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뻔한 질문으로 '대체복무제' 뒤집은 국방부

병역거부자에게 군대 가라는 이상한 설문조사

등록 2008.12.30 12:11수정 2008.12.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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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국방부가 발표한 병무청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대전대학교 진석용 정책연구소가 병무청의 용역으로 진행한 국민의식조사에서 응답자 2000명 가운데 68%가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허용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는 이를 근거로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언급했다. 공식적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백지화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반대 성명을 냈다. 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일반적인 여론조사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실제 이 연구의 책임자였던 진석용 대전대학교 교수까지 국방부의 결정은 성급한 것이라 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대전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진 교수는 여론조사는 투표가 아니며, 국방부가 대체복무에 대한 여론조사를 가지고 도입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겨레21> 인터뷰에서도 진 교수는 "우리 연구는 대체복무를 도입할 경우에 어떻게 제도를 운영할지가 중심인데, 빙산의 일각인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대체복무 허용이 시기상조라고 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일부 인권단체에서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여론 조사 결과를 가지고 시비를 논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대전뉴스>는 전했다.

 

이제 이 사안에 대한 논쟁은 소수자 인권의 문제와 대체복무제 도입의 정당성에 근거하는 원론적인 문제제기를 넘어서서 이번 설문조사 자체에 대한 공정성 문제와 국방부의 정치적인 처신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고 있다. 연구용역 책임자까지 국방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으며, 공개된 설문지의 문항구성은 병역거부 사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마저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설명은 달랑 군 입대 대신 사회봉사?

 

a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난 지난 7월 6일, '대체복무제 도입 재검토' 발언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근조 인권'을 상징하는 검은옷을 입고 국화꽃을 든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난 지난 7월 6일, '대체복무제 도입 재검토' 발언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근조 인권'을 상징하는 검은옷을 입고 국화꽃을 든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 나동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난 지난 7월 6일, '대체복무제 도입 재검토' 발언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근조 인권'을 상징하는 검은옷을 입고 국화꽃을 든채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 나동혁

필자 역시 24일 국방부의 발표를 비판하면서도 (관련기사 : 꼭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내야겠습니까), 진석용 교수의 의견처럼 여론조사 자체의 공정성 문제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수자 문제가 일반 여론조사로 결정될 수 없다는 원칙이 있기도 했거니와, 설문조사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문문항을 검토하고 이전 설문들과 비교하면서, 이것은 단지 표현이나 설문방식의 차이에서 만들어지는 오차를 넘어 명백한 문제점이 있음을 확인했다.

 

먼저 이번 연구용역에 사용되었던 설문을 살펴보자. 대체복무제에 대한 찬반을 물었던 가장 핵심적인 문항은 2번은 다음과 같다.

 

문2. 귀하께서는 종교적 사유 등 병역거부자들이 군에 입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군 입대 대신 사회봉사 등의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군에 입대하여 한다 / ② 군 입대 대신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 설문에 대해서 대체복무제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2007년 9월 국방부가 발표했던 안에서 병역거부자에게 허용될 대체복무는 현역의 2배의 기간 동안 합숙복무를 하는 것이었다. 난이도 역시 사회복무 분야 중 최고난이도 업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문제의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최초로 대체복무제의 '안'을 제시한 것이고, 이를 통해서 추상적이기만 했던 대체복무제는 하나의 판단준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설문에서는 '군 입대 대신 사회봉사 등'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1년도 더 지난 국방부의 발표를 일반 시민들이 기억할 리도 만무한 상황에서 단지 '군 입대 대신의 사회봉사'라는 설명만으로는 한국적 맥락에서 면제 혹은 특권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지난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었던 임종인 의원실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와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문항은 다음과 같았다.

 

평화적 신념과 종교적 이유 등으로 총을 들기를 거부하고 징역을 사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현역보다 1년이 더 긴 36개월간 대체복무를 시키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처럼 예상 복무기간과 감옥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명시하자 설문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대체복무를 '찬성한다'는 응답이 58.9%로 '반대한다'(25.9%)는 응답에 비해 2배 정도 많았다. 뿐만 아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국방부의 2006년 대체복무 연구위원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역시 일반적 대체복무제도를 언급하면서 3년 정도의 복무기간임을 설명했다.

 

대체복무제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이 현역복무와 형평성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체복무제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설문의 치명적인 결점이다. 병무청 용역으로 진행되는 이 연구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무게감을 따져본다면 더욱 그렇다.

 

병역거부자는 군대와 대체복무제 둘 중 하나를 택해라?

 

a  2005년 국회 공청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양심적병역거부자 오태양씨.

