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내정자 사퇴기자회견문을 되돌려주고 싶다!

[주장]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에 즈음하여

등록 2009.02.10 14:45수정 2009.02.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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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했다. 언젠가는 사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그다지 놀랄 일은 없었다. 용산 참사 원인에 대한 경찰 측과 유가족 측의 극명한 대립은 두말할 나위 없고 그것이 불러온 여타 논쟁들만으로도 김 내정자의 사퇴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 내정자에 대한 검찰 무혐의 발표가 있은 뒤에야 곧바로 사퇴 기자회견이 준비되었다. 청와대는 그동안 침묵이나 그 뜻을 분명히 하지 않은 지지 의사로 일관했다. 여당도 (실제로 청장이 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어중간한 비판만 간간히 내뱉어왔을 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내정자는 때는 이때다 한 것처럼 무혐의와 자신의 사퇴를 연결시키고 말았다. 자,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김석기 청장 내정자는 가고, 슬픔과 분노는 오직 유가족 몫이 되었다

 

유가족들은 지금도 싸늘한 시신을 두고서 기약 없는 나날을 어둔 세상에서 보내고 있다. 김 내정자가 그토록 안타까워한  고 김남훈 경사의 시신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고 그 점에서 대해서는 김 경사 유가족께 다시 한 번 위로 말씀을 드릴 뿐이다. 이미 시신이 되어 돌아가신 분이기에 그가 경찰이었든 그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든, 고인에게 명복을 비는 마음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이제 다시 김 내정자 얘기로 돌아가자. 김 내정자는 용산 참사 이후 모든 의혹과 혐의에 대해 부인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임명권을 지닌 청와대,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찬반의사도 명확히 하지 않았다. 김 내정자는 스스로 진퇴를 고민해야 했을 테고 사태는 점점 말 그대로 진퇴양난으로 치달았다.

 

결과를 놓고 볼 때, 검찰 수사 기간 동안 김 내정자는 사실상 사퇴 기자회견문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 의미를 두기 어렵다. 청와대 쪽도 여당 쪽도 명확한 지지를 하지 않았고 김 내정자 사퇴에 관한 논란은 오히려 더 확산될 뿐이니 김 내정자가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었겠나. 그러고 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그저 답답한 마음만 남을 뿐이다.

 

김 내정자는 사퇴 기자회견문에서 크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에 대한 소신은 변함이 없다는 것과 사퇴하는 이유는 오로지 ‘도의적 책임’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도의적 책임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글쎄, 김 경사 유가족도 다시금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을까 싶다. 김 내정자가 진심으로 김 경사 사망에 가슴아파하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자, 도의적 책임이 무엇인가. 실제로,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책임질 일(혐의라 해야 하나?)은 없으나 양심껏(그러니까, 도의적으로라는 뜻이 되겠군요.) 그 책임에 준하는 행동을 한다는 말이 되겠다. 다시 말해서, (검찰 발표를 근거로) 죄는 없으나 죄책감은 느낀다는 어중간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로 김 내정자 자신도 변호하고 청와대 짐도 덜어주는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셈이다.

 

김 내정자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하는 중에 용산 참사에 관한 자신의 시각차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어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용산 화재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명백히 밝혀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극렬한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였습니다. 수도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벽돌, 염산병이 무차별로 날아들어 건물이 불타고 교통이 마비되는 준 도심테러와 같은 불법행위가 더 이상 재발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사회에서 폭력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될 수 없고, 어떤 이유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의사를 불법과 폭력으로 관철시키려는 구태가 과연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선진일류국가 도약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질서가 바로 서야 국민의 안전도, 인권도, 민주주의도 있습니다.”

 

글쎄, 경찰이기에 이렇게밖에 용삼 참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용산 참사를 만들어준 진짜 원인이랄 수도 있는 그 수없는 개발 열풍이 몰고 온 죽음의 기운에 대해서는 경찰은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건물이 불타고 교통이 마비되는 준 도심테러”는 보이고 ‘사람이 불타고 삶이 마비되는 진짜 도심테러’는 진정 경찰로선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었단 말인가. 그것 참, 어제에 오늘도 그저 답답할 뿐이다.

 

고 김 경사에 대한 언급은 첫머리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도 다시 말하지만 김 경사 유가족들 역시 다른 유가족들처럼 김석기 내정자의 말에서 진정성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내정자는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이번 참사 희생자들을 자기변호에 교묘히 활용(?)한 셈이 되고 말았다.

 

사퇴한 김 내정자는 사퇴기자회견문도 다시 가져가는 게 나을 듯 

 

김 내정자가 그랬다. “여러분의 뒤에는 고 김남훈 경사와 같이 국민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는 언제라도 목숨을 바쳐 소임을 완수하고자 하는 15만 경찰이 있”다고. 그런데 김 내정자는 고 김 경사도 국민들(용산 참사 희생자들)도 지키지 못했고 제대로 위로해주지도 못했다.

 

김 내정자가 그랬다. “항상 경찰을 응원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과 든든한 경찰가족을 믿고 저는 떠나겠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을 가슴 깊이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그러나, 고 김 경사 유가족을 포함해 모든 유가족 모두 ‘뜨거운 울분을 가슴 깊이 영원히 간직하’게 될지 모를 상황만 남고 김 내정자는 사퇴해버렸다.

 

김 내정자가 마지막으로 그랬다. “거듭,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순직하신 고 김남훈 경사와 금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정말일까? 정말 김 내정자는 고 김 경사와 여타 유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법과 원칙이 바로 선 국가로 만들고픈 일관된 ‘꿈’”을 접어야만 하는 아쉬움(?)을 그렇게 달래고 싶었던 것일까? 왜 나는 김 내정자 기자회견문 하나에 이토록 마음이 복잡하단 말인가.

 

김 내정자는 “감사합니다”고 말했지만 유가족은 물론이겠거니와 한 사람 대한민국 시민인 나는 결코 “감사합니다”를 중얼거릴 수 없고 사퇴한 김 내정자 말도 받아들일 수 없다. 김 내정자는 결국 무혐의와 사퇴를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선물(?!)로 남겼을 뿐이다. 그것은 끝까지 죽음의 선물이었을 뿐이다.

 

김 경사 유가족, 철거민 희생자들 유가족,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 모두는 김 내정자 사퇴기자회견문을 정중히, 그래 정중히 되돌려주고 싶다.

2009.02.10 14:45 ⓒ 2009 OhmyNews
#김석기 #용산 철거민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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