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녀시대' 삼촌팬들에게 돌을 던지나

한 30대 팬이 보는 30~40대 팬 열풍

등록 2009.02.23 21:30수정 2009.02.2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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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시대
소녀시대SM엔터테인먼트

나는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30대 팬이며 스스로 상당히 열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글에서 "소녀시대의 이름을 줄줄 꿰는 삼촌팬"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멤버들의 이름을 다 알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이 팬으로 불리는 것도 당연하겠으나, 멤버들의 이름과 별명과 생년월일과 출신지역과 학교와 혈액형을 모두 알고 있는 나는 멤버 이름을 다 아는 것에 "줄줄 꿴다"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이 당황스럽다.

이런 소녀시대의 팬으로서 내가 '삼촌팬'이나 '30대 팬'이라는 주제의 기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시작된 삼촌팬에 대한 기사들부터 최근에 본 기사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삼촌팬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 경험과는 동떨어져 있다. 나는 언론에 비춰지는 30-40대 소녀시대 팬의 모습과 현실 속 팬들 간의 괴리를 설명하고 현실에서 30-40대가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어떠한 부당한 시선을 받는지를 보여주고 싶으며 앞으로 30-40대 팬들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함을 말하고 싶다.


1.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소녀시대 30~40대 팬?? - 언론이 보는 삼촌팬

먼저, 삼촌팬 혹은 30-40대 남성팬들에 대한 다음 글들을 살펴보자.

"김은아 SM엔터테인먼트 팀장은 "소녀시대는 30~40대 시장을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있다. 30~40대가 대중문화의 소비 주체로 커지고 있었지만, 그들을 만족시켜주는 가수들은 없었다. 이젠 30~40대 아저씨나 아줌마가 '나는 소녀시대 팬'이라고 말한다 해서 민망해하거나 놀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21. 747호. 2009.2.13.>

"남성 관객 중에는 20~30대 이상으로 보이는 이도 상당수다. ... (중략)... 김씨는 "예전엔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건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사이트에서도 20~30대 남자들이 10대보다 더 열심히 활동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9년 2월 16일자>

"소녀시대의 주요팬은 20~40대의 남성들이다."
<일간스포츠, 2009년 1월 28일>


"걸그룹의 팬층으로 10~20대 못지않게 30~40대 남성들이 꼽힌다. ... (중략)... 이들은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이 걸그룹의 팬이란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한겨레 21. 748호. 2009, 2.23.>

"아저씨 팬들은 10대 청소년 팬들처럼 팬 사인회, 각종 공개방송을 따라다니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SM 엔터테인먼트 김은아 홍보팀장은 "소녀시대 팬 사인회장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회사 다니는 아저씨 팬이 절반 이상 차지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9년 2월 11일>


일반적 독자라면 위 기사들을 보고 상당수 30대 남성들이 소녀시대의 팬으로서 적극적으로 그것도 당당하게 팬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할 것이다. 기사들에 따르면 삼촌팬이 긍정적으로 비춰지고 있으며 그들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듯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경험한 현실과는 큰 격차를 가지고 있는 묘사이다.

대부분의 30-40대 팬들은 주변의 편견과 오해가 두려워 팬활동을 꺼려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팬활동을 하는 사람은 많은 갈등과 어려움에 직면하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언어적 폭력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팬활동을 한다해도 공연 참여와 같이 적극적으로 하기보다는 팬 커뮤니티에서 가끔 글을 읽고 쓰거나 하는 정도의 활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언론이 말하고 있는 "소녀시대 팬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30대" 는 너무나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말이다. 대부분 30대 팬은 음반매장에서 소녀시대 앨범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는 것조차 민망해 하며, 소녀시대가 광고하는 치킨가게에서 브로마이드나 달력을 주는 이벤트를 할 때, 배달원이 브로마이드나 달력을 가져다 주지 않으면 그것을 가져다 달라는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 모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내 주위에는 수많은 30대 팬들이 있어야 한다. 다름 아닌 내가 바로 30대 팬이건만, 같이 팬활동을 하고 소녀시대를 응원할 30대 동료를 나는 아직까지도 거의 찾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당당하게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30대 팬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주요 기사들은 실제로 보이는 현실과는 달리 30~40대 팬들의 적극성을 과장하는 것일까?

2. 언론 속의 삼촌팬 - 팬인가 돈줄인가?

