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백지화는 다시 백지화돼야 한다

[주장] '연구보고서'는 도입 주장했는데 거꾸로 해석

등록 2008.12.29 14:55수정 2008.12.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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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맞이하는 관가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은, 이전 정권의 정책을 폐기하는 데 경쟁적으로 앞장서야만 새 정권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기존의 정책을 뒤집는 일에 열심을 넘어서 허둥거리고 있다.

원래 국가의 정책은 기준과 원칙을 정한 후, 사안별로 구분하고, 또 피해 발생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시행시기를 선택하는 데까지 노심초사해야 한다. 시작에서부터 마무리가 되는 시점까지 돌다리도 두드려가면서 건너듯 해야 하는 것이다. 행정의 지향점이 ‘국리민복’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정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는 공복이기 때문에 작은 일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고 그러한 노력으로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잣대로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직자를 들여다보자.

예를 들어, 국방부가 대체복무 백지화 발표를 했다.

한말로, 다급하게 서두르는 것이 ‘미친년 널뛰듯 한다’는 말에 딱 어울린다.

병무청의 연구용역을 발주한 대전대학교의 진석용 교수팀이 연구보고서를 병무청에 제출한 것이 12월 20일이고 통상 지휘기관인 국방부에 보고를 하는 절차를 치루기도 전에 12월 24일 국방부가 브리핑을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먼저 발표한 것이다. 왜 절차를 무시하고 서두르게 되었는지, 행여 병무청이 딴짓거리(?)를 못하게 막말로 초를 친 것이 아닌지 상상력만 무성케 한다. 지금까지 국방부가 보인 모습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간의 8여년 동안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 공론화 과정에서 국방부는 행동이 둔한 짐승인 ‘늘보’보다 더 움직임이 느렸다. 느린 걸음으로치면 거북이 뒷걸음치기 보다 더 꾸물거리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정당화를 해 왔는데 이번 백지화 발표는 강도가 경찰에 쫓기듯 서둘렀다.

15개월 전인 2007년 9월 18일, 국방부는 2009년 1월 제도 도입을 목표로 입법화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KBS여론 조사 결과, 50.2%로 도입의 명분을 얻었다고 부연했다. 누가 의심을 하겠는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그대로인데, 관리자인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돌변하리라고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드디어 12월 24일, 권력의 코드는 이렇게 맞추어야 한다는 듯 작심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뒤집었다. 여론조사 한 건으로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도입을 무산시킨 것이다. 병무청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500여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그중 ‘여론조사 및 제도일반 연구 결과 6쪽과 국민여론조사 3쪽으로 도합 9쪽이 이번 발표의 근거다. 국방부가 이 보고서를 “정책에 활용한다”고 전제했으니 보고서 전체를 꼼꼼하게 정독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보고서는 대체복무 도입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렸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연구용역 책임자인 진석용 교수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우리 연구는 대체복무를 도입할 경우 어떻게 운영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론조사가 그렇게 중요하면 먼저 여론조사를 하고 나중에 대체복무 운영방안 용역을 주었어야 절차상 옳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양말사이로 삐쳐 나온 발가락 하나를 보고 발가벗은 몸을 보았다고 우기는 꼴이다. 억지이고 떼쓰기일 뿐이다.

당초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신중한 접근,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라는 복선을 깔았지만, 구체적인 시행년도까지 못박아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속이려고 작정하면 속아주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고 자위할 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꼴이 되었다. 당초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라고 했을 때, 언제나 뒤집을 수 있는 ‘요술 방망이’ 용어인 것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고 못남을 탓할 수밖에! 상대는 다양한 군사작전의 양태에 익숙한 집단이지 않는가!

용역 책임자인 진석용 교수는 “본말 호도”되었다며 격앙하고 있다. “빙산의 일각인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대체복무 허용이 시기상조라고 하니 허탈하다”고 말한다.

연구에 임한 그의 학자적 자세를 엿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논리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고 정직하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다면 관련 당사자들은 불이익을 받더라도 시기를 기다리며 승복을 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병역거부자들이 묵묵히 징역형을 감내해 온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방부가 보여 준 인권말살 태도는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반발을 하는 것이다. 

국방부는 "정책에 활용하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연구보고서’를 공개하고 재 여론조사를 복수의 기관에 의뢰하여 제도도입 백지화를 다시 백지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기준에 부합되게 복무기간도 ‘징벌적 성격’이 되지 않도록 대폭 축소하여 법률의 취지에 맞게 입법을 해야 한다. 여론을 핑계로 자신들의 자리를 굳히려는 속내를 보여서는 안된다. 그 입지때문에 치루어지는 징역형은 너무 값비싼 대가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인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백지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우선 UN인권이사회로부터 500여명의 권리구제청원이 접수되어 심의중이다. 동위원회는 이미 2006년 처벌받은 2명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배상을 하라고 권고를 했다. UN사상 500명의 권리구제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국내적으로는, 병역거부자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있지만, 전원 불구속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실형선고가 예상될 경우에는 구속의 하고 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는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는 2건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심리중에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법률해석은 언제나 가변적이다. 형사 처벌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가 사법부내에서는 이미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다. 재판정에서 피고인에 대한 심리중에 간간히 그러한 기류가 배어나오고 있다.
시간은 국방부에 유리하지 않고 병역거부자편이다.

국방부가 더 이상 여론의 이름으로 인권을 후퇴시키는 조처를 취해서는 안된다.

행여 국방부가 병역거부자의 양심형성의 근원인 성경을 금서목록에 포함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까 더 걱정스럽다.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국방부 정책 #사회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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