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와 유가족 입회하에 재부검 하라"

용산 참사 유가족들 "시신 인도받을 수 없다"

등록 2009.01.23 20:06수정 2009.01.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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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섯명의 유가족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여섯명의 유가족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김효성

"당장에라도 시신을 인도받아 부둥켜 않고 오열하고 싶었지만 유가족의 동의 없이 부검하고 훼손한 것은 물론, 만 이틀이 다 되도록 시신을 가족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시신을 인도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슬픔은 고인의 시신마저도 모셔가지 못할 만큼 애통했다. 유가족들은 처참하게 죽어간 고인들을 그리며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흘렸다.

23일 오후 5시 순천향대학교병원에 마련된 용산 철거민 사망자 합동 빈소 앞에서 '고인들의 시신 인도 관련한 유가족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고 이상림씨의 장녀 이현선씨,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씨 등 유가족 6명이 자리했다.

유가족들은 가족의 동의 없이 이뤄진 부검에 의혹을 제기했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 씨는 "시신이 불에 타서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지만 남편의 신분증은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며 "그럼에도 신원확인이라는 이유로 부검을 했다는 경찰의 주장에서 은폐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 이상림씨의 장녀 이현선씨는 "경찰은 시신이 굉장히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부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 아버지께서 평소에 끼고 다니시던 반지가 시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며 "가족들을 먼저 불렀다면 신원을 알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했다는 것은 경찰이 무언가를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씨는 "TV를 통해 진압 현장을 지켜보았다. 거기서 내 남편이 난간 곁에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런데 어떻게 (망루 안에서) 불에 타 죽을 수가 있나"며 "생중계 화면에서 경찰특공대가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 경찰의 폭력진압 가능성을 제기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흐느끼고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흐느끼고 있다김효성

이러한 의혹들을 밝히기 위해 유가족들은 전문의와 유가족의 입회하에 재부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현선씨는 "유가족들은 재부검을 원한다. 하지만 부검을 하는 기관이 국과수라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라면서 "부검을 하더라도 전문의를 대동하고 유가족이 같이 들어간 상태에서 부검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용역 직원들이 평소 행태에 관련해서 김영덕씨는 "용역 깡패들이 8~10명으로 떼를 지어서 돌아다녔다. 삼삼오오 다니면서 철거민들에게 욕설과 협박을 일삼았다"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주민들이 고소를 했다. 그 근거자료들이 모두 용산경찰서에 남아있으니 확인해 보라" 말했다.

유가족들은 마지막으로 "폭력이 사라지길 바란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주시길 바란다"며 "다시는 권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한 "용산참사 범국민 대책위원회에 모든 일을 일임한 상태"라며 "유가족들도 진실을 밝혀낼 때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전문
-고인들의 시신 인도 관련한 유가족 입장-
너무나 참혹한 사건으로 한 순간에 가족을 잃은 우리 유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 유가족들이 경찰의 시신 인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어렵게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20일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 유가족들은 고인들의 신원은 물론 시신의 소재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순천향병원으로 시신이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경찰은 유가족들이 시신을 확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확인하겠다고 오열하고 호소하는 유가족들을 방패를 든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우리 남편이 맞는지, 우리 아들이 맞는지 확인만하겠다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우리는 이후 이 모든 것이 검찰의 지휘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였고 가족들은 슬픔을 넘어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실랑이 끝에 밤 늦게서야 유가족 1인과 의사, 변호사 등 총 11명에게만 시신을 확인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내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는 데에도 경찰의 방패에 막히는 현실이 너무나도 기가막혔지만 시신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경찰의 지시에 따라 시신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시신을 확인하고 난 우리 유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새까맣게 불에 그을린 시신의 상태도 상태였지만 이미 부검이 이루어진 상태였고 시신의 훼손이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시신을 확인한 후에도 경찰은 고인들의 시신이 증거물품이라고 하며 가족들의 접근을 막아섰고 지금까지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시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21일 밤 10시경 경찰은 일방적으로 가족들에게 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통지를 하였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당장에라도 시신을 인도받아 부둥켜 않고 오열하고 싶었지만 유가족의 동의없이 부검하고 훼손한 것은 물론, 만 이틀이 다 되도록 시신을 가족들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시신을 인도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한시라도 빨리 우리 가족의 시신을 인도 받아 고인을 애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우리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 먼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신 인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늘 유가족들은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지검장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묵살하고 직원들을 동원하여 취재를 방해하는 등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였습니다. 특히 검찰 수사본부는 참사현장의 생존자 5명을 구속함으로써 공정수사를 포기한 수사본부의 태도는 유가족으로 하여금 불신의 감정을 갖게 한 것이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검찰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당국과 수사본부의 반인륜적 행위로 인해 고인들과 유가족들의 존엄성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 되었습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정부당국에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말씀드립니다.

요구사항
- 고인들의 시신을 빼돌리고 유가족 동의 없이 부검한 것에 대해 책임자는 즉각 공식 사과 해야합니다.
- 검찰은 사건 발생 몇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둘러 부검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에 대해
유가족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 시신발견 당시 고인들이 소지하고 있었던 유품의 목록을 유가족에게 공개해야합니다.
- 유가족과 유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재부검을 실시해야합니다.

2009년 1월 23일
용산 참사 희생자 유가족 일동

덧붙이는 글 | 김효성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9기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효성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9기 인턴기자입니다.
#용산참사 #철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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