벱부에서 만난 지옥과 천국의 차이는?

일본 큐슈로의 나홀로 기차여행 5

등록 2009.03.27 09:25수정 2009.04.0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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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아침 7시 이 시각의 아소산은 어떨까요?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그야말로 고요하고 신선합니다. 삐리리리 새소리가 간혹 들릴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지 나뭇가지에 녹지 않고 쌓여있던 눈들이 푸르르르 주위로 흩날립니다.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감사함으로 뭉클해집니다.

 

 돌아 내려오는 길에 도예공방이 보입니다. 공방의 야마시타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하고 싶어졌어요. 배낭은 유스호스텔에 맡겨진 상태라 제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럴 때 선물이 하고 싶어지다니. '그럼 어떻게 하나?'

 

  조릿대를 꺾고 억새를 꺾고 이름 모를 노랑 풀꽃들을 꺾어 그럭저럭 꽃 한 다발을 만들었습니다. 공방의 작업실 문이 쉽게 열리고, 그러나 텅 비어있네요. 아마 안채에서 곤한 잠에 빠져있을 테지요. 작업대 위 화병에 꽃다발을 꽂고 간단한 메시지를 쓴 종이쪽지를 억새사이에 끼워두었습니다.

 

      Thank you so much!

    Coffee, Time with you, and your Spirit of Art

    Your kindness for a stranger!

 

               From a Korean

 

 9시 43분 벱부행 큐슈 횡단 특급열차를 탔습니다. 일본여행이 이렇게 편할 줄 몰랐어요. 일본어에 무지한 초짜인데도 말이에요. 닮은 문화권이어서 일까요? 사실 요 며칠 겪은 경험이 전부입니다만, 일본인들의 친절과 책임감이 큰 몫을 했었던 거 같아요.

 

 우선, 일본인들의 친절 의식이 제 예상 밖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물어보잖아요. 그럼, 일단 멈춰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거예요. 그럴 때 제 느낌이란, 저는 누군가에게 미안한 존재가 아니라, 뭔가 잘못 하고 있는 불안한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된다는 느낌이었어요.

 

  '이해관계를 떠난 순수한 배려와 친절의 중요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뭣보다 '배려와 친절'이란 인간 사이의 갈등을 줄여주고 우리들 마음의 이기심을 잠재워주는 거 같아요. 이기심이 혼자 날뛸 땐, 이상하게도 자신의 존재감을 과장된 몸짓이나 큰 목소리, 치장된 겉모습으로 대신하게 되고요. 어느새 경쟁의 노예가 되고 말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요. 이 곳 일본사람들은 자신이 베푼 친절이란 돌고 돌아 자기 자신에게 친절로 되돌아온다는 걸 잘 아는 거 같아요. 결국 베푸는 마음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도요. 네, 그런 인식이 널리 퍼져 친절과 배려의 미덕이 실제 생활에서 지켜지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즈니스계에서의 일본인들의 친절엔 분명 계산된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떠난 자연인으로서 그들에게 부러울 정도의 친절이 몸에 배어있는 거 같았어요. 

 

  그리고, 일본인들의 일에 대한 책임감! 놀랍습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일' 혹은 '역할'과 완전 동일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특히나 일본여행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해요. 예를 들어, 기차역에서 표를 구할 때마다 매우 기분 좋게 끝나곤 했는데요. 이것 저것 물어보고 확인하는데도 저를 귀찮아하는 무표정한 표정의 역무원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구요. 그리고, 뒷사람들에게서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서 좋았어요. 이들 역무원들도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더군요. 가끔 철도원들과 상인들, 그냥 거리의 노무자들에게서도 주변에 무언의 고요를 볼 때가 가끔 있었어요. 그 고요는 이들이 삶에서 속도전을 치르지 않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그건 삶의 안과 밖이 균형을 이루는 듯한 느낌일 거에요.