30-40대 팬이 언론에 의해 긍정적으로 부각되는 이유 중 주요한 것은 그들이 경제력을 가진 소비 주체이기 때문이다. 맑스 선생님의 말마따나 모든 것에는 물적 토대가 있기 마련. 언론과 지배 담론이 30-40대 팬들을 무시 못하는 것은 그들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소비 주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삼촌팬에 대한 논의에서는 그들의 경제력과 그들이 가진 돈이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녀시대의 음반, 음원을 구입하고 휴대폰 벨소리를 소녀시대의 노래로 정하고, 다른 치킨보다는 소녀시대가 광고하는 치킨을 사 먹는 강력한 소비 주체인, 즉 돈줄인 30-40대를 사람들은 무시할 수 없어한다.

(실제로 나는 소녀시대의 팬이라면 소녀시대가 광고하는 제품의 영업 사원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특정 치킨이 얼마나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웰빙푸드인지를 역설하고, 주문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기도 하다. 또, 팬사인회에 당첨될 확율을 높이기 위해 앨범을 여러 개 구입하기도 하니, 팬들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는 단순히 소비자라는 것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을 그렇게 한심하게 보다가도,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는 모습에 허리를 굽신거리는 모습에 가증스러움을 느끼지만, 그 역시 세상의 모습이니 이해를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과연 기획사에 의해 준비된 소녀시대의 음반과 음원 및 공연 그리고 그들이 광고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 주체와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팬과 등치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각종 기사들과 방송에서 30-40대 팬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들이 엄청난 매출을 만들어 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참고기사: 소녀시대 Gee 신드롬. 5주 동안 35억 벌었다. 2009.2.17. SBS뉴스)

이것은 그들이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팬"이라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사들에서 보여지는 삼촌팬들의 적극성에 대한 과장된 묘사는 현실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희망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수많은 30-40대 남자들이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도 트렌드를 따르고 싶다면 이 소비의 물결에 동참하라."

이 메시지의 핵심은 물론 마지막 문구이다. 물론 이러한 상업적 의도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핵심적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30-40대 팬들에 대한 언론의 예찬에서 경제력이라는 요소를 빼고 살펴보자. 결과는 삼촌팬에 대한 무참한 혐오와 공격이다.

3. 삼촌팬들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1) 한심한 인간 - 사회적 무능력자

서른 여섯살인 한 소녀시대의 팬이 플래카드를 들고 공개적으로 소녀시대를 응원했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다음 악플들을 읽어보자. (참고기사: 퀴즈원정대 막말 파문)

     <네이버 뉴스 댓글>

36살 먹고 저러고있다... 진짜 우리나라 청년들 각성해야된다.

36살에 할짓없냐?아이돌한테 질질 끌려 다니게??? 그 시간에 소일거리나 좀 찾지........

     <미디어 다음 댓글>

36살이나 쳐먹고 저런인간들은 뭐하는 것들일까?  백수?양아치?노숙자/걸인?

30-40대 팬들에 대한  하나의 비난은 그들이 사회적인 무능력자이고, 공동체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존재라는 점이다. 위의 댓글들은 30대가 팬활동을 하는 것이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첫번째 댓글의 경우 소녀시대 팬들에 대한 혐오에 있어서 국가주의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과거 박정희 독재 시절, 젊은이들의 문화를 탄압하면서 대중문화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짓거리이며 청년들의 정신을 좀먹는 것이라고 여겼던 시각의 흔적을 보여주는 점이다. 과거, 문화는 국가 경제발전과 산업 생산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여겨졌다. 근면 성실한 태도로 일터에서 노동자로서 일해야할 산업 역군 청년들이 노래나 춤 등에 빠져서 허송세월하는 것을 개탄하듯이,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한심한 짓"이라는 말에 요약되어 있다. 

문화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말은 하지만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저평가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의 시대는 문화적 상품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에 군침을 흘리는 시대일 뿐,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시대는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중문화 중에서도 아이돌 그룹이 특히 더 하찮고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 악플러는 가수를 좋아하느니 그 시간에 소일거리나 좀 찾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팬활동이나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이 "소일거리" 조차 되지 못하게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 댓글은 30대팬들에 대한 시각이 사회적 하층부에 대한 혐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30-40대 팬들에 대한 혐오가 실제로 계급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해 준다 . 30-40대 팬들에 대한 혐오는 다름 아닌 사회 경제적 중하층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인 것이다.

