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대학생 거부하는 '민자네 기숙사'

외부 자본으로 건립해 입주비 급등... 수익추구 우선, 학생복지 '나 몰라라'

등록 2009.03.11 08:31수정 2009.03.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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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해 완공된 단국대 천안캠퍼스의 민자 기숙사 전경.

지난해 완공된 단국대 천안캠퍼스의 민자 기숙사 전경. ⓒ 단국대 기숙사


a  단국대 천안캠퍼스 민자 기숙사 안에 있는 헬스클럽 전경

단국대 천안캠퍼스 민자 기숙사 안에 있는 헬스클럽 전경 ⓒ 단국대 기숙사


수능을 앞둔 지난해 11월, 수험생들이 자주 찾는 한 입시정보카페에는 단국대 캠퍼스의 새로 지은 기숙사 사진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쾌적한 숙박시설은 물론 편의점·쇼핑·헬스클럽 등의 각종 부대시설까지, 사진 속 기숙사는 웬만한 호텔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최고급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짱이다" (대화명 '야호')
"이게 바로 선진교육!" (대화명 '마이케이')
"내가 갈 곳이 저곳이라니!!" (대화명 '홍돌') 

예비 대학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장차 이런 곳을 보금자리 삼아 누리게 될 캠퍼스 생활을 꿈꾸며 한껏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어서 '열공'하자"는 댓글도 뒤따랐다.

하숙비보다 월등히 높은 기숙사비... 가난한 학생은 엄두도 못내 

a  지난해 완공된 서강대 민자 기숙사 곤자가 국제학사 전경

지난해 완공된 서강대 민자 기숙사 곤자가 국제학사 전경 ⓒ 송주민


a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 아래에 위치한 상업시설 곤자가 플라자 전경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 아래에 위치한 상업시설 곤자가 플라자 전경 ⓒ 송주민


시간은 흘러 2009년 3월. 그토록 바라던 기숙사에 '당당히' 입사해 대학생활을 시작한 09학번 새내기들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밝지 않다. 기숙사 비용이 학교 밖 숙박시설보다 비싸 많은 경제적 부담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 속의 최신식 기숙사는 학교 자체적으로 건립한 시설이 아니었다. 민간자본으로 지은 '민자 기숙사'였다.  

3월 개강과 동시에 서강대 '곤자가 국제학사'에 둥지를 튼 김아무개(20)씨는 "학교 기숙사 비용이 이렇게 비싼 수준인지 미처 몰랐다"면서 "주변에서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친구들보다 더 비싸, 미리 알았으면 입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서강대 민자 기숙사 비용은 한 학기 6개월간 272만원(2인실 기준·식비포함, 보증금 10만원 포함)에 이른다. 기존 기숙사(170만원·4인실)는 물론, 주변 하숙집 비용(180~200만원 안팎·재학생 및 주변 공인중개소 문의 결과)보다 높다. 게다가 1인실을 쓰려면 무려 418만원(식비 포함)을 지불해야 한다. 혼자 사용하는 원룸의 한 학기 월세(240~270만원)보다 비싼 수준이다.  


헤어숍·패밀리레스토랑·택배사무소·문구점 등이 함께 입주해 있는 건국대 '쿨하우스'도 사정은 마찬가지. 기숙사 한 학기(6개월) 비용은 271만원(2인실 기준·식비포함, 1인실은 372만원)에 달하는 반면, 재학생 및 주변 공인중개소 문의 결과 주변 하숙집의 방값은 150~180만원 수준이다. 이 대학 신입생 김아무개(20)씨는 "학업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숙박비 부담까지 가중되니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재학생들의 탄식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부산에서 올라와 현재 서울 신촌부근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한아무개(24·서강대)씨는 "기숙사는 비용이 저렴해 가난한 지방학생이 많이 이용한다는 것은 옛말이 될 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씨는 또 "새 기숙사에는 형편이 어려운 고학생들은 잘 보이지 않고 통학거리가 가까운 수도권 학생들이 상당수 입사해 있다"며 "예전과 다르게 '럭셔리'한 분위기가 나는 곳이 기숙사"라고 말했다.


실제 민자 기숙사를 운영하는 대학에서는 입사기준을 '통학거리에 관계없이 가능'이라고 정하고 있다. 서강대의 경우, 학점을 위주로 합산해 선발하고 원거리 여부는 동점자를 가리는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통학거리·가정형편과는 상관없이 성적이 괜찮으면 우선적으로 뽑는 방침이다. 한씨는 "나 같은 사람은 성적이 된다 해도 형편 때문에 못 들어간다"면서 "학교 기숙사가 나서서 대학생들의 '주거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라고 성토했다.

대학가 수익형 민자사업 확산... 학생들 부담은 급증

a  지난 2006년, 대학 최초로 민자 유치를 통해 건립된 건국대 '쿨하우스' 전경

지난 2006년, 대학 최초로 민자 유치를 통해 건립된 건국대 '쿨하우스' 전경 ⓒ 건국대 쿨하우스


가난한 지방학생들의 희망이던 기숙사 비용이 높게 책정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학들이 기숙사 건립 및 운영을 민간자본에 위탁해 수익형 민자사업(BTO) 형태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BTO는 민간에서 시설을 건립한 후, 소유권은 대학에 넘기고 운영권은 일정 기간 보유하면서 수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서강대 기숙사 건립에 368억 원을 투자한 산은자산운용은 20년간 기숙사를 운영하면서 해마다 7.2%의 수익을 보장받는다.

대학 측은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재무구조 속에서 비용부담 없이 기숙사 신설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민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황희성 건국대 '쿨하우스' 주임은 "자체적인 자금이 부족해 기숙사를 못 짓는 상황에서 민간자본을 이용하는 것은 효과적인 타개책"이라며 "학교 주변의 자취·하숙집보다 비용은 비쌀 수 있으나 시설이 좋고 거리가 가까워 학생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대학과의 BTO 합작은 민간 투자자들도 선호하는 사업이다. 안전하게 정해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점, 세금면제혜택이 있는 공공시설이라는 점 등 '군침 도는' 이득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과 민간자본의 '윈윈' 전략에 따라 앞으로도 민자 기숙사 건립은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 현재 건국대, 고려대, 단국대, 명지대, 서강대 등이 민자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0년엔 총 10여 개 사립대학이 민자 기숙사를 운영하게 된다.

"학생 주머니 털어 최신식 건물 짓는 셈... 인허가 기준 강화 필요"

a  명지대 서울캠퍼스에 위치한 민자 기숙사 전경

명지대 서울캠퍼스에 위치한 민자 기숙사 전경 ⓒ 송주민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부담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민자 기숙사는 투자자에게 약정한 수익률을 보장해야 하므로 항상 일정 정도의 수익을 내야 한다. 기숙사 운영 기조는 '수익 창출'로 변경되고, 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숙식비 증가로 이어진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은 "결과적으로 학생들 부담만을 통해 최신식 건물을 짓는 상황이 된 셈"이라며 "대학과 재단이 지녀야 할 본연의 공공성을 외면한 채, 오로지 학생들 주머니로 진행하는 BTO 사업은 학생 복지시설이라는 기숙사 설립 목적과도 배치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대학 재단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삼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모든 과정을 민간에 맡길게 아니라 대학에서도 적립금 등의 여유재정을 투입해 학생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근본적으로는 캠퍼스 내에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자 사업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의 인허가 기준을 강화해 시설 투자가 공적으로 활용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자 기숙사 #BTO #대학 기숙사 #서강대 #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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