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의 상징중 하나인 창지앙 케이블카멀리 보이는 것이 충칭시내 중심인 유중구다
조창완
안개의 도시(雾都)라는 별칭에 맞게 충칭은 안개와 이슬비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지역은 끊임없는 부동산 개발로 2년 전 방문했을 때와는 완전히 딴 모습으로 변했다. 창지앙(長江)과 지아링지앙(嘉陵江)의 강변에는 고층빌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가지고 온 옷이 부족해서 초저녁에 호텔 인근에 있는 충칭 최고의 상업거리인 지에팡뻬이(解放碑)의 옷 가게들을 들렀다. 괜찮은 옷들은 2~3백위안이 보통이었다. 2백위안이면 우리 돈으로 5만원에 호가한다. 한국보다 비싼 셈이다. 그런데도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다음날 점심에는 퇴직한 간부들의 식사자리에 손님으로 초대 돼서 같이 했다. 60세 전후인 이들은 후배들의 초대로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오락을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퇴직 후 정처없이 시간을 보내는 우리 선배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저녁에는 충칭시가 한국에 만든 산업개발단지를 관리하는 현직 인사가 자리를 같이 했다. 물가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열을 내서 한 쇼핑을 이야기했다. "산업단지에 가기 위해서는 용산에서 기차를 타는데 전자상가에서 니콘 D300을 140만원에 샀다. 이 카메라, 중국에서는 1만위안이다. 1만위안이면 250만원이다. 정말 횡재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2007년 12월 3일에
'니콘 D300, 중국보다 30만원 비싼 까닭'이라는 기사를 썼기에 기분이 더 씁쓸했다. 당시에는 이 카메라의 한국 가격은 200만원이었고, 중국 내 가격은 1만2600위안(당시 환율대비 160만원)이어서 한국이 40만원 가량 비쌌다.
하지만 1년반여 만에 이 위치는 완전히 역전됐다. 양국 모두 2~30%가량 가격이 떨어졌는데, 원화가치가 위안화의 절반으로 추락하면서 이제는 한국이 110만원이나 싼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놓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가 난감하지만 어차피 그 가격을 유지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크게 나쁠 것도 없는 형편이다.
사정이 생겨 며칠 앞당겨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으로 오는 길에 모시고 갔던 분이 한 신문에 난 칼럼을 보여주며 읽었냐고 물었다. '우리가 중국인의 발마사지를 하는 날'의 이 칼럼에는 10년 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사람의 발마사지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기사였다.
그런데 사실은 머잖아 아니라 이미 이런 날이 왔다. 한국의 병원에는 이미 중국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기자 역시 이 시장을 바라보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문에는 세계 금융위기는 똑같이 겪는데 우리나라의 삶만 이렇게 힘들어졌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1년반여 만에 원화-위안화 가치는 완전히 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