아이돌을 좋아하고 그들의 공연을 즐기는 팬문화는 대중문화에 속한다. 즉, 이것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고급문화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을만큼 값싸고 대중적이다. 30대의 남자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첫번째 반응은 그가 과연 경제적 가치가 있는가이다.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그는 가차없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 중 돈 많은 사람이라면 계층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고급 문화의 소비 주체일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를 더 하찮게 취급한다. 오페라를 보거나, 골프를 치거나, 골동품을 수집하거나, 돈이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은 지탄을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아이돌을 좋아하는 30-40대 남자들은 그들에게 "한심한 인간" 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보자. 공개방송을 방청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30대 남자를 상상해 보라. 이 사람이 '한심한 놈'이라고 여겨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요소이다.

아이돌에 대한 팬활동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10대 학생들이 지배하고 있을만큼 상대적으로 비용이 들지 않는 활동이다. 공개방송이나 팬싸인회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내심과 운이다. (인내심은 선착순으로 들어갈 경우 오랜 시간 기다리기 위해 필요하고, 운은 추첨으로 참여자를 정할 경우 당첨되기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그렇게 비용이 적게 드는 팬활동에  참여하는 30대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위치가 낮을 개연성이 높다. 물론 그 개인의 실제 계층적 위치보다는 아이돌에 대한 팬활동을 하류적 문화라고 인식 자체가 문제이다. 그리고 사회적 시선은 그러한 "하류"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가한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비싼 취미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러한 멸시는 정당화된다. 문화적 취미 활동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이 사회가 경제적 약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이것이 가지고 있는 논리는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다니기 때문에 네가 가난하다" 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 사회적 하층부에 속하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 또 국가의 경제 정책 실패 등이 원인인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게으름을 부리고 쓸데 없는 짓을 한 결과라는 보수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소녀시대의 30대 팬은 자신의 경제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즉시 '한심한 놈'의 대열에 끼게 된다. 경제력이 없는 소녀시대 삼촌팬은 한심하고 무능한 인간으로 지탄 받는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이 지탄을 받고 욕을 먹는 것은 너무나 암울한 일이다.

위와는 반대로  공개방송 줄에 서 있는 일본인 아줌마들을 생각해 보자. (실제로 그러한 아주머니들이 상당수 된다.) 갑자기 시선이 온화해 진다. 그들이 외국에서 온 손님이고, 일본이라는 선진국의 국민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호의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40대 아주머니가 젊은 아이돌에 열광하는 모습은 어색하게 비춰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에는 즉각 반응을 보이고 고개를 숙인다. 외화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돈을 쓰는 소비 주체, 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한국까지 와서 가수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경제적 여유, 그것에 대해 사람들은 존중을 표한다.

(나는 그 일본인 관광객들에 그 어떤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거의 유사한 현상에 대해, 경제적인 이유로 그 시선이 얼마나 확연히 달라지는지를 비교하고자 할 뿐이다. )

(2) 극도의 혐오 - 삼촌팬은 극악한 변태인가
  
<디시뉴스의 댓글>

36살 먹은 소덕후라 곧있으면 마흔이데 좀 많이 더럽네
36살이면 변태네 ㅋㅋㅋㅋㅋㅋ왜그렇게 사니

 <KBS 게시판>    

솔찍히 변태 같은데요?? 아닙니까?ㅋ
36살 소덕 소름돋습니다. 싫어

<네이버 뉴스 댓글>

우리나라 정서로 36살먹고 (소녀시대를 응원하는 것이) 뇌가 정상이냐.
그렇게 미소녀가 좋으면 일본에 가라. 어후 더러운 넘.
시커먼 놈이... 생각만해도 토쏠린다

<미디어 다음 댓글>

36살에.... 소녀시대... 원더걸스에 열광하는 사람들.. 과학적으로 소아 성장애를 가졌을 수 있다고 하든데...
저새퀴 성범죄 조회해봐야 한다  원저 교제 전과 있는지...
변태 아저씨들이 소녀시대 CD를 10장씩 사간다던데 그걸 가져다가 집에서 뭘 할까.
창피한 줄을 모르는 변태들
인간취급받기능 애초에 글렀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라.
진짜 한심한 변테 개덕후라고 생각한다...

