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카석주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은 장소로 알려진 부다가야의 아소카 왕 석주. 석주에는 타종교에 대한 존중과 살생금지 등의 교훈들이 새겨져 있다.
백찬홍
누구나 자신의 종교만을 숭상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종교도 존경해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포교하면서 다른 종교에도 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의 종교에 무덤을 파는 것이며, 다른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만을 숭상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하는 자는 누구나 '나는 내 종교를 찬양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종교에 헌신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에만 집착하게 되면 그 자신의 종교를 더욱 해치게 된다. 그러므로 화해하는 것이 좋다. 경청하라! 다른 종교의 교의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여라.
아소카 칙령은 오늘날 계속되고 있는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강대 종교학과 서명원 교수는 <불교평론> 2008년 겨울호 ‘종교간의 화해의 실마리’라는 글에서“아소카 왕은 인류 역사상 종교 간 대화를 주창한 창시자”라고 평가하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하는 아소카 왕의 칙령은 종교간 화해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교 이후에도 현지 종교와 융화하면서 새로운 불교로 발전역사적으로 제국의 범주에서 아소카 왕과 비교될 수 있는 인물은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 왕(재위 기원전 559~529)이다. 키루스는 이집트를 제외한 오리엔트 일대를 지배했지만 피정복민에 대한 종교적 관용과 배려가 뛰어난 관대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바빌로니아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유대역사에서 이방인으로는 유일하게 메시야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 정복지 그리스인들에게도 가장 공명정대한 인물로 불리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인 인물은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재위 379~395)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을 재통일한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부터 예수의 신성문제로 기독교의 분열이 계속되자 논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를 소집해 예수가 신이라는 교리를 공인하고 반대파를 축출했다.
기독교 내부를 평정한 테오도시우스는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후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형태의 이교 숭배를 제국 내에서 불법으로 규정했다. 394년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올림픽 경기마저 중단시켰다. 로마제국 이래 오직 하나의 교리만을 강조하던 기독교는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후 바로돌로뮤 대학살, 30년 전쟁 같은 끔찍한 종교분쟁이 발발하면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불교는 포교 후에도 현지 종교 또는 문화와 대결하기보다는 융화하면서 성장했다. 중국에서는 도교와의 교류를 통해 선불교를 만들어냈고 한국에서는 토속신앙을 받아들여 절 안에 산신각, 칠성각을 그대로 두고 있다. 또 티베트에서는 전통신앙인 본교와의 통합을 통해 라마교가, 일본에서는 정토종의 일파인 일련정종이라는 독특한 불교가 탄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무조건적으로 전쟁이나 폭력에서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시아 여러 국가의 유력종교가 된 후에는 국가주의 또는 군국주의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는 기원전 1세기경 인도남부에서 내려온 타밀족과 전쟁 때 불교승려들이 종군했고 각종 무기는 불교 상징물로 장식했다.
서기 11세기 초에는 대승불교를 신봉했던 미얀마의 버마족이 인근 몬족의 왕에게 비구와 소승불교(팔리어) 성전을 보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몬족을 멸망시키고 팔리어 삼장과 주석서, 왕과 승려 500여명을 자신들의 왕국으로 끌고 오기도 했다.
일본 등에서는 호국불교 강조하며 국가주의·군국주의에 협조하기도 한국에서도 역시 삼국시대 이래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많은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다. 일제치하에서는 이종욱 등 친일승려들이 일제의 징병제 실시와 태평양전쟁 참여를 독려하면서 전국 사찰을 돌며 자금을 모아 전투기를 헌납했다.
일본에서는 오랜 내전의 영향으로 사찰의 보호와 반대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무장한 승려 집단을 육성했다. 또 사무라이들은 선불교의 가르침과 실천들이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선불교의 돈오적 깨달음을 통해 남을 죽이거나 자결할 때 죽음을 관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초기 검술의 달인이었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목숨은 꿈과 같고 베는 자와 베임을 당하는 자 모두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다쿠앙 선사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일본불교는 창가학회를 제외하고 2차 대전 때 적극적으로 일본 민족주의와 군국주의에 협조했다. 당시 선종과 정토종은 많은 전쟁비용을 헌납했고 일부 저명한 선사들은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면서 자비와 충성을 실현하기 위해 미군을 비롯한 적군을 되도록 많이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태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소요와 월남전의 영향으로 타이민족과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것은 도덕회복과 국가질서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승려들도 있었다. 이외에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여러 곳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와 군국주의에 협조해 전쟁을 지지한 이러한 사례들은 불교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앞서 밝힌 것처럼 불교가 교리 때문에 대규모 살육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대개의 교리논쟁은 무력보다는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고 오늘날에는 남방, 북방, 티베트 불교 간에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가 진행되고 있고 종교근본주의가 전쟁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평화운동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중국의 침공과 강권통치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비폭력운동을 이끌고 있는 티베트 인들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와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평화를 주장하다 당국에 의해 추방당한 틱낫한 스님은 오늘날 평화운동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현재 서구에서는 기독교, 이슬람 등 유일신 종교 간의 대립으로 전쟁과 테러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불교신자가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 불교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야스퍼스의 평가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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