2005년 국회 공청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양심적병역거부자 오태양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5년 국회 공청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양심적병역거부자 오태양씨.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전화설문으로 진행된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는 1번 군대, 2번 대체복무제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이는 이 설문이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설문인지조차 의심스럽게 만드는 점이다.

 

병역거부자는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가고 있다. 지난 60여 년간 1만 3천 명의 전과자가 만들어졌고, 현재에도 430여명의 젊은이들이 수감되어있다. 대체복무제란 이렇게 감옥에 가는 이들에게 다른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문은 1번 '계속 감옥', 2번 '대체복무' 로 구성되어야 한다. 혹은 대체복무제에 대한 찬/반으로 구성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들을 집단으로 개종시키거나 병역거부의 신념을 버리도록 세뇌를 시킬 것이 아니라면 지난 60년간 죽음까지 감수하며 감옥행을 걸어왔던 이들에 대한 여론조사에 "병역거부자들이 군에 입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설문이다. 또한 감옥행이라는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가려진다.

 

그렇기에 이전의 설문들은 대체복무제도의 찬반을 묻거나 형사처벌만이 존재하는 현행 제도의 개선에 대한 찬반여부를 질문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 어디에도 '군대에 가야 한다'와 같은 응답지는 없다.

 

만약 이것이 병역거부 사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문항을 만든 것이라면, 국가예산낭비에 대한 책임은 불가피하다. 국방부 역시 이러한 설문에 기대어 국민공감대를 재단했던 것을 재고하고, 적극적으로 소수자와 공존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68%가 동의하니 병역거부자들에게 군대에 가라고 떠밀기 위한 설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래된 일도 아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종교집회 현장을 급습해서 입영연령대의 남성을 강제입영 시켰다. 그렇게 잡아넣어서 오늘 총을 주고, 안 받으면 내일 다시 주고, 그래서 항명죄를 2회 저지른 누범으로 처벌하기도 했다. 그것이 200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민간법정에서의 재판으로 바뀌었다. 설마 그때로 다시 가겠다는 것인가? 둘 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소수자 문제까지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국방부

 

문제는 설문조사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이 문제를 발표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교묘하게 누락했다. 실제 연구용역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난 10월 국회공청회의 내용과 그 공청회에서 발표된 전문가 의식조사 결과는 그 어디에도 없다. 국회의원, 변호사, 대학교수, 언론인 등 5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85%가 넘는 압도적인 대체복무제 도입 찬성 의견을 보였다는 것은 나타나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연구용역 중 하나였던 설문조사 결과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실제 다른 영역인 제도일반 연구결과 부분은 단지 "진석용 교수가 수행하였다" 수준에서만 언급되었다. 병무청 보도 자료에 수록된 제도일반 연구결과의 요약을 보면 현역을 포함한 예비군 복무자에게도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하며, 종교적 사유 외의 비종교적 사유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전향적인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복무기간은 현역의 1.5배에서 2배로, 심사는 법조계, 학계, 공무원 등 9명으로 구성되는 '대체복무판정위원회'에서 진행한다는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단 한 번의 국민의식조사에 의해서 모두 가려졌다. 더욱 국방부 정치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면은 "판단을 무기한 유보하겠다"는 것이다. 공식 방침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백지화의 효과가 있는 고단수 수법. 국제사회의 여론과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의견에는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라는 면피용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되는 젊은이들의 감옥행에는 팔짱을 끼고 있겠다는 이야기다. 무기한 유보는 그렇기에 비겁한 정치다.

 

부디 인권의 관점에서 소수자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를

 

소수자가 등장하면 다수는 처음에 그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게 바꾸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고 알려진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등장한 병역거부자들에게 비겁자와 매국노라는 비난이 지배적이었다. 감옥에 집어넣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처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이 문제가 이렇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처벌해도 저들의 신념이 바뀌어서 군복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공존의 해결책을 찾았다. 대체복무제가 그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의무소방관은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병역거부자들이 주되게 해왔던 업무다. 경비교도대 업무는 러시아에서 병역거부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대체복무 중 하나이다. 병역거부자들에게 군복무 대신 인정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대체복무제를 한국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계속 보내는 비극적인 상황이다. 더욱이 대체복무제 도입의 목전에서 정부는 자기부정이라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방부는 국민공감대를 명분으로 여론조사 결과만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소수자 인권의 문제가 일반 여론조사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반 시민들의 편견과 차별을 받는 이들일수록 그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정부가 보장하여야 한다. 그것이 인권문제에 있어서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조건상 일반 여론조사가 정책결정에 있어서 고려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면 더 치밀하게 설계된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민감한 소수자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설문결과는 그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결코 국방부가 이것을 근거로 지난 8년간의 한국사회의 중요한 진전을 뒤집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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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모임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8.12.30 12:1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임재성 기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모임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 #대체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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