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일 뿐인 소, 쟁기질 하던 그 때를 떠올리다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드는 생각들

등록 2009.01.28 16:59수정 2009.01.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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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를 앞두고 영화 <워낭소리>를 보았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1기 텃밭회원들에게 번개를 쳐서 모인 10명이 인천의 유일한 개봉관 앞에서 만났다. 개인적으로 소고기를 먹지 않은지 한달 가량 되어 간다.


나는 어릴적부터 시골에서 자랐다. 내가 그리 연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렴풋이 기계화되기 이전에 농사짓던 모습들이 기억이 난다. 우리집도 경운기를 마련한 것이 내가 초등학교 2~3학년때인 것으로 기억하니 그 이전까지는 소를 부려 농사를 지었다.

봉화 산골에서 80살 된 할아버지가 소를 부려 일을 한다. 소는 늙었고,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어릴적 왼쪽다리를 다친 할아버지는 땅에 엎드려 밭일을 할 정도로 다리가 불편하다. 이런 할아버지에게 소는 먼 길을 함께 가는 다리였고,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될 손이었고, 인생을 함께 살아온 반려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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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소 소와 함께 늙어온 할아버지의 삶에 소는 자신 자체일 것이다. ⓒ 워낭소리


비탈밭을 경운기로 갈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계가 기울어져 방향이 쏠리는가 하면, 잘못하여 중심을 잃으면 제멋대로 뒤집힐 위험도 크다. 그런 밭엔 느리긴 하지만 소를 부리면 한결 나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주 젊었을 적 소를 부리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특유의 소리를 내어가며 소를 부리면 밭이 한고랑 한고랑 갈려나간다. 당시엔 소도 귀해서 아마 옆집에서 소를 빌려 밭을 갈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최종학력이 국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안일을 도왔는데 그때 당신은 꼴을 베어 소를 먹이는게 몫이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다리도 점점 아파오고, 고혈압에 자꾸 머리가 아프다 하신다. 할머니는 기계로 농사짓는 것을 보며, 소가 없어야 일을 안한다며 자꾸 소를 팔라하신다. 농약주면 편할 것을 약도 안친다고 농약치자고 말하지만, "약 치면 소가 죽어"라는 할아버지의 대답만 돌아온다. 9남매를 소와 함께 길러낸 할아버지는 일년정도 살거라는 수의사의 말에 "안그래~"하며 믿기지 않으신 듯 실망한다. 비가 와도 소를 타고 들에 나가시는 할아버지는 소를 사러 우시장에 가보지만 부리는 소(일소)를 찾지만 쉽지 않다.

경운기가 생기고 소의 역할은 없었졌지만, 여전히 소꼴을 베어 먹였고 겨울이면 새벽같이 아버지는 소죽을 쑤었다. 여름이면 파리도 꼬이고, 마루에서 밥을 먹을때면 바로 앞에 있는 외양간 소똥냄새도 났지만, 외양간은 거의 비어있는 일이 없이 1~2마리씩 있었다. 몇번이고 송아지가 끈이 풀려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붙잡혀 온 기억도 있고, 송아지를 낳아 소 뒤에 고무신을 매달아 놓던 생각도 난다. 겨울이면 감기 들세라 이불 같은 것을 소 등에 씌어주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읍네에 나갈 때도 소를 타고 나간다. "소가 차오면 옆으로 비켜~"
할아버지의 병세가 깊자 결국 소 팔기를 결정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소 죽을 그날 따라 더 많이 쑤어 주지만 소는 먹지않고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는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니까, 언능 먹어" 울먹인다. 장에 나가 소를 팔려지만 워낙 늙어 살사람이 없고, 결국 다시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새로 산 소를 길들이려고도 해보지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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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 소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 소는 할아버지에게 손이며, 발이고, 인생의 반려자이다. ⓒ 워낭소리


사료를 사다가 먹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아궁이를 기름보일러로 바꾸고서인 것 같다. 이제 코뚜레도 보기 힘들고, 전처럼 소등을 긁는 일도 적어졌다. 물론 소 꼴을 베는 일도 없어졌다. 그래도 소는 여전히 존재였다. 대학등록금이었고, 목돈이었다.

1년이 지난 겨울 늙은 소는 일어나지 못한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 할머니 땔 나무를 잔뜩해놓고는 할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지난 겨울 이맘때 아버지는 간암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중이었다. 소가 3마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프자 소는 나와 형 몫이 되었다. 쟁기질을 하는 것도 소죽을 쑤는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사료를 주고 소똥을 치우고, 아침 저녁 물을 데워 주어야 했다. 하루도 비울 수 없는 일정이다. 게다가 병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아버지는 소울음 소리에 민감해 하셨다. 결국 소를 팔아 치우기로 했다. 2달도 더 못사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겨울, 그 전 가을걷이까지 일만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결국 아프고 나서 소도 팔아버리고, 농사도 줄이기로 하고 나서 돌아가신 것이다.

요즘 TV를 보면 소가 자주 나온다. 광우병파동에 이어 한우마케팅이 한창이다. 이제 소는 먹을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영화 <워낭소리>는 우리농사와 소에 대해 그리고 흙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워온 아버지들에게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소 #워낭소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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