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호흡함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두 분을 보내며

등록 2009.03.18 16:53수정 2009.03.18 17:4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弓山(활뫼) 교회 7년여 손수 흙과 자연물을 활용하여 형이 만든 전원 교회당의 오월 모습.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머물렀던 형수님은 그렇게 흙속으로 돌아갔다.
弓山(활뫼) 교회7년여 손수 흙과 자연물을 활용하여 형이 만든 전원 교회당의 오월 모습.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머물렀던 형수님은 그렇게 흙속으로 돌아갔다.박종훈
▲ 弓山(활뫼) 교회 7년여 손수 흙과 자연물을 활용하여 형이 만든 전원 교회당의 오월 모습.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머물렀던 형수님은 그렇게 흙속으로 돌아갔다. ⓒ 박종훈

 

"어느 사람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사람과 같이 나눈 시간과 똑같은 상황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 법이거든. 그러니 우리는 살아 있어 같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관계에 충실해야 하는 것 같아."

 

친형과 오래전 나눈 대화중의 한 부분이다.

 

10여일 전 형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형수님이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우리 형제는 4남매로 내가 둘째이고 형은 고창 선운산 뒷산께 활 모양을 닮은 저수지 마을 궁산(弓山)교회에서 목회자로, 동생은 경기 이천의 공무원으로, 여동생은 분당에서 각각 삶의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형수는 형보다 1살 연상인, 우리 나이로 올해 쉰 살이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중 뇌를 자극한 그 신경이 다리로 가서 소아마비처럼 하반신 사용이 성치 않았는데 복지시설에서 근무하던 중 형을 만나 내게는 생질인 3명의 자녀를 남겼다. 형수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 한 이유는, 병력이 깊은 사람들이 대체로 여러 합병증이 생기는 것처럼 직접적으로는 폐렴에 의한 것이었다.

 

큰 조카녀석은 나와 페루 살이를 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 실패한 유학처럼 중도에 가방을 쌌던 이유 중 하나가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 소망 탓인지 녀석만이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막내 남자아이는 중학교 3학년생이고 중간 여식은 엄마의 오빠인 외삼촌이 교장으로 있는 지역 고교에 재학중인 고3 수험생이다. 거기에다 장남 조카 녀석마저 여기에서도 채 고교과정을 끝내지 못했고 작년 시험 후 아직 통과하지 못한 과목의 4월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으니 공교롭게도 집안에 입시생들만 놔두고 엄마가 먼저 떠난 것이다.

 

2년 전부터 병세가 더 심해져 '만약에'라는 생각을 했다지만 막상 현실 앞에서 가족의 이름으로 버겁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칠레 국경을 넘다가 동생의 쪽지를 받고 알게 되었는데 조카들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빨리 데리고 가신거야'라는 위로의 말과 기도 밖에는 이역만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 하나는, 호흡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체감하면서 진정 삶을 누리고 감사히 사는 것과는 상당한 간격이 있음을 수시로 발견한다.

 

최근 나는 형수의 부르심과 별개로 한 달 전 한 내가 운영하는 카페의 한 회원에게 짤막한 쪽지를 받게 되었다. 혼자 살다 보니 오다가다 내 집에 들른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 우리 집에서 한 달여 머무르다 떠난 자전거여행자가 출발 후 바로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의 근황을 묻는 쪽지를 보낸 사람이었다.

 

회원정보를 보니 62세로 되어 있고 가족은 아니고 여행에 관심 많은 열정있는 어른쯤으로 막연히 짐작해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보냈다. 그 후 쪽지가 짤막하게 두어 번 오갔지만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 몰랐는데 올 2월에 받은 메시지를 통해 그분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 길을 떠나며 보내는 진정 어린 임종자의 당부였던 그 쪽지를 이제는 공개해도 될 것 같아 조심스레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앞으로도 살아 있음이 버겁다는 사치성 관념이 맴돌 때 다시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글 잘 보았읍니다.

불행하게도 제게 컾퓨터를 볼수 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동안 췌장암 말기로 투병 생활을 해왔었는데....

몇일 밖에 생이 남지 았았군요. 힘이 너무 없어요.

건강하면 꼭! 유유니.마츄 피츄를 가보고 싶었는데....

아마 이글 이 마지막 글이 됄듯 하네요

우물님이 너무 너무 부럽읍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몸 관리 잘 하세요.

저같이 지닌날 몸관리 못 하여 건강이 제일이란

알아두 소영 없으니 돈 소영 없어요.

살아 잠시 쓰다 가는거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믾지만 힘이 들어 이만 줄으렵니다.건강 하세요.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개인적으로 속한 카페 블로그에 동시에 글을 올리고 있다.

2009.03.18 16:5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와 개인적으로 속한 카페 블로그에 동시에 글을 올리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마추피추 #유우니 염호 #건강이 제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쌍방울 법인카드는 구속된 김성태를 따라다녔다
  2. 2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엄마 아닌 여자, 돌싱 순자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3. 3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단독] 홍준표 측근, 미래한국연구소에 1억 빌려줘 "전화비 없다고 해서"
  4. 4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윤석열 퇴진' 학생들 대자보, 10분 뒤 벌어진 일
  5. 5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고3 엄마가 수능 날까지 '입단속' 하는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