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서리를 이고 있어도 똑같지 않아라

[포토에세이] 춘삼월 서리

등록 2009.03.04 16:24수정 2009.03.04 16:2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위취에 맺힌 서리 긴 겨울 고난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바위취에 맺힌 서리긴 겨울 고난의 흔적이 가득합니다김민수

춘삼월인데 어제는 봄눈이 내리더니만 오늘은 서리가 내렸습니다. 올 듯 올 듯 봄이 이렇게 힘겹게 옵니다. 아침 햇볕이 따스하니 서리도 다 녹아버립니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고, 가는 것은 늘 아쉬운 법인가 봅니다. 무엇이든 곁에 있을 때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일 것입니다. 아주 많이 사랑하세요.


낙엽과 서리 흙의 빛깔을 닮아가는 낙엽
낙엽과 서리흙의 빛깔을 닮아가는 낙엽김민수

흙으로 돌아가는 나뭇잎, 봄 연록의 새싹으로 돋아나 희망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청년의 빛으로 뜨거운 태양을 다 이겨냈고, 가을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빛깔로 제 몸을 치장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늦가을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땅에 기대어 쉼의 시간에 들어갔습니다.

그 쉼의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를 온전히 비워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제법 흙의 빛깔을 닮아있고, 연록의 새싹 돋아는 완연한 봄이면 흙과 하나일 것입니다.

질겅이와 서리 텅 빈 질겅이의 씨방
질겅이와 서리텅 빈 질겅이의 씨방김민수

질겅이, 예쁘지도 않은 꽃을 피웠던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긴 겨울 지났음에도 아직 떨어지지 않은 씨앗이 있지만, 씨방은 거의 텅 비었습니다. 떨어지지 않은 것들도 봄이면 얼다 녹기를 반복한 줄기가 녹아 흙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예쁘지도 않은 꽃, 작아서 꽃이 피어 있는 것조차도 몰랐던 그 꽃이 질겅이에게는 가장 예쁜 꽃이겠지요. 자기의 눈썰미에 따라 예쁘다, 예쁘지 않다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회양목과 낙엽 달라서 아름다운 자연
회양목과 낙엽달라서 아름다운 자연김민수

회양목, 낙엽…….
어쩌면 늘 푸른 회양목의 푸름을 사모해서 그 품에 안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늘 푸른 회양목이 낙엽의 색깔을 사랑해서 그 품에 안았는지도 모르겠고요. 각자의 삶이 있습니다. 자연은 각기 다른 삶을 인정할 줄 압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러나 큰 틀에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함을 인정해야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냉이와 서리 냉이 이파리에 맺힌 서리, 같은 서리인데 서로 다르다
냉이와 서리냉이 이파리에 맺힌 서리, 같은 서리인데 서로 다르다김민수

똑같은 서리를 맞이했을 뿐인데 각기 다른 모습임을 보셨을 것입니다. 자연은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같은 서리를 맞았으면서 왜 그토록 서로 다른 모습이냐고 꾸짖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은 자기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은 타고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직 '시험성적' 하나로 그 아이의 전부를 평가합니다. "왜 너는 공부를 못하냐?"라는 한 마디로 그 아이의 미래 전부를 낙오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춘삼월인데 어제는 봄눈이 내리더니만 오늘은 서리가 내렸습니다. 올 듯 올 듯 봄이 이렇게 힘겹게 옵니다. 봄이 너무 쉽사리 오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을까 하는 노파심을 가진 자연의 배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 다 소중한 것이니 아주 많이 사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