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학자가 읽어주는 중국 살이 이야기

백수 바라보는 베이징대 노학자 지셴린 회고집 <나 지나간다>

등록 2009.01.02 16:54수정 2009.01.0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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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인상적인 장수 문인들이 몇 있다. 옛 학자로는 85세까지 산 황종희(黄宗羲)나 73세를 산 왕부지(王夫之) 등이 대표적인 장수학자다. 당대 인물로는 당장에 기억나는 인물이 바진(巴金 1904 ~2005)이다. 그는 백수를 누렸고, 그의 노년은 ‘매의 노래’ 등을 통해 우리 독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셴린 교수 사진 중국 당대 스승으로 추앙받는 지셴린 근황사진
지셴린 교수 사진중국 당대 스승으로 추앙받는 지셴린 근황사진지셴린 교수 소개 페이지
▲ 지셴린 교수 사진 중국 당대 스승으로 추앙받는 지셴린 근황사진 ⓒ 지셴린 교수 소개 페이지

그럼 아직 살아있는 당대 최고의 장수문인은 누굴까. 아마 많은 이들이 베이징대 지셴린(季羡林 1911~)을 말할 것이다. 산둥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이 수재는 칭화대를 거쳐서 선생으로 일하다가 뽑혀 독일유학의 기회를 잡는다. 짧게 예정된 유학은 2차 대전으로 인해 10년으로 길어지고 그는 돌아와 베이징대학의 교수로 교편을 잡은 후 아직까지 베이징대학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중국 현대 학자 문인들에게는 모두 한곳의 특이한 장소가 있다. 바로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이다. 이 시간 동안에는 라오서(老舍)처럼 죽음에 이른 이도 있고, 이때 받은 상처로 단명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지식인 출신에 독일유학까지 갔다 왔으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시절에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리 없다. 그도 외양간에서 소돼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몰두할 자신을 찾았고 그 험난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아흔을 넘어 바진의 장수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당대 중국이 배출하기 힘들었던 제대로 된 지성이다. 대학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는 동양학을 전공했다. 범어 등 8개국어를 공부하면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돌아와 자의든 타의든 고난의 시간을 거쳤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 우리에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책 ‘다 지나간다’(원제 閱世心語)를 읽었다.

 

이 책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선 단점은 책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너무 평이하다는 것이다. 사실 산전수전 다 겪고 아흔을 넘긴 노학자이니 만큼 세상에 큰 걸림이 없다. 또 그의 풍상의 시간은 문혁 시기의 기록인 ‘우붕잡억’ 등에 있으니 이 책은 그런 곡절의 시간보다는 평상심으로 쓴 명상록이니 만큼 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 세상의 이치에 대한 통찰을 가진 스승이라면 풀어줘야할 중국의 미래에 대한 경고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중국 정치나 환경문제등과 맞물려 복잡한 중국 경제에 대한 쓴소리도 거의 찾을 수 없고, 관념 위주로 말하는 것은 공감의 폭을 줄인다.

 

장점은 학문적 기초가 튼실한 노 학자가 인고의 시간을 겪고나서 풀어내는 성찰이 잘 녹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은 책의 전반부보다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두드러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감의 폭도 후반부에 더 강했던 것 같다. 따라서 독자들도 앞 부분이 너무 지리해 뒤에 있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개인적으로 쓸데없는 책을 만들기 위해 벌목을 하는 것, 아까운 원고료만 낭비한 쓰레기 같은 글들에 대한 비판(144페이지)에서는 뜨끔했다.

2009.01.02 16:54ⓒ 2009 OhmyNews

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추수밭(청림출판), 2009


#지셴린 #다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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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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