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님, 사퇴하십시오!"

초선의원이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록 2009.03.04 22:55수정 2009.03.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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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 ⓒ 남소연


늘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고 무서워해야 할 것은 오직 국민의 말씀뿐이라는 다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선배 의원들을 모범으로 삼아 신의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의정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국회에 들어온 것이 까마득한 옛날 일 같은데, 찬찬히 돌이켜보니 이제 겨우 10개월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본회의장에 첫발을 내디뎠던 초선의원은, 입법부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있습니다. 한없이 왜소해진 모습으로 의원들의 야유를 받으며 법안을 처리하고 있는 국회의장의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과 함께 참담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의를 저버린 국회의장

지난 3월 2일 여야 간 합의를 놓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극적인 대타협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루어 냈다. 우리 국회의 새로운 기록이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의장님께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새로운 기록이고 무엇이 새로운 희망입니까? 국회의장이 신의를 저버리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압박에 굴복한 사실이 새로운 기록이고 새로운 희망입니까? 직권상정 발동 협박으로, 경찰력 동원으로, 야당의 목을 조르고 칼끝을 겨누는 것이 새로운 기록이고 새로운 희망입니까?

지난 3월 2일 국회의장은 "대화와 타협하는 것, 그리고 소수자의 배려와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할 적에 민주주의와 국회는 건강해진다는 것을 다시 입증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의장님께 여쭙겠습니다. 대화와 타협이 있기는 했던 겁니까?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겁니까?


결코 없었습니다! 도대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중재안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국회의장 스스로 만들어서 여야에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은 국회의장께서 제안하신 내용을 받아들였습니다.

한나라당은 어땠습니까? 의장님의 제안을 거부하고 170석이 넘는 다수 의석을 가지고 로텐더홀을 점거한 채 국회의장을 상대로 협박에 나섰습니다. 그 후, 국회의장의 모습은 국회에서도 국회의장 공관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의장님을 만나려 했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재를 자처한 당사자이셨던 국회의장께서는 호텔에 있었습니다. 국회의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인데 왜 국회를 버리고 호텔로 간 겁니까? 열린 광장인 국회를 버리고 은밀하게 호텔에서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을 만나서 의장은 도대체 어떤 말씀을 나눈 것입니까? 무슨 협박을 받은 겁니까?

호텔에서 나온 국회의장의 손에는 중재안 대신 직권상정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들려 있었습니다. 청와대 말 한마디에, 여당 최고위원들의 불신임 협박에, 합의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이러고도 대화와 타협을, 소수자 배려를 말하겠습니까? 이러고도 신의의 정치를 말하겠습니까? 이래놓고도 국회의장의 영이 서기를 바라는 겁니까?

열 사람의 국민 중 일곱 사람이 언론악법 개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오직 영구집권에 혈안이 된 청와대와 한나라당, 조중동만이 대찬성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할 국회의장은 어디로 간 겁니까?

온갖 불법을 자행한 국회의장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입법부의 수장입니다. 그런데 의장은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나흘 동안 너무나 많은 불법을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민생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면서,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는 왜 일방적으로 취소한 겁니까?

국회법 제72조 "의장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그 개의시를 변경할 수 있다" 위반

지난 3월 2일, 국회의장은 오후 1시 30분에 언론악법 등 15개 법안의 심사기일을 오후 3시로 지정했습니다.

국회법 제85조(심사기간) "의장은 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 또는 회부된 안건에 대하여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의장은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야 한다" 위반

국회의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15개 법안을 1시간 30분 안에 심사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까?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하겠다는 생각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국회의원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이어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국회 본관은 경찰로 둘러싸여 국회의원 보좌진의 출입이 원천 봉쇄됐습니다.

국회법 제144조(경위와 경찰관) 2항 "의장은 국회의 경호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국회운영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정부에 대하여 필요한 국가경찰공무원의 파견을 요구할 수 있다" 위반

대한민국이 경찰국가입니까?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아닌 경찰이 주인 행세를 하고 다녔습니다. 도대체 국회의장은 국회법을 어디에 갔다가 버렸습니까? 이래놓고도 신뢰의 정치를, 법질서 회복을, 사회기강 바로 세우기를 말하겠습니까?
입법부 수장이라는 권위와 법질서 수호 임무를 헌신짝 버리듯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언제까지 표리부동한 말씀을 계속할 작정입니까?

협박정치 소산인 여야합의문 무효화 될 것

지난 1박 2일 동안,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국회의장이 치밀하게 준비하고, 국회의장이 야당과 국민의 목에 칼끝을 겨누어서 만든 여야 합의문은 온갖 불법이 동원된 협박정치의 산물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삶의 준거가 되는 민법 제110조(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1항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여야 합의문은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청와대와 여당의 강박에 굴복해서 경찰력과 직권상정 권한을 총동원해 야당을 압박하고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역한 것이기에 무효입니다.

2009년 3월 2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날 중 하나로 기록될 것입니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에 의해서, 대한민국 국회가 완전한 통법부로 전락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청와대와 여당의 독선과 횡포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은 수치스러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 신뢰와 존중,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씨가 마르고, 바야흐로, 정글 정치가 시작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통법부로 전락한 대한민국 국회의 수장이 끝내 국민의 뜻을 거역하고 다수의 힘을 내세워 언론악법을 개악할 경우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엄중하게 경고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언론악법 개악은 기필코 저지될 것임을 이 자리를 빌려서 천명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님 사퇴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김상희 기자는 지난 30여년간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시민운동가 출신의 국회의원으로서 18대 국회 비례대표로 선출되었다.


덧붙이는 글 김상희 기자는 지난 30여년간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시민운동가 출신의 국회의원으로서 18대 국회 비례대표로 선출되었다.
#김상희 #김형오 #국회 #몸싸움 #직권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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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김상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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