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령 비현령

용산 참사 수사 태도를 보고

등록 2009.02.06 10:38수정 2009.02.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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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의 제목을 '이현령 비현령'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식자우환(識者憂患)으로 할 것인지로 잠시 머뭇거렸다. 법 적용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는 볼 때, 전자(前者)가 타당하지만 또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지고 놀며 진실을 호도(糊塗)하는 것으로 볼 때 후자(後者)가 더 적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일 처리 방식을 보면서 이 양자(兩者)를 동시에 떠올린 것은 나에게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용산 철거민 진압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런 방식의 진압이 처음 있었던 것이어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아마 민간 정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 컸던 것 같다.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법을 적용하려는 방식.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 정치라는 사실도 민주주의의 기초상식이다.

그런데 골목 끝자락까지 몰린 사람들을 무참하게 짓밟음으로써 그들에게 죽음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은 법과 권력이라는 무기, 죽은 자들과 부상 당한 자들 나아가 용산의 철거투쟁 당사자들에게 법과 권리는 흉기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다른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도 계층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사건을 수사해서 법 집행을 하는 관계자들에겐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잣대가 바로 객관적 기준이다.

법 적용이라는 것이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수사에는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좋아도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용산 철거민 진압 사건의 수사를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최소한의 객관성도 상실한 채 진행되고 있어 화가 난다. 경찰이 인내하며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속전속결로 진압을 마무리해서 경찰이 쾌재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아까운 인명이 살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서 경찰청장이 조기 진압을 결재하고 안 하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크레인을 동원해서 망루를 덮친 것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경찰이 진압한 이 사건에 여섯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경찰청장 등 관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책임지는 정치는 그리고 행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덕목이다.

검찰의 수사 태도도 문제이다. 그들은 시종일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확연히 눈에 보인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 검찰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을 때보다 더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용산 철거민 사건의 핵심은 '사람들의 죽음'이다. 저들을 죽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바로 검찰이 해야 될 일이다. 그들이 스스로 죽기 위해서 신나를 준비하고 골프공을 준비하고 새총을 준비하고 망루를 설치했겠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을 빌면 그것은 순전히 협상용 무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게 만든 것이다.

내가 검찰의 수사 태도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뒷북 치는 모습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경찰이 물 대포로 망루를 쏘아댈 때, 철거 용역과의 공조 문제가 처음부터 제기되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마다 증거가 불충분하다,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물 대포를 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 이상 처벌할 수 없다. MBC 피디수첩에서 사람의 이름까지 방송으로 알려주었는데도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모습에서 참으로 '식자우환'의 화려한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검찰이 죽은 자의 편이 아니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진리와 정의를 앞장서 지켜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부나비가 불 앞에서 체통 없이 춤추듯이 권력 앞에 진실을 저당잡히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아니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벌을 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감히 이 정부에 건의한다. 이명박 정부는 계층 갈등에 중립을 지킬 것을 건의한다.

건강한 정부는 많은 갈등 구조 속에서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중앙에 사는 자도 지방에 사는 자도 갈등의 문제가 정녕 풀리지 않을 때 정부를 믿고 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까? 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고 문제를 만들어 해결해주고 있는 형국이니 다른 한 쪽 당사자들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는 대화요 타협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몇 명의 국회의원을 더 가졌다고 해서 '다수결의 원칙'만을 되뇌이지 말라. 이 원칙도 대화와 타협 뒤에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한 방식일 뿐이다.


나는 이 정부가 극소수를 위한 강부자 정부, 꼴부수를 대변하는 편향적 정부, 지역을 무시한 중앙 중심의 정부,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정비에 열을 올리는 개발만능의 정부가 되지 않기를 진정 바란다.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선 도시, 일직선으로 쭉쭉 뻗어놓인 도로, 시멘트 둑으로 에워싸인 강... . 이런 것이 사람이 순간적으로 보기엔 좋은 지 모르지만 오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또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쌓는 바벨탑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검찰을 보며 '식자우환'과 '이현령 비현령'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 속에서도 "나의 양심상 도저히 권력의 속성에 맞는 판단을 하기 힘들다"며 사표를 던지 한 법관의 태도는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의 위로가 된다. 진정 인간다운 사회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공생의 길을 찾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쪽으로 신경을 써주는 검찰 나아가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용산 철거민 참사 #검찰 #경찰 #식자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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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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