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의 '마술사'도 깎이는 예산은 어쩔 수 없네

[주장] 지역아동센터 아동들 앞에 붙은 '빈곤'을 지우자

등록 2009.02.19 14:28수정 2009.02.19 14:28
0
원고료로 응원

올해초 시무식을 마친 아침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www.jckh.org)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6개월전부터 고시원에서 살게 되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자신이 일나가고 나면 혼자 고시원에 남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근처 가까운데 아이가 갈 만한 공부방이 없을까요?"

 

그 아버지가 사는 곳 가까운데 있는 지역아동센터(공부방)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나니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못 읽는데 한글도 배울 수 있느냐"며 "그래도 한글을 깨치고 고등학교까지는 나와야 하니 좋은 곳으로 알려달라"면서 염려섞인 부탁을 하셨다.

 

동네주변을 서성이던 민철이

 

그 전화를 받고 문득 7년전 만났던 민철이가 생각났다. 아동복지를 향상시켜 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공부방에서 만났던 민철이 역시 IMF때 아버지가 실직하고 어머니가 생활고를 겪다 못해 가출한 상황이었다. 

 

민철이는 아버지의 신용불량과 주소지 불명으로 입학통지서를 받지 못하고 주민등록도 말소되어 초등학교도 못 가는 신세였다. 동네주변을 서성이던 민철이를 아는 동네 아주머니가 데리고 와서 아이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고 동사무소 가서 부탁하고, 교육청에 가서 사정이야기를 해서 민철이는 2학기가 되어서야 학교에 갈 수가 있었다.

 

그 당시 공부방이었던 나의 일터는 2004년 아동복지법에 '지역아동센터'라는 아동복지시설로 엄연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05년말 구청에서 올해까지 신고를 안하면 불법 미신고 시설이 되니 조건을 갖추어 신고를 하라고 했다. 구청은 이어 건축물 용도변경, 방염처리, 완강기 설치, 투척용소화기 등의 안전시설을 갖추라고 했다. 겨우 지역주민들과 주변의 도움으로 500만 원을 모아 안전시설을 갖추고서야 '지역아동센터'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지역아동센터는 월200만원을 지원받았다. 방과후 갈 곳 없는 35명의 아동들을 위해 공과금, 프로그램비, 인건비 등의 명목으로 국가에서 운영비보조금을 받게 된 것이다. 

 

흔히 사회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붙여주는 이름은 빈곤, 가난, 방임, 결식인데 35명의 아동들을 위해 국가에서 이 아이들의 보호와 교육을 위해 지원되는 돈은 1인당 월8만8천원이었다. 그나마도 월 급식비 6만원 포함한 것이기에 지역아동센터의 선생님들이 '마법사'가 되지 않고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없었다. 

 

정부에서 지원되는 월 200만원이 2007년도에는 220만원으로 오르게 됐지만, 여전히 나아지지는 않고 있다. 2009년도 역시 아동·청소년통합에 따른 예산절감, 차등제 등의 이유로 아동들은 늘어나고 아동에서 고등학생으로 커가고 있지만 지역아동센터로 지원되는 운영비는 오히려 줄어들어 평균 216만원에 불과하다.

 

우리 지역아동센터에는 많은 '마법사'들이 있다. 전국에 2008년 12월 기준으로 3013개의 지역아동센터에 8만 7291명의 아동청소년들이 있고 이들과 함께하는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아동복지교사(사회적 일자리사업 지원사업 포함)들이 1만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모두 '마법사'가 되지 않고서는 지역아동센터 운영에 월 평균 필요한 600만원 가까이 재정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라"는 국회... 늘어나야 할 예산은 오히려 줄어 들고

 

작년 10월 27일 전국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대표, 시설장, 실무교사, 학부모 등 2500여명이 여의도에 모여 노란 풍선에 희망을 담아 국회에 전달하였고 11월 국회 보건복지가족상임위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월465만원 총 755억의 증액안을 상정했다. 12월 만나는 국회의원마다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빈곤 아동예산을 깎겠냐, 조금만 기다려라"는 답을 받았기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12월 13일 국회는 결국 우리의 '희망'을 무참히도 짖밟았다. 1년만에 지역아동센터가 400개가 늘었는데 예산은 359억으로 여전히 아동1인당에게 지원되는 비용은 2천원 오른 9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물가상승과 경기불황, 대량실직에 따른 아동방임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체감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의 정도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역아동센터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는 늘어나는데 운영난으로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는 절망에 빠지고 있었다.

 

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3월에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고 하니 다시 지역아동센터의 마법사들은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가난, 빈곤, 결식, 방임의 말이 붙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최선숙 기자는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www.jckh.org) 정책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2009.02.19 14:28ⓒ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최선숙 기자는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www.jckh.org) 정책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작은배움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