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7시. 신용산역 앞 철거민 참사현상에서 규탄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비통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집회가 끝나자 경찰은 야간불법집회라며 해산을 시도했습니다. 설마 사태가 이런데 해산을 시킬까라고 생각했지만 물대포까지 등장하자 사람들은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인도 한 쪽에서 보도블럭을 들어내서 길바닥에 던지며 깨는 한 아저씨를 보고 말렸습니다.
"이거 던지면 우리한테 다시 날아옵니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아요."
"사람 죽었자나. 안 할 거면 빠지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켜보다 다 깨지지도 않은 묵직한 돌을 들고 가는 이에게 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날아오는 돌에 누가 또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사람 죽었는데, 다치는 게 문제에요? 집에 가서 키보드나 치세요. 아님 평생 촛불이나 드시던가."
운동권은 밤에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경찰에게 던지는 돌은 던지면 반드시 되날아오는데, 밤에는 보이지 않아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저쪽은 헬멧에 방패, 이쪽은 맨 몸. 손해 보는 싸움입니다.
딱 봐도 촛불시민들이었습니다. 돌 처음 던져보는 폼이 역력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외치면서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피켓 들고 광화문에서 함께 했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촛불시민들이 이제 짱돌을 들었습니다. 사람 죽여 놓고, 그 물대포 다시 쏘고 있는데 뭐라도 안 던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비참했습니다.
이들도 폭력시위대입니까? 그럼 이 사람들에게 짱돌을 들게 만든 배후는 누구입니까? 폭력 이야기 참 많이 나오는 시대이지만, 이처럼 폭력에 무지한 정권과 경찰도 없는 것 같습니다. 철거민들이 대로 한복판에 화염병을 던져서 신속하게 진압해야 했다고 합니다. 앞뒤가 바뀌었지요. 용역과 경찰이 진압하러 오니까 화염병을 던진 것입니다.
도망갈 곳도 없는 사람들을 궁지까지 몰아넣고 그 앞에서 방패를 쾅쾅 내리치고 있을 때, 이들은 폭력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행위 자체를 넘어선 맥락입니다. 맥락을 안다면, 철거민 투쟁을 그런 방식으로 진압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짓이며, 촛불시민들이 짱돌을 들었다는 것이 이 정권에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철거민의 마지막 저항, 골리앗
언론에서는 '망루'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철거민 투쟁에서는 '골리앗'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철거민 투쟁에 있어서 '골리앗'은 가장 끝까지 몰렸을 때에 택하는 전술입니다. 골리앗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단전·단수·전원연행을 각오하고 철거민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올라오는 통로를 모두 용접해서 막아놓고 도망갈 곳도 없는 꼭대기에서 골리앗을 쌓아 마지막 투쟁을 벌였습니다. 생존권 투쟁의 처절함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거대한 건설자본 앞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협박과 회유에 철거민 대책위원회는 줄어만 가고, 몇 명 남지 않은 철거민들에게 남은 방법은 골리앗에 올라가서 언론과 사회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 그래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막다른 곳에 몰린 이가 격렬하게 저항할 것은 예상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철거민 투쟁의 격렬함은 많은 사례가 있고, 특히 골리앗 투쟁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화염병 투척으로 구속될 것을 각오하며 스스로의 억울함을 외치는 이들에게 강경한 대테러진압을 결정한 순간, 이미 참사는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20일 오전, 건물 옥상을 진압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마다 들리는 주변의 목소리는 "저기 사람 있는데, 저러면 다 죽는데!"이었습니다. 인화성 물질이 가득 있을 것이 명백한 상황. 도망칠 곳에 없는 건물 꼭대기에서 궁지에 몰린 철거민들에게 꼭 그런 진압을 했어야 했습니까?
경찰은 정확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사인으로 추정되는 화재는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당신들 바보입니까? 그럼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도망가던 집회대오가 넘어져 압사하면, 자기들끼리 넘어서져 죽었다고 하실 겁니까? 진압 결과 예상되는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시민의 생명을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왜 월급 받는 경찰들에게 왜 제가 이야기해야 할까요.
