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모래마을 사람들 2회

1. 말복날의 손수레 2

등록 2009.03.02 17:12수정 2009.03.0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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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복날의 손수레 2

자신의 이름을 부른 20대 초반의 여성을 발견하는 순간, 재활용품이 가득 담긴 손수레를 힘겹게 밀고 가던 선호는 몹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소설가 겸 문화평론가인 선호가 손수레를 끌고 아예 재활용 자원 수거 작업 일선에 나선 것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다"는 말씀을 존중하여 보면, 그것은 많고 많은 아르바이트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한 것이었을 뿐이며, 설령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쩌면 선호의 행동 표현에서 종종 나타나는 이열치열(以熱治熱) 같은 것이기도 했다.

장마 빗줄기가 일찌감치 얼굴을 감추자마자, 푹푹 찌는 경제라도 흉내 내듯이 무더위가 본격화된 7월말, 선호는 모래내 시장 곁길에 있는 실비 자장면집 '짜짬짜짬'에서 1500원밖에 하지 않는 자장면을 외상으로 먹고서 모래내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복개천 쪽으로 빠져나가다가, 우연히 한 고물상 벽면에 적혀진 생소한 선전 문구를 발견했었다.

'헌옷 고가 매입'.

모래내 마을 곳곳에는 불우이웃에게 전해 주기 위한 헌옷 수거함이 노란색 철통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냥 수거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고가(高價) 매입을 한다니, 과연 그 값이 얼마일까 궁금해졌다.


'구월 마을 재활용 자원'이라 간판된 고물상으로 들어간 선호는, 얼굴이 구릿빛으로 건강해 보이는 선(善)한 인상의 여사장에게 물었다.

"얼마에 산다는 거죠?"
"킬로당 200원이에요."
"10킬로면 2000원, 20킬로면 4000원이네요?"
"예."
"옷을 사서 어디다 쓰는데요?"
"가난한 나라에다 수출한대요."
"하기야 새옷을 입을 꿈도 못 꿀 나라도 있을 테니, 좋게 보면 국제적인 불우이웃돕기군요."

여사장은 웃음으로 대꾸했다.

"이불도 받나요?"

그때 마침 재활용 파지들을 한 짐 팔고서 긴 중고(中古) 의자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거들어 주었다.

"솜이불만 안 되고 다 돼요."

그러니까 얇은 홑이불만 된다는 뜻이었다.

집에 돌아온 선호는 즐겨 입지 않는 옷을 하나하나 개켜 모아 보았다. 새 홑이불은 물론, 선친(先親)이 입던 양복, 자신이 입던 코트까지 한두 벌만을 남겨두고 모조리 보자기에 싸버렸다.

그러나, 한 벌에 싸게는 1만 원에서 비싸게는 10만 원을 주고 샀을, 보자기 가득 싼 옷가지를 양 손에 들고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가 저울에 달고 팔아보았지만, 선호가 받은 버려진 옷값은 고작해야 모두 4000원이 못 되었다.

"종이는 얼맙니까?"
"신문지나 책은 킬로당 100원이고요, 박스 같은 파지는 90원 해요. 그보다 떨어질 때도 있고요."

빌라로 돌아온 선호는 신문지도 모아 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현대사를 파헤쳐 쓸 대하소설 자료로 애써 모아둔 신문들인데, 이제 더 이상 모아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집이 언제 날아갈지 두렵게 사는 스트레스 인간 신세, 무슨 놈의 소설인가?"

그러다가 아예 잡지는 물론 단행본도 팔아버려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달려갔다. 어느새 전업소설가 생활 15년째에 접어든 중견소설가 선호, 앞으로 중진작가가 되면 이문열이나 이외수 같은 선배작가처럼 사숙(私塾)을 차릴 참이고, 그때 문하생들을 위한 도서실에 꽂아두기로 생각했던 책들이었다.

"사치야 사치. 내 주제에 사숙은 무슨 얼어 죽을 사숙인가? 도서실은 무슨 말라비틀어질 도서실인가? 문학은 무슨 개소리 같은 문학인가?"

선호는 등줄기로 땀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렸다.

며칠 전에 선호는 무시무시한 전보 한 장을 백성은행으로부터 받았던 터였다. 전화를 해보니, 담당과장이 무시무시하게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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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 있는 책들 온갖 종류의 책들은 작가가 역사 판단을 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 ⓒ 김선영

덧붙이는 글 | 몇 년 전에 완성해 놓고 출간하지 않고 있던 소설인데, 최근의 달라진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몇 년 전에 완성해 놓고 출간하지 않고 있던 소설인데, 최근의 달라진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모래마을 #모래내시장 #신용불량 #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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