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을 위한 동화] 줄리엣

등록 2009.01.12 15:09수정 2009.01.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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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찾지 않는 작은 문학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한 여인이 들어왔다.
“나이 40세, 이름 줄리엣, 주소 경기도 성남시…”간단한 정보가 창에 뜬다.
참 찾기도 힘들었을 텐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그 분이 생뚱맞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자주는 찾아오지 못하지만 이따금씩 시간날 때 마다 들러 볼께요”라는 짤막한 메모를 남긴 채 그녀는 사라졌다.

카페를 개설했다는 자체가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함이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녀가 찾든 찾지 않든 이제 나도 회원을 가진 카페지기가 되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다. 그날 이후 카페를 찾는 횟수가 늘었다.


“혹 그녀가 다시 왔을 때 지저분해서 나간다면 어떡하지, 문학이라는 탈을 쓰고 졸렬한 내 글을 보고 그녀가 탈퇴한다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비오는 날 엄마무덤 떠내려갈세라 울부짖는 청개구리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껏 일기처럼 쓰여진 것은 버리고, 엉터리라고 생각되는 글도 삭제하고, 괜찮다고 생각되는 글들만 남겨두었다. 이제 그녀가 다시 카페에 들어오는 일만 남았다.

아직 한번도 읽지 않는 글들이 임금님 앞에 차려진 밥상처럼 그녀에게 맛을 평가받기 위해 다소곳이 앉아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방문은 좀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회원정보에 나와 있는 곳으로 편지라도 띄워볼까? 아니야 그럼, 날 이상한 시정잡배로 볼 지도 몰라. 아, 왜 이렇게 안 들어오는 거야. 저 준비 다 됐거든요. 어서 오세요!”

급한 용무를 해결하지 못해 화장실 앞에서 몸을 벨벨꼬는 어린아이 마냥 난 안절부절 못한다.


“내가 이렇게 집착하지? 사람이 그렇게 그리웠나?” 카페를 찾은 한 사람에게 이렇게 집착하는 내가 한심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뚜렷이 할 일도 없는데 밤낮없이 모니터를 보고 있다. 아내는 쓸데없이 소설 나부랭이 쓴다고 빈둥거리며 죽치고 앉아 있는 날 오뉴월 똥개 바라보듯 하다.

아무렴 어떠랴 아내가 벌어오는 몇 푼 안 되는 돈에 그나마 입에 풀칠하며 연명하고 있으니 이런 수모는 수백번이고 견딜만 하다. 너무나 고요해서 내가 공기인지 공기가 나인지 분간이 안 되는 밋밋한 하루가 이어졌다. 내 유일한 일은 날마다 줄리엣,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을 찾기 위해 카페 구석구석을 날름거리는 것이 전부다. 


내 눈 주위 다크서클이 선글라스로 변해 갈 즈음, 부스스한 눈으로 습관처럼 카페 문을 열었다. 카페 문을 열면서 주위를 들러본다. 아내는 벌써 아이를 데리고 일을 나갔는가 보다. 아이 내복이 방 한쪽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것을 보니 오늘도 아내는 자는 아이를 힘겹게 깨워서 출근했는가 보다.

꼬질꼬질한 녀석의 내복이 눈에 거슬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복을 드는데 검지 손가락이 관통한다. 내복이 헤졌다. 생마늘을 목구멍에 억지로 집어넣은 것처럼 가슴이 아리다. 내복을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바빠서 한 동안 못 들어왔다는 인사와 함께 글에 대한 댓글이 달려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가? 한 달이 30년처럼 길게 느껴 질 정도로 기다려 왔던 방문 아니던가? 아이의 내복은 온데간데 없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샴페인을 터트리는 재벌회장처럼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온다. 이제 이 한 분의 회원이 카페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돌보는 일만 남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 예수의 재림처럼 당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당신은 아세요? 이거 정말 너무 한 거 아닙니까?” 하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내 의미없고 따분하고 지루한 인생에 뛰어든 그녀가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다시 찾아 주셔셔 감사합니다. 줄리엣님! 어줍잖은 글이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함축적인 말로 대신했다.

그날 이후 신춘문예에 출품하듯 한 작품 한 작품 글을 올리고 살릴지 말지 단두대에 선 대역 죄인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의 평가를 기다렸다. 다행히 그녀는 내 글이 재밌다고 한다. 나름대로 의미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이 그 얼마만인가? 새삼 그녀의 칭찬에 눈물이 핑 돈다. 직장에서 짤리고 아내로부터 돈 벌어오지 못한다고 구박받고 살아 온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나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아내보다도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칭찬에 힘을 얻었고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글을 썼다. 꼬박꼬박 글에 대해 독자로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평가는 큰 힘이 되었다.

난 그녀에게 중독되어 갔다. 아내의 짐을 덜어내고 싶었다. 하루하루 아내에게 기대어 연명하며 사는 내가 초라했다. 차라리 내가 없어지면 아내에게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아내가 무서웠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한번 보자고 했다. 그녀는 정중히 거절했다. 나중에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그때 보자고 한다. 난 그녀와 정신적 공감을 느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격려해 주는 그녀는 나에게 그녀의 닉네임처럼 줄리엣으로 다가왔다.

난 그녀에게 글을 보여주기,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오직 그녀를 보기 위해 글을 썼고 이듬해 모 일간지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다음날, 그녀에게 보여줄 신문 기사를 손에 꼭 쥔 채 그녀에게 만나자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녀도 너무 기쁘다며 흔쾌히 성남 근교의 한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결혼식 때 입었던 장롱 속 깊숙이 박혀있던 빛바랜 양복을 꺼내 본다.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건만 내 몸은 그때보다 오히려 왜소해 졌다. 허수아비에 양복을 걸쳐 놓은 듯한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지하철를 타고 가는 내내 지난 1년간 수많은 상상과 힘과 위로를 줬던 그녀를 만난다는 것에 가슴이 설랬다.

드디어 카페문을 열고 조용한 구석에 앉아 이리저리 카페를 훑어본다. 기억 저편 어디선가 본 듯한 분위기, 이 또한 그녀와 오랫동안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기 때문에 일어난 착시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은은한 수은등 아래 어둠의 저편에서 한 여인이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분명 저 여인인데, 그녀는 누굴까? 가슴이 6기통 엔진처럼 쉼없이 펌프질 한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회오리가 내 모든 것을 앗아 버릴 것만 같다. 긴 어둠의 터널을 헤치고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여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당신이 줄리엣?” 반사적으로 자리에 일어났다.

그녀는 내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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