많은 이들이 김석기 신임경찰청장 내정자가 스스로의 업무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통상의 철거민 농성관련 진압과는 다르게 이례적으로 빠른 진압을 결정했고, 이것이 참사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지 김석기 경찰청장의 책임으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떼법문화 청산'과 '무관용' 원칙이라는 것 속에 이미 내재되어있던 비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관용'을 들이대는 천박함
이명박 정권은 등장과 함께 '떼법문화'를 청산해야 한다며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떼법'이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입니다. '무관용 원칙'이라는 것은 작은 범죄도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범죄율이 높은 슬럼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정책을 노동자·서민들의 집회와 시위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천박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런 천박함은 2008년 내내 일관되게 이어졌고, 특히 지난 촛불집회를 통해서 단단히 수세에 몰려본 이명박 정권의 권력기관들은 집단행동·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것의 신년 판이 올해 1월 15일 대검찰철 공안부가 '2009년 공안 운영방침'을 발표하면서 나왔던 내용이라 할 것입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의 대량해고와 실업률 증가가 예상되는 해이기에 불법 파업을 하면 고소·고발 없이도 수사할 것이며, 주동자는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강경대응을 예고했습니다.
결국 올해 경제가 어려워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 생계수단이 없어진 사람이 많겠지만 절대 데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검찰은 또한 파업이나 집회를 이유로 기소된 이들의 구형기준을 30등급으로 표준화한 안도 제시했습니다. 이전까지의 들쑥날쑥했던 구형기준을 균등하게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핵심은 이전보다 높아진 구형량에 있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처벌의 강도 역시 높이겠다 선언한 것입니다.
이 발표가 있고 채 1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용산 재개발 철거민 5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무관용 원칙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적용되었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옥상에서 저항했던 철거민들은 당신들의 30등급 표에서는 몇 등급이던가요? 그 등급표에 이들이 당해야했던 고통과 설움은 어느 항목으로 반영되나요?
촛불시민들이 짱돌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 촛불집회 내내 온갖 욕을 다 먹어가며 비폭력을 이야기했습니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저항문화에 대한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권력의 광폭한 탄압이 이어질수록 비폭력의 외침은 힘을 잃었습니다. 폭력은 상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분노는, 그것도 누가 봐도 명백한 국가 폭력의 살인인 지금의 상황에서 시민들의 분노는 자신의 손에 촛불이 아닌 짱돌을 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병 하나만 던져도 '비폭력' 외치며 '이러면 우리 지는 겁니다' 외치던 유비쿼터스, 웹2.0 시민들 손에 기어이 짱돌을 들린 것은 바로 이 정권입니다. 이 앞에서 불법폭력시위 엄단하겠다 이야기 하시겠습니까?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과격시위 악순환 끊은 계기"가 되었다면 좋겠다구요. 끊겠다면 먼저 끊으십시오. 그것이 정권으로서 최소한의 자세입니다.
더 이상 화염병 투척으로 인한 정당한 진압이었다는 강변은 그만하십시오.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게 디자인 서울을 강조하시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격적으로 방문해서 중재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최소한 사람은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루 만에 특공대 진압이 들어간 것은 천박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서 참사를 만든 것일 뿐입니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현장을 수습하는 것과 관련 조사역시 가해자인 경찰이 아닌 독립적인 외부 기구로 꾸려져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망자의 신원확인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부검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떼법 문화 청산'와 같은 1%의 시선에서 입안된 정책 자체를 폐기해야 할 것입니다. 과격시위가 생기는 이유는 정권의 폭력이 노골화되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떼법'이라고 인식한다면 결코 이 악순환은 멈춰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확립될수록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단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막힐수록 극단적인 방식의 투쟁에 기댈 수밖에 없어집니다.
모든 문을 용접을 해서 막고, 화염병을 가득 품은채 이 겨울, 옥상에서 농성을 해야만 했던 철거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화염 속에서 고인들은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감히 말씀드리건데,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철거민으로 태어나지 마시길. 그리고 그렇게 저항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던 이 천박한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마시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현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009.01.21 11:1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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