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절차진행에 관한 견해 개진은 자연스러운 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내부통신망에 글 올려... 일부 판사 "절차 진행에 관한 견해 아니다" 반박

등록 2009.03.19 09:13수정 2009.03.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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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불명예를 안은 신영철 대법관이 거취 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 중견 법관이 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들에 관해 자신의 절차진행에 관한 견해를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법시험 27회로 올해로 법관생활 21년차인 서울중앙지법 정진경 부장판사는 18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린 '최근의 사건에 관한 소견'이라는 글에서 먼저 "신 대법관의 행위가 다소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신 대법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고 전제했다.

 

정 부장판사는 "사건의 실체에 관한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의 문제는 재판권에 속하는 것임이 명백하지만 사건의 절차에 관한 문제는 재판권과 사법행정이 교차하는 영역일 수밖에 없다"며 "법원 전체의 신뢰를 생각해야 하는 법원장이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들에 관해 자신의 절차진행에 관한 견해를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절차에 관한 문제도 실체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여하튼 법원장의 절차에 관한 의견 제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 대법관의 거듭된 의견개진을 문제 삼는 가장 큰 이유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과거 법원장이 정치권력의 주문을 그대로 재판부에 전달했던 시기와는 현저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 정치권력 주문 전달하던 시기와 달라"

 

"최근의 사건은 법조선배로서 경험이 앞서는 법원장이 법관으로서의 자신의 견해를 후배들에게 제시한 것으로서 문제의 본질은 법관의 독립에 대한 침해라기보다는 사법관료화와 의사소통의 부재"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법원장은 단독판사에 비해 경험이나 연륜에 있어 앞선 법관이고 사법행정의 담당자로서 개개의 재판장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경험이 부족한 재판장의 입장에서 이러한 법원장의 의견 제시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조언"이라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다만 "법원장의 의견제시가 경청할 가치가 있는 조언이기는 해도 재판장의 의견과 다른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이와 같이 재판권과 사법행정권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사법행정은 재판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법행정이 후퇴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장은 법원장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한 후 그에 따르는 것이 자신의 법적 양심에 반한다고 생각한다면 법원장에게 정중하지만 정확하고도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하기가 어렵다면 동료들과 의논해 함께 찾아가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며 "그럼에도 법원장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면 판사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타인의 권리침해를 구제해야 하는 판사들이 법원 내부의 절차를 생략한 채 외부의 언론기관에 제보해 여론의 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며 "비록 효과적이고 손쉬운 방법이긴 해도 법관의 독립을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한 판사들을 비판했다.

 

또한 "최근의 사건을 계기로 가뜩이나 부족한 사법행정권자와 재판장들의 의견교환이 아예 단절되고 재판장의 재판이 독단에 흐를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비록 성가시고 다소의 압력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법원 내부에서 재판진행과 관련한 이견을 듣고 이를 충분히 소화해 재판에 반영하는 것은 신뢰받는 재판을 함에 있어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정 부장판사는 "판사의 거취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며 판사들이 다른 판사에 대한 사퇴를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판사는 어떤 경우라도 다른 판사에 대해 사직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며 "판사가 법관의 독립을 이유로 법원장을 공격하면서, 그 판사의 헌법상 신분보장을 침해하는 언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된 행동"이라며 신 대법관에 대한 사퇴 목소리를 경계했다.

 

아울러 "현재까지 판사가 너무 쉽게 사직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판사의 사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오늘 여론의 압박이 있다하여 이에 굴복해 대법관이 사직한다면 내일 또 다른 여론에 의해 다른 대법관이 공격받고 사직하게 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정영진 부장판사 "신 대법관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야"

 

이에 대해 다른 판사들은 신 대법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반박하며, 정 부장판사의 글에 대해 "법적 해결보다는 온정해결을 제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 대법관의 사퇴를 줄곧 주장해 왔던 서울서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집시법 조문의 위헌여부를 다투지 않고, 결과가 신병과도 관계없다면,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십사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라고 한 것이 단순히 절차 진행에 관한 견해이거나 법조선배로서의 의견제시입니까?"라고 반박했다.

 

특히 "간담회나 회식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담당 재판장의 휴대전화로까지 전화를 걸어 민감한 시국사건에 대한 보석에 대해 언급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의견제시도 한 번이 아니라 짧은 기간 동안에 집요하게 반복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법조선배로서의 견해를 제시하는데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을 왜 거론하는가요?"라고 따져 물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그 동안 어느 법원장이 이런 식으로 했습니까?"라며 "신 대법관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신 대법관은) 법정형이 징역 1년 이상의 청문회 위증이 문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이 법인지 선언하는 기관인 사법부답게 법리적 주장들이 펼쳐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창국 판사 "사법부가 정치판 꼭두각시 된 느낌"

 

수원지법 안산지원 정창국 판사도 "신 대법관님이 일반사건 전부에 대해 빨리 처리하라고 했다면 사법행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정사건을 지목해 빨리 처리하라고 한 것은 사법행정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정진경 부장판사의 '판사회의'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판사가 판사회의를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서울중앙법원 같은 거대한 법원은 더욱 그렇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다.

 

정 판사는 "물론 신 대법관의 경륜은 무시할 수 없으나 신 대법관의 경륜에 따라 한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라며 "요즘 사법부가 정치판의 꼭두각시가 된 느낌"라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국회의원은 정치판사라고 비난까지 하고, 게다가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는 청와대에서 결정한다는 신문기사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 문제의 해결책은 신 대법관이 알고 스스로 결정하길 바랄 뿐"이라고 사실상 사퇴를 촉구했다.

 

아울러 "'이 정도 가지고 뭘...' 한다면 그것은 선례가 돼 또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09.03.19 09:1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로이슈 #정진경 #정영진 #정창국 #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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