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에 날아간 '자전거'의 꿈

부평구 "전자공문 보냈다"... 인천시 "공문 얘기 없었다"

등록 2009.02.09 10:51수정 2009.02.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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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구민들이 애써 준비한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 행정 잘못으로 좌초됐다. 책임 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가운데, 관계 공무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30일까지 ‘2009년도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을 공모했다. 부평구의 경우 행정기관에서는 도시디자인기획단이 ‘시범도시’ 사업을 준비했고 민간에서는 인천자전거도시만들기운동본부(이하 인천자전거도시운동본부)가 자전거도시를 테마로 한 ‘시범마을’ 사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관에서 준비한 ‘시범도시’ 사업은 접수된 반면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시범마을’ 사업은 국토해양부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좌초됐다.

 

부평구에 따르면, 도시경관팀은 인천자전거도시운동본부가 제출한 ‘살고 싶은 시범마을’ 사업계획을 1월 28일 접수해 이를 검토한 뒤 의견서를 달아 다음날 오후 전자공문을 통해 시 도시계획과에 보냈다.

 

도시경관팀 관계자는 “29일 오후 분명히 전자공문을 보냈다. 공문을 보내기 전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 ‘결재 중이니 결재가 완료되는 대로 시로 공문을 보낼 테니 처리해 달라’고 통화했다”며 “전자공문을 보낸 뒤에도 과장(도시경관과장)이 (시에) 직접 전화를 해서 잘 처리해 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부평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처음에는 “공문과 관련된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부평구가 보낸 공문을 확인한 것은 국토해양부 접수(30일 마감)가 끝난 2월 2일이었다. 게임이 끝났는데 뭘 더 할 수 있겠냐”고 말한 뒤 “다만 ‘29일 저녁에 부평구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마감됐으니 처리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다시 통화할 때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29일 과장과 통화를 하기 전 부평구 공무원과 통화한 적은 있으나 공문과 관련된 얘기는 없었다. 공문은 2월 2일에 확인했다”며 “국토해양부 접수마감이 30일이라 부평구에 20일까지 시로 접수시켜달라고 했다. 하지만 뒤늦게 올라온다기에 시에서도 검토하는 일정이 필요한데 그날(29일) 처리해달라고 하니 어렵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부평구에 다시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부평구에서는 29일 오후 전자공문을 보낸 것으로 돼있다. 전자공문은 보내면 상대방이 바로 확인이 가능하며, 부평구에서는 공문을 보내기 전과 보낸 후에 확인전화를 했다는 주장이고 시에서는 전화를 받긴 했으나 공문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는 주장이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사업 계획을 20일까지 시로 보냈어야한다는 시 관계자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 구석이 있다. ‘시범도시’ 사업을 준비한 부평구 도시디자인기획단의 경우는 몇 시간 빠른 29일 오전에 해당 공문과 사업계획을 시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 담당자는 “부평구 도시디자인기획단은 사전에 시와 조율이 있었고 더구나 출력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주택공사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관계자는 “국토해양부에 30일까지만 오면 되는 것이다. 인천시가 행정 편의를 위해 해당 지자체에 빠른 시일 내 제출을 요청할 순 있지만, 국토해양부에는 30일까지만 도착하면 되는 것”이라며 “전자공문도 그 자리에서 출력 가능한 데다 당일 날 퀵서비스로 도착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천자전거도시운동본부 이광호(36) 사무국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결국 시와 조율된 관 사업만 해줬다는 얘기밖에 더 되냐?”며 “29일 오전에 접수한 것은 되고 오후에 접수한 것은 안 된다. 더구나 ‘보냈다’는데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것은 전형적인 떠넘기기식 탁상행정”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또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일이다. 부평구와 인천시 양측 중 분명 잘못한 곳이 있을 것”이라며 “공문서 확인과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인천자전거도시운동본부가 ‘시범마을’ 사업을 계획한 곳은 부평4․5동 일대로 이 지역에 있는 부평문화의 거리는 지난해에도 문화의거리상인회가 국토해양부가 실시한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 공모해 2억원의 예산을 가져와 디자인 개선과 시장활성화 사업을 전개 했다.

 

또한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일상장소 문화생활 공간화’ 공로를 인정받아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해 10월에는 한국․일본․대만 등 3국의 공무원과 교수 등 20여명이 참가해 ‘동아시아 마을 만들기’를 비교 연구하는 공동 워크숍이 열렸을 때 참가자들이 ‘마을 만들기’의 선진 사례지로 꼽은 곳이 바로 부평 문화의 거리였다.

 

당시 일본 도쿄대학교 와타나베 준이치(공학박사) 교수는 답사를 진행한 뒤 “부평 문화의거리는 한국에서는 마을 만들기 사례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우수한 곳이다. 마을주민들이 항상 지금처럼 나서서 주민들이 주인 되는 마을 만들기의 모범으로 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세계도 인정하는 ‘마을 만들기’의 선진사례지가 정작 그 고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꼴이 돼버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2.09 10:51ⓒ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을만들기 #인천시 #부평구 #자전거도시 #인천자전거도시만들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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