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같이 추운 학교, 불황이 준 선물?

[해외리포트] 난방온도 급감한 미국학교의 생존법

등록 2009.03.21 09:45수정 2009.03.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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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에서 발행되는 17일자 <데일리뉴스 레코드>에 우울한 도표 하나가 실렸다. 미국의 실업률과 마찬가지로 해리슨버그의 실업률도 점점 오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실업률은 1월 현재 8.5%를 기록했고 실업자 수는 1300만9천 명에 이르렀다. 해리슨버그 실업률은 작년 1월(2.9%)보다 두 배 증가한 6%, 인근 페이지 카운티는 두 자릿수인 13.8%를 기록했다.

이처럼 실업률이 오르고 물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로 내려가고 있는 것도 있다. 바로 난방 온도다. 

실업률은 오르고 학교 난방 온도는 내려가고

 "학교가 너무 추워서 마치 얼음 덩어리 속에 있는 것 같아요." <뉴스스트릭>에 실린 만평.

"학교가 너무 추워서 마치 얼음 덩어리 속에 있는 것 같아요." <뉴스스트릭>에 실린 만평. ⓒ 비비안 테헤다

"학교가 너무 추워요. 마치 얼음 덩어리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HHS) 신문인 <뉴스스트릭>에 실린 재미있는 만평이다. 학교가 차가운 얼음 덩어리 속에 완전히 들어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이 학교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교실의 난방 온도. 교실마다 온도 차이가 심하다는데 제일 따뜻한 곳은 컴퓨터실이다. 항상 컴퓨터가 켜져 있기 때문이다. 또 인기가 많은 교사들의 교실도 따뜻하다.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학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의 교실로 찾아가기 때문에 수강생이 많은 인기 교사의 교실은 학생들로 북적댄다. 반면 너른 주차장과 마주하고 있는 창이 넓은 음악실은 시베리아를 방불케 한다.


도대체 얼마나 춥기에 학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이 학교의 서브코 교감은 기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실내온도는 65℉(18℃), 또는 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교실은 65℉(18℃), 또는 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온도가 너무 낮다고 느껴지면 곧 바로 온도를 측정하게 된다. 65도가 안 되는 교실은 관리실에 그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요청할 수 있다. 방과 후나 주말은 55℉(13℃) 이하로 해 둔다. 이렇게 해서 적잖은 난방비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45℉(7℃)밖에 안 될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학교신문이 뽑은 최악의 소식에서는 '추운 학교'가 은메달을 받기도 했다(금메달의 불명예는 자신의 여자 친구인 팝가수 리하나를 폭행한 가수 겸 영화배우 크리스 브라운이 안았다).

그런데 학교가 왜 그리 춥냐고? 짐작했겠지만 바로 돈 때문이다. 시 교육청에서 모든 학교에 대해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는 교육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18일자 신문에는 이번 가을에 시작되는 새 학년(2009-2010)에 16개의 학교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소식도 나왔다. 물론 전반적인 경제 불황 탓에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추운 것도 바로 이러한 경비절감을 위해서다. 이는 경제위기 직전까지 에너지를 펑펑 써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때문인지 학생들이나 지역사회에서는 다소 불편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분위기다.

 도서실도 추워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도서실

도서실도 추워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도서실 ⓒ 한나영


겨울엔 덥고 여름엔 추웠던 미국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미국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에 대해 의아해 한 적이 많았다. 왜냐하면 추운 겨울엔 더워서 죽을 지경이고 더운 여름엔 추워서 죽을 지경이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여름에는 긴팔 옷을 챙겨 가야 했고 겨울에는 안에 얇은 반팔 옷을 입고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추워서 덜덜 떨거나 더워서 땀을 뻘뻘 흘려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나 관공서 등 공공건물에서의 에어컨과 히터 사용은 거의 무제한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나 관공서에서 예전처럼 반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겨울에도 항상 따뜻하게(덥게) 지냈던 학생들이 올해 처음 겪는 추위에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까. <뉴스스트릭>은 학생들에게 '교실 맹추위 대처법'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HHS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 5가지

1.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따뜻하게 입어라. 티셔츠만 입고 몸이 오그라든다고 불평하지 말고 최소한 후드티는 입고 귀여운 스카프까지 동여라. 또, 층층으로 옷을 껴입어라.
2. 주머니에 핸드워머(1회용 손난로)를 갖고 다녀라. 핸드워머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풋볼경기를 관람할 때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도 추우니까 차가운 열 손가락을 덥히는 데는 이것이 최고다.
3. 발을 잘 감싸줄 두툼한 양말과 부츠를 신어라.
4. 망토처럼 오리털 담요라도 덮고 다녀라.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효과는 만점.
5. 주머니 속에 장갑을 갖고 다녀라. 복도를 다닐 때는 끼지 말고(허용이 안 되니까) 교실에서는 끼어도 괜찮다.

 HHS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 5가지

HHS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 5가지 ⓒ 한나영


'난방비 절약 경험'은 불황이 가져다 준 선물?

미국인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불황 체감온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불황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뉴스스트릭>에 실린 내용이다. 

"학생들은 춥지만 학교 당국은 돈을 절약하고 있다. (중략)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돈을 절약했다. 작년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우리 학교는 7500달러 이상을 절약했다. 시 전체의 학교들을 따져본다면 이미 2만2000 달러 이상을 절약했다. 그러므로 추운 학교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실천은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다. 중앙 정부에서도 난방비를 줄이겠다고 하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고통 받고 있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팔에 닭살이 돋을 만큼 추워 죽겠다고 쉽게 불평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당국이 많은 돈을 절약하여 그 예산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난방비 절약은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추위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불평하지 말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학교에 와라."

시련이 사람을 철들게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 불황도 이들에게는 큰 시련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려운 경제 가운데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어려움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a  이곳은 지난 3월초 눈때문에 휴교를 하기도 했다.

이곳은 지난 3월초 눈때문에 휴교를 하기도 했다. ⓒ 한나영


#미국 불황 #학교 난방온도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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