위의 악플들은 가수를 좋아하는 30대 팬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아동 포르노나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극악한 성범죄자에 대한 혐오와 분노에 가깝다.  또한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30대에 대한 시선이 언론에서 말하는 것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물론, 위의 악플과는 달리 이해하는 메세지를 담은 댓글들도 많다. 그러한 댓글들이 악플보다는 많다는 점에 그나마 안도를 느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이 언어적 폭력과 비이성적 혐오증에 시달려야 하는 30대 팬의 현실을 언론이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다루는 경우에도 기껏해야 사소한 오해나 편견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위와 같은 극도의 혐오와 공포는 중년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의 빈번함과 그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위의 악플들은 강○○이라는 연쇄살인범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것과 같은 시기에 쓰여진 글들이다.)  다수의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살해한 살인범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공포심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겠으나, 그에 못지 않은만큼의 혐오감을 젊은 가수를 좋아하는 30대 팬들에게 보여주는 현상을 합리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심지어 한 댓글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30대 남성이 소아 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사회의 범죄에 대한 공포, 그리고 남성들이 주로 그러한 범죄자인 점들을 고려하더라도 팬들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오해와 혐오적 태도는 터무니없이 가혹하고 부당하다.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30-40대 팬들은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측면이 배제된 체 그저 젊고 어린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으로 가득차서 그것을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성적 공격자(sexual predator) 내지는 예비 성범죄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남성의 관음증적 쾌락에 대한 욕망으로서 표상된다.

그러나 '소녀시대를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년 남성'이라는 생각은  남성의 성과 욕망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시각이다.  관음증적 욕망과 쾌락을 추구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값싸고 적나라하게 훨씬 더 자극적으로 그것을 충족시킬 길이 널려 있다. 그에 비해 소녀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너무나 순수하고 순진하다. 관음적 쾌락을 원한다면 소녀시대의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속된 남자들의 말마따나 그저 감질날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위 "남자다운" 남자들은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남자들을 더 한심하게 여긴다. 다음 악플들을 살펴보자

     <디시뉴스의 댓글 중>

ㅋㅋ 나이 서른 넘게 먹었으면 나이답게 놀아라 시내 바에가서 아가씨들이랑 노가리나 까는게 맞지 아이돌 그룹한테 열광할 나이냐 한심한 일반인
ㅋㅋㅋ 어휴 ㅅ발 36살이면 걍 돈주고 풋풋한 애들 사먹든가 이게 뭐냐? 방송까지 나와서 개쪽을 다까네

소위 "남자다운" 남자들의 시각에서는 여성을 성적 노리개나 눈요깃감, 그리고 상스러운 말을 통한 언어적 소비의 대상 으로 삼는게 문제되지 않는다. 지나가는 말로 소녀시대를 좋아한다거나 예쁘다고 말하는 것, 혹은 더 속되고 상스러운 말로 표현하는 것 등은 남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소녀시대를  "정말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팬"은 남자답지 못하고 한심한 것으로 매도된다.

이렇게 소녀시대의 30대 팬들은 한 편으로는 "변태"라는 말로 표현되는 성적 욕망의 과잉으로 비난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심한 놈'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남성 섹슈얼리티의 결여로 비난 받는다. 성적 욕망으로 충만한 "남자다운" 남자라면 여자친구나 아내를 통해 욕구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야동을 보거나 성매매를 하거나 룸싸롱에서 아가씨의 허벅지나 가슴을 주물러야 하건만, 겨우 멀리서 아이돌 스타를 바라보고 응원하는 것은 남자답지도 못한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소녀시대의 30대 팬들은 두 가지 모순된 포위공격을 받으며 이중적으로 속박되어 있다.

(3) 철딱서니없는 존재들 - 나이값 못하는 30-40대
 
<네이버 뉴스 댓글>

나참 나이 36살에 솔직히 저기 졸졸 쫓아다니면서  (소녀시대 좋아하는 게) 솔직히 저 나이에 할 짓 임? 결혼 빨리 하면 자식이 중학생뻘임 그런데 저런짓을 ㅉㅉ

<디시뉴스 댓글>

솔직히 36살 먹고 저런짓 챙피하지 않나?욕먹을만 하네 ㅋㅋㅋㅋㅋㅋ
36살 덕후는 비웃음 살만한 짓 한거고. .... 유난떨지말고 나이에 맞게 조용히 티안나게 응원하면 누가뭐래.
  

