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배척 조선시대에 살아 남은 '석남사'

[미륵이 꿈꾸는 고장 안성 답사①] 안성 들여다보기

등록 2009.03.08 12:50수정 2009.03.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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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답사는 역시 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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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청원사 대웅전 ⓒ 이상기


어찌된 인연인지 3월 첫 답사는 늘 안성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성을 찾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답사의 주제는 지난해와는 조금 다르다. 미륵이 사는 고장 안성을 탐구하는 것이 이번 답사의 목적이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출발, 죽산에 사는 경기도 문화유산 해설사 진영숙씨의 안내를 받았다.


3월 3일, 봄이 이만큼 온 것 같은데 일기예보대로 눈이 내린다. 금방 그치려니 했더니 갈수록 산과 들이 하얘진다. 옆에 가는 회원들이 비보다는 눈이 낫다고 거든다. 그래, 작년부터 계속된 가뭄도 해갈되고 답사 분위기도 띄워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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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 순교자 기념성전 내부 ⓒ 이상기


이번에 우리는 안성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답사를 할 예정이다. 원곡면에 있는 청원사를 먼저 보고 조병화 문학관을 지나 미리내 성지로 가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이 가는 곳은 미리내 성지이다. 그것은 미리내 성지에 김대건 신부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인지 다른 회원들도 미리내 성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더욱이 눈에 덮인 미리내 성지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성스러운 땅(聖地)이 되었다. 진리는 그대로인데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미륵을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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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리 미륵 ⓒ 이상기


미리내 성지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대농리 미륵이다. 이 미륵부처는 안성읍의 북쪽 대덕면 대농리 대덕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대농리 대덕은 밀양 박씨 집성촌으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외곽에 미륵부처가 있는데 당제 등 마을신앙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성 역시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번 답사 여행에서 본 또 하나의 미륵은 안성 시내에 있는 아양동 미륵이다. 아양동의 옛 이름은 아롱개이다. 아롱개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옛날 이 지역으로 개천이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양동 미륵은 할아버지 미륵과 할머니 미륵 두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양동 주공아파트를 등지고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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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면 매산리에 있는 태평미륵 ⓒ 이상기


세 번째 미륵은 죽산면 매산리에 있다. 이 미륵의 공식 명칭은 매산리 석불입상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태평미륵으로 불린다. 태평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넓고 평화로워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미륵이 있는 곳을 사람들은 미륵당 또는 미륵댕이라고 부른다.

이들 미륵 외에 우리는 쌍미륵으로 알려진 기솔리 석불입상과 궁예미륵으로 알려진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을 보려고 했다. 이들은 보개면과 삼죽면의 경계를 이루는 국사봉 중턱에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눈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도 좋지 않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서운산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두 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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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혜소국사비 ⓒ 문화재청


이번 답사의 또 다른 주안점은 안성의 절집 찾기이다. 안성에서 가장 유명한 절은 칠장사, 청룡사, 석남사이다. 칠장사는 칠현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천사백년 고찰이다.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확인할 수는 없고, 고려 초기 혜소국사(慧炤國師: 972-1054)때 크게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칠장사에 있는 혜소국사비(보물 488호)에 따르면 혜소국사 정현(鼎賢)은 광교사를 찾아 충회대사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칠장사 융철스님에게 배우고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혜소국사는 현종5년(1013) 칠장사에 주석하면서 절을 크게 중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궁예가 10살 때까지 이곳 칠장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조선 중기 의적으로 유명한 임꺽정의 스승인 갓바치 스님 역시 이곳에 주석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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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산 청룡사 ⓒ 이상기


안성의 동쪽에 칠현산이 있다면 안성의 서쪽에는 서운산이 있다. 서운산은 547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자락에 수많은 절을 품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절이 산의 남쪽에 있는 청룡사와 동북쪽에 있는 석남사이다. 서운면에 있는 청룡사는 고려말 나옹화상이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푸른 용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청룡사로 바꿨다고 한다.

금광면에 있는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되고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慧居國師: -974)가 중창했다고 한다. 혜거스님은 고려 광종 19년(968)에 국사가 되었다. 이후 석남사는 조선시대까지 거대한 사찰로 그 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석남사는 불교가 배척되던 조선시대에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절로 유명하다.

안성에 있는 또 다른 문화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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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성당으로 알려진 구포동 성당 ⓒ 이상기


안성 시내에서 볼만한 유적으로는 안성성당으로 알려진 구포동 성당이 있다. 1901년 세워져 10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 건물은 1922년 프랑스인 신부 꽁베르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 성당은 보개면 신안리에 있던 동안강당(東安講堂)의 목재와 기와를 가지고 지어졌기 때문에 한옥 기와집 형태를 따르고 있다.

그 후 1955년 전면 입구와 종탑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그래서 앞에서 보면 서양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서까래를 올리고 기와를 얹은 한식 건물이다. 그래서 구포동 성당은 동양식의 한옥과 서양식의 성당 건축이 결합된 절충식 건물이 되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초기 교회 건축을 연구하는 데 아주 귀중한 문화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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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객사 ⓒ 이상기


안성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문화유산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4호인 안성 객사이다. 객사는 두 가지 기능을 하던 건물이다. 하나는 말 그대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이다. 다른 하나는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놓고 궁궐을 향해 절을 올리는 곳이었다.

안성 객사는 원래 시내 관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1932년 명륜여자중학교 내로 옮겨졌다가, 1995년 해체되어 안성시 낙원동 609-1 현재 위치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주심포계 건물이라고 하는데 해체·복원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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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주산성 ⓒ 안성시


그 외 안성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는 죽주산성이 있다. 안성의 주산인 비봉산에 축조된 산성으로 성의 둘레가 1.2㎞이다. 삼국시대 처음 축성되었고 고려시대 크게 중수되었다고 한다. 본성, 내성, 외성의 3곽으로 구성되어 요새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높다.

죽주산성이 있는 죽산은 경기도에서 충주와 청주로 갈라지는 삼거리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죽산은 과거 서울에서 경기도를 지나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이 쌓였고, 고려시대에는 몽골군과, 조선시대에는 왜군과의 격전지가 되었다. 전략적 요충답게 이곳 죽주산성에 오르면 안성 쪽은 물론이고 이천과 장호원 쪽으로 펼쳐진 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안성의 문화유산을 6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안성의 문화유산을 6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미리내 성지 #미륵불 #청룡사 #석남사 #죽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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