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파업했다
아니 사실은 언론노조의 총파업이다.
MBC는 물론 SBS, EBS, CBS, YTN 등 주요 방송사가 모두 참여했고 KBS는 MB정부가 들인 '공'덕분인지는 몰라도 독자행보를 걷고 있으나 사내 '사원행동' 등의 그룹이 파업투쟁에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방언론들도 지속적으로 파업대열에 동참한단다. 듣자하니 사상 초유, 최대의 언론 총파업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MBC 파업으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MBC의 파업투쟁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일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파업에 관한 언론보도 선두에 '아나운서'들이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수천명이 참여하는 파업은 남대문시장에 펼쳐진 옷가지 만큼이나 많지 않았던가?
'MB 언론악법'에 반대한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MBC 아나운서들을 보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언론인으로서 더군다나 아나운서가 자신의 입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92년 MBC파업당시 손석희, 백지연으로 대표되는 사례가 사실상 거의 유일하다.
게다가 요즘은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만큼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 또한 높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수하고서까지 언론인들이 거리로 나온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나운서들의 입에서 '물대포, 투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아나운서 참여가 파업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파업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아나운서들을 약올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노조 총파업에 등장한 아나운서는 이번 '파업투쟁'을 훈훈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미 MB정부의 광우병쇠고기 수입과정에서 실망한 국민들이 많기도 하지만 지금 MBC에 밀려드는 지지의 파도는 상상 이상이다.
조금 과장하면 대한민국사에 이제껏 이렇게 '훈훈한 파업'은 없었다.
아나운서가 되기는 무척 어렵다고 한다. 언론고시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지금도 대학에서, 학원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나운서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며칠전 보도에 의하면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 시험 경쟁률이 400대 1이었다고 한다. 지금 거리에서 파업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아나운서들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장급 이하 평사원들만 노동조합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하니 92년 파업에 참여했던 이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그것도 연예인과 비슷한 인지도와 인기를 끌고 있는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유인물을 들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고 있다. 왜? 방송이 아닌 거리에서?
일단 법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투쟁의 현장'에 나선 아나운서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시위대의 모습인지 기자인지 헛갈릴정도로 말쑥한 차림에 정갈한 말투로 또박또박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깔끔하다. '아마추어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하긴 그들은 프로다.
이들의 등장은 일단 기존의 운동권, 노동조합이 주는 무섭고, 딱딱한 이미지가 아닌 부드럽고, 친절하고, 설득력있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시민들로선 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그들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시위대이기 보다는 '준연예인'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시민들로서도 그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상상 이상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파업에 나선 이들을 보며 또 어떤 이들은 동정의 한표를 던지기도 한다.
아무튼 MBC로 대표되는 언론노조 총파업의 모습은 매우 훈훈하다.
구속을 각오하고 싸움을 시작한 언론노조 집행부와 절실함으로 거리에 나선 언론인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훈훈함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촛불 시즌2...훈훈한 바람이 거대한 파도로!
조금 이른감이 없지 않지만 MBC가 선봉에선 이 파업이 제 2의 촛불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정에서 모였던 촛불을 든 시민들의 문제의식과 불만은 MB정부를 통해 수용되지 않은채 전투경찰의 방패와 곤봉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이렇다보니 언젠가 찾아올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촛불시위가 국민의 폭발적 지지와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쉽고,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참여한 1차적 이유는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입장의 동일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어떤 것에 동의한다고 해서 폭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함께 할만한 충분한 내용과 근거 그리고 '형식과 틀'이 필요하다.
촛불시위는 그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충족시켰고, 대중은 폭발하듯 거리로 모여들었다.
