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4일 열린 여성단체들의 달빛시위. 여성들은 마음놓고 밤길을 다닐 자유를 요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물론, 기본적 내용은 몸 훈련이다. 몸을 직접 움직여봐야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이고 어떤 방법으로 싸울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몸에 익어야 자신감도 붙는다. 또한 몸의 훈련을 거치고 나면 자기가 있는 공간이 실제로 위험한지 아닌지 바로 구분할 수 있고, 폭력적 상황에서도 판단이 빨라진다.
키라는 "여성들은 실제로 맞거나 때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폭력의 공포도 실제보다 더 크게 느낀다, 피가 나고 다쳐도 회복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자기방어 훈련이 오히려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냐'는 식으로 피해자 책임론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키라는 "맞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자기방어는 끝까지 저항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몸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10명이 달려드는데 싸운다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방어를 잘못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물리적 저항을 포기하는 것도 자기방어의 한 방법이다.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서 가해자를 잘 설득해 콘돔을 사용하게 한 여성도 있었다. 임신과 성병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킨 훌륭한 자기방어다. 강간은 그냥 피해일 뿐이다. 무엇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저항해야 하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장나기 때문에? 남성들의 판타지일 뿐이다."목숨걸고 정조 지켜라? 때로는 포기도 자기방어자기방어훈련이라는 이름으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 곳 밖에 없다. 상담소는 부정기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10주 코스의 '주말도장'이나 1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3박4일의 소녀캠프 등이 있다. 그러나 올해는 프로그램 운영계획이 없고 대신 그동안의 훈련들을 매뉴얼로 정리할 예정이다.
상담소를 찾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자기방어를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키라는 "6개월만 매일 무술도장에 나가보라"고 말했다. 몸을 변화시키는 데는 꾸준하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무술도장이 힘들면 일단 다른 운동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어려우면 여성 스포츠 경기라도 많이 보자. '말라빠진 연예인'이 아닌 '건강한 선수'들의 몸이 얼마나 멋있는지 알게 된다고 한다.
마음 훈련도 필요하다. 남성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여자로서 사랑받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 남성에게는 무조건 기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지 말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폭력 상황에 용감하게 대처한 무용담을 여성들끼리 이야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키라는 이번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사회 분위기가 공포를 조장하는 모습으로 문제의식 없이 흘러간다"고 지적했다.
피의자 강아무개씨가 진짜 사이코패스인지, 그의 얼굴을 공개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가해자 몇명을 색출하는 것보다 '여성의 몸은 무기력하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는 언론보도를 보면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아무 의도 없이 밤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여성에게 치한으로 오해받았다"며 불쾌해 하는 남성들에게도 "기분은 나쁠 수 있다"며 "그러나 일상 공간에서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여성의 입장과 감수성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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