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07년 12월 30일 국제앰네스티가 규정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상태다.
연합뉴스 이정훈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 3월 현재 미국, 일본 등 78개국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독일, 프랑스 등 118개국은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제도는 유지한 채 집행은 하지 않고 있다. 모든 범죄에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83개국, 일반범죄에 대하여 폐지한 국가는 13개국, 사실상 폐지한(10년 이상 미집행) 국가는 22개국이다. 김 지사의 말대로라면 UN 가입국 기준 192개국 중 사형을 미집행하고 있는 22개의 국가는 '포퓰리즘 국가'이자, 졸지에 '야수적인 정글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여담으로 사형과 관련한 흥미로운 통계를 소개한다.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일본과 미국, 한국 3개국뿐이다. 또한 전세계 국가 중 5개 국가만이 18세 이하를 사형시키는데, 이들 5개국에는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으로 불렸던 이란 외에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 국가가 있다. 또 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사형 집행하면 범죄가 줄어들까?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같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범죄 억지력'을 내세운다. 하지만 사형이 위하력을 가지려면 사형폐지국에서 사형범죄가, 사형을 폐지하기 전이나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이 발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형을 폐지한 어떤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통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심리학적·사회학적·통계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Thorsten Sellin, The Penalty of Death, Sage Publications, 1982, 75~80면).
먼저 국제적 연구결과를 보자. UN이 1988년과 2002년도에 사형의 범죄예방효과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사형제도가 살인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며, 조사 결과 통계수치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사회에 급작스럽고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Roger Hood, The Death Penalty:Worldwide Perspective, Oxford University Press, 3rd ed., 2002, 214면). 간단히 말하면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가 살인범죄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희태 대표는 최근 일본의 사형집행 사례를 언급했다. 2008년 8월 2일 취임한 야스오카 오키하루(保岡 興治) 법무대신이 취임 1개월여 만인 9월 11일 3명의 사형수에 대해 사형집행을 했다(법무부, 2008년 9월 17일 "일본 법무대신의 최근 사형집행 관련 동향"). 그러나 일본의 범죄율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BBC 2008년 2월 보도).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2년도 범죄백서를 보면, 1997년에 살인사건이 789건이나 발생하자 23명의 사형수를 처형하였으나, 그 다음해인 1998년에는 범죄발생건수가 전년도보다 177건이 증가한 966건이었다(법무연수원, <범죄백서> 2002, 54면). 하지만 지난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어도 살인범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진 않았다.
"사형이 범죄율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한때 사형제도를 옹호했던 사람들조차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저는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도 사형제도 실험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4년 연방대법관인 해리 A. 블랙먼의 말이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죽음의 기계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 (스티븐 레빗, <괴짜 경제학> 169면) 벌을 줄 권리는 있지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사형제 존폐 여부나 사형의 집행여부에 대해서 좀 더 차분히 접근하자. 2004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자. 사법제도상 오판 가능성을 묻는 설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93%였다. '오판가능성 때문에 사형제 폐지에 동의한다'는 사람은 전체의 62.4%였다. '사형제도의 형벌부합성'을 묻는 설문에는 전체 국민의 51%가 부합하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고, '사형제도의 범죄예방효과'를 묻는 설문에는 교정위원의 77%가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고 응답했다.
2009년 연초 연쇄살인범 강씨의 흉악한 범죄행태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다. 호신용품의 매출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파출소를 증설하고 CCTV를 추가 설치해야 한다는 등 치안 유지를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사형 집행'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연구결과에서 보듯이 '사형 집행'이 범죄율을 낮춘다는 증거는 없다.
다시 미국 인기드라마 <웨스트윙>이다. 사형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다룬 웨스트윙 시즌 1 제14화 <안식일에 생긴 일(Take This Sabbath Day)>에서 글래스맨 랍비는 그를 찾아온 토비 지글러(백악관 공보실장)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회는 스스로 지킬 권리가 있지만, 복수할 권리는 없네. 벌을 줄 권리는 있지만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지." 덧붙이는 글 | # 국가인권위원회의 2005년 4월 6일 '사형제도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참조하였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삶은 선도 악도 아닌 그저 삶일 뿐입니다.
경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이념 역시 공리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