위 댓글들은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팬활동을 하는 것이 나이값을 못하는 한심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문화와 사회에는 특정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허용된 행동들과 그렇지 않은 행동들에 대한 가치 기준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30-40대의 행동을 부적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나이에 걸맞는 행동에 대한 가치 기준이 역사적으로 변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30-40 대팬들의 목소리는 그 기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젼의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30-40대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실로 오늘날의 대중문화의 중심에 키덜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40대 남자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내기를 하고, 말장난을 하고 설레발을 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또 어른들이 프라모델에 열광하고 만화를 즐기고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등 아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겨지던 일을 취미로 삼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현실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그것이 사회적으로 손실을 끼치는 일로서 지탄과 불명예와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긍정적 변화로 인식되어야 할 것인가?

비판자들은 30-40대 팬들이 사회적 책임을 져버리고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어른 팬이 자신의 일을 팽개치고 팬활동을 하느라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을 들은 바가 없다. 그들은 일부 10대들이 연예인을 따라다니느라 학업에 소홀한 점을 가지고 어른 팬들도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방기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바탕으로 30-40대 팬들을 비난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팬활동을 하는 것이 30-40대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그 근거로는 자유의 증대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들겠다. 30-40대 남자라 하여 엄숙함, 근엄함, 삶의 책임에 대한 무게와 심각한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들에 갇혀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철이 든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어른들의 증가는 전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화와 텔레비젼에서 30-40대 아니 50-60대라 하더라도 소년적 감수성을 가지고 유쾌하고 즐겁게 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허용못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권장될 일일지도 모른다.

흔히 핑클과 SES를 좋아했던 세대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에 열광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30-40대 팬들 중에는 노찾사와 꽃다지에 열광했던 사람들도 상당수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진지함과 삶에 대한 치열함을 버리고 솜털같이 가벼운 즐거움에 빠진 타락이자 배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40대라 하여 대중문화라는 삶의 일부분에서 즐거움과 유쾌함을 누리는 것이 사회적 고민을 무화시키고 그에 배치되는 것이라는 가정은 지나치게 엄숙주의적인 발상이다.    

30-40대 팬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혐오에는 그들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침해와 부정적 시선도 포함되어 있다. 즉, 여자친구, 결혼, 가정 생활, 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등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30-40대 팬들 중에는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 결혼을 한 사람, 비혼인 사람, 이혼을 한 사람 등등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각각의 부류에 따라 알맞는 각각의 비난들이 존재한다.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한테는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결혼을 했으면 한대로, 안 했으면 안 한대로 그에 상응하는 욕설과 비난이 마련되어 있다.

그 중 특히 비혼 남성이면서 소녀시대 팬인 사람에 대한 언어적 폭력과 멸시는 더 가혹하다. 예를 들어 30대 후반이면서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가 직장에서 소녀시대를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책상 한 구석에서 소녀시대의 사진이 발견된다면, 주변의 남녀 동료들로부터 "그렇게 어린 여자만 좋아하고, 변태같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자친구도 없고 결혼도 못하고 그러고 있죠. 지금 자기 주제에 소녀시대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등의 말을 들을 것이다. 그가 소녀시대의 팬인 것이 구애를 하고 사귀자고 대시하는 것이라고 착각할만큼의 이해력을 가진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소리 듣는 것도 당연하겠구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만큼, 우리 사회는 이제 겨우 투표권을 획득한 정도의 민주화를 이루었을 뿐, 개인의 자유와 기호와 사적 영역에 대한 존중이라는 의미에서의 민주화는 19세기에서부터 반보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만약 30대 여성이 남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거나 영화배우를 좋아한다고 한 것에 대해 "그렇게 젊고 잘 생긴 남자나 좋아하고, 그러니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있지. 자신의 외모로 보았을 때 그런 남자가 가당키나 하나요? 나이에 맞게 정신차려요. " 라고 했다고 해 보자. 정상적인 사회라면, 여성에게 이런 발언을 한 남자는 성희롱죄로 질질 끌려가야 마땅하다.