이런 점에서 MBC의 '훈훈한 파업'은 더 많은 대중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나운서들의 따뜻한 목소리, 또박또박하고 논리정연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함께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이미지에 점령당한 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그 무엇보다 아나운서들의 호소는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로또적인' 기대만으로 제 2의 촛불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제 2의 촛불이 예상되는 희망의 근거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첫번째 희망의 근거는 언론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총파업이다. 사회운동, 시위를 과정에서 겪게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언론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정부, 경찰, 정당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보도해 대중이 그 내용의 본질을 알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수만이 모여서 한 목소리로 외쳐도 보도의 비중은 대통령의 목소리보다 작게 되는 것이 언론의 특성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언론인들이 사활을 걸고 참여할만큼의 중대사안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MB의 압박으로 사주가 굴복하는 경우와 MB 악법을 통해 이득을 보게 될 언론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 어느때보다 언론의 호의적인 보도가 예상된다. 정치적 사안을 주로 언론을 통해 보는 대중은 TV나 신문이 대중의 목소리와 대통령의 목소리가 비슷하게만 전달해주더라도 사뭇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MBC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적당히 하다가 말겠다는 모습이 아니다. 내가 볼 때 MBC는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법이 통과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곳이 바로 MBC가 아닌가? MBC라는 거대한 산이 뒷받침이 된다면 마르지 않는 보급창고를 확보한 것과 다름이 없다.
두번째 희망의 근거는 2008년 여름을 달군 촛불, 여전히 목마른 그리고 매우 성장한 국민들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아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거리에 모여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지만 돌아온 것은 물대포와 방패, 곤봉이었다. 그렇게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싸웠던 국민들은 정부의 강경진압에 물러섰지만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대중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MB정부는 자신들의 반격으로 국민들에게 이겼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이어지는 밀어붙이기 행정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이는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다. 국민이 한 목소리로 잘못된 정책을 비판했다. 그것도 고작 '쇠고기' 수입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러나 MB정부는 국민의 작디작은 요구를 외면한 채 쇠고기 수입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물러난 것이 아니라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회가 바로 이번 언론노조 총파업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여러 측면에서 광우병소고기 수입반대운동과 닮아 있다.
먹거리만큼이나 TV, 신문은 우리 생활에 매우 밀접한 대상이다. 언론이 정부에 의해 장악이 되서는 안된다는 매우 '상식적인'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전면에 나선 아나운서들이 분위기마저 훈훈하게 해준다. 2008년 5월의 모습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여름이었고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
MB정부가 싫어 이민간 사람이 많지만 않다면 국민들 역시 그대로다. 임기초 한때 7%까지 추락했던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는 그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기를 바래서 한동안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언론장악의도를 그것도 날치기로 시도한다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촛불시위를 통해 사회문제에 더 많이 눈을 뜨고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의 성장, 이것이 제 2의 촛불을 예상하는 두번째 근거다.
마지막 희망의 근거는 바로 이명박 자신이다.
MB 정부는 지금 자신들이 추진하는 '사회개혁'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산넘어 산이라고 광우병쇠고기라는 큰 산을 하나 지나가니 더 큰 산이 나타났다. 이 산을 피하면 끝일까? 아니다 더 큰 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MB정부가 바라는 사회는 10년전이 아니라 20년, 30년 전이다. 그때만큼 통제하고 독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한나라당과 MB정부의 행태를 볼 때 '사회개혁법안'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이 얼마나 선방해줄지 모르지만 오히려 연내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이면 싸우기가 더 힘든 법이다. 그러나 MB정부처럼 무식하게 나와야 대중이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국민은 이번 사태를 통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본질을 조금 더 깊게 파악하게 될 것이고 결국 거리로 나오게 될 것이다.
만의 하나 이번 언론노조 총파업이 실패로 끝날수도 있다. 그러나 MB정부의 정책은 계속해서 서민들의 삶을 옥죄어 올 것이고 혹 이번이 아니더라도 2-3차례의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차례의 기회를 놓칠때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된다. 지금 MB정부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채 달리는 폭주기관차라 할 수 있다. 군부구테타도 아닌 정부가 집권초기에 이렇게 막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모두가 나서 이 폭주기관차를 세우는 데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더 큰 피해를 맛보게 될 것이다.
2008.12.29 11:1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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