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국가의 군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의사 은국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등록 2009.02.19 16:56수정 2009.02.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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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오전 11시, 한의사 은국씨가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을 하고 있다. ⓒ 김도균

"나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사람들과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들은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이 나와 다른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나의 신념에 따른 행동에 대해서 실형을 선고하는 지금의 법은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은국 29·한의사, 성을 쓰지 않음)

19일 오전 11시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카페 '샤'에서 한의사 은국씨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작년 연말 국방부에서 대체복무 도입을 백지화한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선언이다.

은국씨는 입영일인 19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자신의 심경을 담담히 밝혔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이왕 군대를 간다면 가장 강하다는 해병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그가 병역거부를 생각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지켜보면서부터였다.

한의대 재학중이던 당시 반전 평화팀의 일원으로 한 달 가량 바그다드에서 활동했던 그는 미국의 침공이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이라크를 빠져나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했지만 마음의 짐을 벗을 수는 없었다.

"이라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도 은국씨의 결심을 굳히는 데 일조했다.

"한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미국의 후방지원을 했다.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고, 그 때 난 마음먹었다. 이런 전범국의 나라에서 병역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이런 은국씨를 지켜보는 어머니 윤혜숙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남들 다가는 군대를, 그것도 4주 군사훈련만 받고 지하철에서 공익으로 근무하라는 것도 마다했을 때, 정말 아들이 미웠다."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악성 댓글도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은국씨의 인터넷 카페에는 '애를 어떻게 길러서 그러느냐? 에미가 오냐 오냐 하니까 자식이 제멋대로다'는 등의 비난 글들이 달렸다.

하지만 윤혜숙씨는 이런 질책과 비난들이 오히려 아들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굳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아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가보았고, 아픔과 살상과 피가 흐르는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것들을 느끼게 된 것 같다"며 "이해하기 어렵고 인정하기 힘든 길일지라도 난 아들의 신념을 믿기에 아들을 보낸다"고 심경을 밝혔다.

은국씨가 병역거부로 구속된다면 최소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살게 된다.

병역거부연대회의 최정민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 60년 동안 병역거부로 전과자가 된 사람이 모두 1만 3천명, 최근 9년간만 5천여명이 수감되었다"며 "여론조사를 핑계로 대체복무제 도입 약속을 번복한 국방부의 행태는 시대를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젊은 보건의료인의 공간 '다리'와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는 이날 성명을 발표, '보건의료인으로서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을 거부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은국씨의 병역거부에 지지의 뜻을 밝혔다.
#은국 #양심적 병역 거부 #대체복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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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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