4. 나도 소녀시대 팬이예요. - 당당함과 두려움의 경계

우리는 주변에서 "나도 소녀시대 좋던데." " 우리 남편도 소녀시대 좋아하던데." "나도 사실 팬이야" 등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나는 위에서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30-40대가 얼마나 편견의 폭력에 시달리는지를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소녀시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소녀시대의 팬이라는 것을 당당히 밝힌다"는 것에는 사실상 두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고 본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는 가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첫번째 경우는 소녀시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주변 사람들이 사적인 친밀함과 인격적 관계 그리고 상호존중 관계가 이미 충분히 확립되어 있는 경우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충분히 잘 알고 신뢰관계가 확립된 사람한테 자신이 소녀시대의 팬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두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소녀시대를 좋아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나를 변태나 한심한 놈으로 보지 않을만큼 충분히 인간적 관계가 확립되어 있다면 문제될 것은 거의 없다. 소녀시대의 팬이라는 점은 그 사람의 한 측면일 뿐이고, 그가 인간으로서 여러 다양한 측면을 가진 인격체라는 것이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는 첫번째 경우보다 훨씬 더 문제적이다. 그것은 그가 소녀시대의 팬이라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알고 있는 것이 없을 경우이다. 즉, 소녀시대 30대 팬이 전혀 친밀한 관계가 없는 낯선 타인으로 존재할 경우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젼 방송국 앞에서 소녀시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방청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한 30대 남자가 있다고 해 보자. 그는 혼자 왔으며 주변 사람들과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조용히 있다. 그는 연신 헛기침을 하거나 땅을 쳐다보거나 먼곳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30대 남자는 팬들에게 배포된 핑크색의 하트 모양 풍선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잘생기기는 커녕 오히려 못생긴 편에 속한다.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특히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 남자에게 극도의 혐오감과 불쾌감을 느끼면서 비난과 욕설을 퍼부을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는 그 어떤 인간적 모습도 박탈당한 채, 오직 이제 막 스무살이 되는 어린 여성을 욕망하는 성욕에 가득차 있을 뿐인 한 30대 남성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 쾡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은 소녀들을 성적으로 욕망하는 관음증적 시선이고, 친구나 동료도 없이 홀로 조용히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고 소녀들을 쳐다보는 것은 영락없는 싸이코 성범죄자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 낮선 남자는 정상적이고 평범하고 영혼과 인격을 가진 멀쩡한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혐오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가 혼자인 것은 함께 팬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일 수 있고, 팬까페에서 활동을 한다하더라도 수줍어서 잘 어울리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혼자이다 보니 어색해서 먼 곳이나 바라보고 땅이나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주변 사람들이 30대 남자라고 이상하게 볼까봐 민망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녀시대를 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것은 내게는 오히려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팬으로서의 마음으로 보인다.

한 인간을 대할 때 전혀 이해하려는 자세없이 그저 알 수 없는 하나의 객체로, 모든 인격적 측면을 말살하고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시선의 폭력일 뿐이다.  

위의 두 가지 극단적 경우보다는 현실에서는 극히 친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 남도 아닌 경우가 많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이다. 많은 30-40대 남성팬들은 직장에서 흔히 "일코" 모드로 산다고 한다. "일코" 란 일반인 코스프레를 줄인 말이다. 코스프레는 만화나 영화의 캐릭터로 분장하는 것을 말하는데, 팬이면서 팬이 아닌 일반인으로 가장하고 다닌다는 것을 뜻한다. 팬들이 직장에서 일코모드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주변 동료들의 언어 폭력과 부당한 대우가 두렵기 때문이다.

5. 성적 대상화의 문제

내가 만약 어떤 사람에게 서태지를 정말 매우 엄청나게 좋아하는 팬이라고 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내게 서태지와 데이트를 하고 싶은 것이냐, 서태지에게 동성애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냐 등의 질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내가 서태지를 좋아하는 것, 즉 내가 한 뮤지션을 좋아하는 것에는 성적인 시선이 아니라, 다른 많은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서태지라는 인간이 가진 인간적 매력, 음악가로서의 능력과 아티스트로서의 창의성 등 서태지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많은 측면들을 내가 좋아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소녀시대를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고 하자. 상대방이 소녀시대의 이미지만을 좋아하는 거 아니냐, 소녀시대하고 사귀고 싶은 마음이 속에 있는 거 아니냐, 겉모습만 보고 좋아하는 거 아니냐 등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 때 그 상대방은 나라는 인간이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예쁜 외모와 겉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아니 더 정확히는 오직 그러한 이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때, 소녀시대를 다른 모든 인간적 요소와 능력이 없이 그저 pretty face에 nice body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상대방이 소녀시대를 대상화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소녀시대의 팬인 내가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소녀시대가 공연 예술인이자 엔터테이너라는 점도 무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녀시대가 보여주는 공연, 그들의 춤과 노래를 미인대회의 수영복 심사나 매한가지로 보고 있는 그가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는 것인가, 팬인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인가?

