송지면-813번 지방도 9km-땅끝마을 들머리 7km-사구미해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천안-논산천안고속도로-광주-나주-해남읍 13번 국도-완도 방면 20km-땅끝마을 표지판 1번 국도 11.4km-송지면-813번 지방도 9km-땅끝마을 들머리 7km-사구미해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사구미 바닷가 #땅끝마을 #은빛바다 #고운 모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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