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심우정사의 풍경.
안병기
산길을 내려오면서 난 '겨울에 눈 내렸을 적에 다시 한 번 다녀가리라' 생각했다. 그것을
겨울이 다 지난 이제서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동학사를 지나서 은선폭포를 향해 올라간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삼우정사로 가는길이 나온다. 꽤나 가파른 길이다. 언제부터 내렸던 것일까. 봄눈치고는 꽤 많은 양이 쌓여 있다. 눈에 덮힌 산길은 종적이 묘연하다. 아무도 밟지않은 눈길의 깊이를 가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눈속에 푹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산등성이를 올라간다.
산 기슭 나무들은 저마다 제 가지에 눈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 겨울나무가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인 셈이다. 눈은 나무에겐 삶의 무게지만 내겐 앞으로 나아감을 방해하는 심대한 장애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스런 장애물이다. 겨울 눈길은 은연중 나처럼 어리석은 중생에게 장애물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게 한다. 눈의 거추장스러움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내리는 눈이여, 나의 발목을 더 깊이 빠지게 하라.
마침내 심우정사에 도착했다. 심우정사란 선가에서 마음을 찾는 일, 진리를 구하는 일을 소를 찾는 일(尋牛)에다 비유한데서 비롯한 이름일 터. 절집 외벽에 에서 흔히 볼 있는 십우도는 바로 소를 찾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말하자면 심우정사란 마음을 찾는 사람이 수행하는 암자라는 뜻이다.
심우정사는 40여 년 전쯤 세워졌으며 목초스님이 주석하신 것은 80년대초부터였다. 이곳에서 세속과 단절한 채 초연하게 살던 목초스님은 1997년경 입적하셨다고 전한다.
눈 내리는 심우정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휴정 사명대사의 제자인 소요 태능이 지은《소요집》에 들어 있는 게송 한 편이 떠오른다. 태능(1562~1649)은 13세에 백양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후에 묘향산의 휴정 서사대사의 문하에 들어 선을 깨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군에 가담하여 싸우기도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지리산 연곡사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소요 태능스님은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두고서도 마음을 찾아 고행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이렇게 경계한다.
可笑騎牛子(가소기우자) 가소롭구나. 소를 탄 자여 騏牛更覓牛(기우갱멱우) 소를 타고서 다시 소를 찾는구나. 斫來無影樹(작래무영수)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銷盡海中漚 (소진해중구) 저 바다의 거품을 다 태워버리라소를 타고서 소를 찾다니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소요 태능스님은 그 행위가 얼마나 우스운지 비유를 들어 말한다. 그림자 없는 나무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무다. 토끼의 뿔 · 거북의 털처럼. 그런 나무를 베어다가 그 나무로 불을 때서 바다의 물거품을 다 태워버리겠다는 일만큼이나 황당하하기 짝이 없도다. 아서라, 세상 사람들이여. 한사코 멀리 찾으려 하지 마라. 참된 마음이란 늘 가까이 있느니.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아름다운 게송이다.
쌓인 눈의 깊이만큼 적막은 무게를 더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