한겨레 21의 한 기사에서 어떤 평론가는 소녀시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녀시대는 아주 매끈하게 다듬어진 한정판 피겨가 쭉 늘어선 느낌"이라며 다양한 매력으로 다양한 취향의 팬을 포괄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한겨레21> 748호. p.83)

다듬어진 피겨로서 소녀시대를 보는 것은 겉모습과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대상으로, 그리고 다양한 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시물 같은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소녀시대의 팬들은 소녀시대의 멤버들이 인격과 영혼과 감정을 가진 인간이자 삶의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들은 멤버들의 감정과 기분을 살피고, 그들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고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한다. 팬들은 그들이 텔레비젼 안에서 움직이는 피겨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와 같은 인간 존재로서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성적 대상화의 문제와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분석은 나의 조야한 식견보다는 훨씬 더 깊이 논의될 문제라는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자본에 의해, 지배적 시각에 의해, 가부장제에 의해 규제되고 틀에 맞추어진 여성성만이 과도하게 승인되고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며 다양한 여성성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문제등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슈가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는 현실이 심히 안타깝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권력의 작용을, 비판이라기보다는 특정 대상에 대한 손쉬운 매도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감정과 인격을 가진 존재들임에도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마음없이 소통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치부하여 기각해 버리는 태도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6. 삼촌팬들이 유령이 아닌 당당한 실체가 되기를 꿈꾸며

소녀시대 30대 팬으로서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문화 상품에 대한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고 이끄는 주체로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과 기회가 허락하는 한 공연과 이벤트와 행사에 참여하고 싶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동료와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다. 또 소녀시대를 보는 설렘으로 열광적으로 그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싶다.

나는 내가 중년의 나이이고 보통 이하의 외모를 가졌다 할지라도, 얼굴없는 소비자로, 숫자로서만 존재하는 마케팅 대상으로 사느니, 대중 문화라는 한 영역에서 의미를 생산하고 나누고 그 즐거움을 누리는 한 명의 인간적 주체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소녀시대와 같은 아이돌 그룹에 대한 팬생활 정도에 "문화적 주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생각한다면, 속된 대중문화라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녀시대의 30-40대 팬들은 신기하고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되고 그저 호기심에 기인한 뉴스거리로 대접받은 경험으로 인해 많은수가 마음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팬들이 언론이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30-40대 팬들은 무조건 조용히,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좋아하거나 혼자 음악을 듣는 선에서 그쳐야 하며, 그것이 소녀시대와 다른 팬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30대 이상의 팬들이 비가시적 유령으로 떠돌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30대 팬들은 핑클과 S.E.S. 세대일 뿐 아니라 서태지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설령 자신이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해도, 서태지의 팬들이 적극적인 활동과 문화적 실천을 통해 저열한 오빠부대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시선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문화적 지형에서 존경받는 대중문화의 주체로 우뚝 성장하는 것을 목격한 세대이다. 그러한 성과는 서태지라는 한 개인이 가진 아티스트로서의 능력에 기인했다기 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성숙한 팬활동과 문화적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녀시대나 다른 아이돌 그룹이 서태지와 같은 역량을 보여줄지, 그리고 그 팬들 또한 서태지 팬들 만큼의 성숙함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성과는 한 가수 개인과 그를 좋아하는 팬들에 국한 것이 아니라, 대중 문화를 향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진 희망의 깃발이자 메세지이다. 문화는 고정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고 나누는 과정이다.  욕설과 비난 그리고 극심한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긍정적인 의미를 만들어 간다면, 아이돌 그룹과 그 팬들이 우리나라 대중문화 속에서 정당하게 평가를 받을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감은 오히려 30-40대 팬들에게 있지 않을까 한다.    
#소녀시대 #삼촌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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