 

  벱부역에 도착했습니다. 벱부는 온천욕과 화산에 의해 형성된 뜨거운 물웅덩이인 7군데의 지옥순례로 이름난 관광지라 합니다. 역무원 아주머니가 한국인 뺨치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시네요! 한국어를 재밌게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하세요. 이곳 벱부 뿐 아니라 아마도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오나보죠? 큐슈 관광지 마다 한국어 안내판이 간혹 눈에 띄던데요. 아무튼, 저겐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벱부에서 지옥순례를 할까 말까?' 지옥을 차례로 순례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요. 다만 살짝 호기심만 만족시킬 만큼 만 엿보고 지나기로 했습니다. 여러개의 지옥 중 海지옥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데요. 버스를 타고 바로 해지옥으로 향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왜 지옥이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티켓을 끊고 들어가니 연못이 있는 정원이 나오네요. 연못 위에 연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정원 사이를 지나 다다른 곳은 특산품 판매장인데요. 판매장 저쪽 끝에 해지옥으로 통하는 문이 있네요.  

 

  해지옥은 화산유황냄새로 접근을 방해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만만치 않더군요! 이 날따라 바람이 세찬지라 검은 바위틈마다 땅 밑 불덩어리를 헤집고 거대한 수증기구름들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솟구쳐 올라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말더군요. 대단해요! 유난하게 불어대는 바람이 수증기구름과 전쟁을 대판 일으키는 형국이더라구요. 아우성 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옥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아하니 싸우는 것이 아닌 것 같지 뭐예요. 오히려 난장판을 치며 서로 엉켜 붙어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는 거 같은거예요. 그러다가 순식간에 거대한 수증기떼가 제게로 달려왔습니다. 흰구름이 사방에 깔려 저를 삼켜버리고 그 안게 갇히는 순간 이상하게도 제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네, 구름 타고 떠가는 듯했지요. 그 순간 지옥이 천국으로 변한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똑바로 마주하며 즐겼어요.

 

 잠시 바람이 잠잠해지고 조용한 틈에 온천수의 빛깔이 드러났어요. 그 물빛이 참 고았어요. 밝고 고은 파란 바닷물빛! 해지옥은 아름다운 속살을 가졌더라구요. 지옥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주변엔 일본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순례를 하고있네요. 겨우 한 분과 말문을 텄습니다.

 

  "이곳이 왜 지옥이란 이름이 붙여졌나요?"

  "글쎄요. 지옥불 같은 이미지 때문인거 같은데요..."

  "네..그렇군요..."

  "그런데, 일본은 화산폭발과 지진이라는 자연의 재앙으로 인해, 솔직히 자연을 은혜로운 존재이상으로 여겨왔어요. 오랫동안 경계의 대상이었지요. 지옥이란 어쩌면 자연 앞에서 겸손함을 잊지말자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네....그런데도 이렇게 관광지로도 잘 이용하는 거 같네요..ㅋ"

  "하하하...하이! 저희 일본인들도 이곳 벱부는 가보고싶은 관광지입니다..."

 

 오랫동안 바짝 다가가 난간을 붙잡고 서있었습니다. 유황냄새만 아니었으면 더 오래 있었을 거예요. 

  뜨거운 온천수안에 바구니를 담궈 바로 삶아낸 달걀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세 알을 사서 까먹으며 걸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왼쪽에 족탕안내판이 보입니다. 잘됐다 싶었어요. 한가롭고 아늑한 곳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물위에 레몬과 멜론 크기의 레몬빛 과일(?)들이 잔뜩 둥둥 떠있네요. 레몬 하나를 건져 냄새를 맡아봅니다. 좋군요.

 

  술술 양말이 벗겨지더군요. 발을 담군 체 모자를 코끝까지 푹 눌러쓰고 잠시 눈을 감고 이 공간을 느껴보기로 했습니다. 슬슬 잠이 오는 것도 같았죠. 비몽사몽 상태입니다. 어? '우리말이잖어?' 가까이에서 들려오네요.

 

 "아 뜨거!" "움직이니까 더 뜨거!" "발이 익어버릴 거 같아." "저 여자 편안해 보이네. 우리도 좀 앉아보자." "뭐야. 좀 첨벙대지 좀 마!"

 

'여기가 어디지? 일본이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잠을 잔 거 같아요. 향긋한 레몬향과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평화로운 한바탕 꿈을 꾼거지요.

 

  해지옥 출구를 향해 걷는 데 오른편에 음식점이 하나 보입니다. '극락 만두'라고 써 있네요.ㅋㅋ 지옥을 무사히 빠져나오니 모든 것이 극락왕생에 이르는 길인 것만 같습니다.

 

  벱부에서 오이타로 이동하자마자 바로 5시 50분 특급으로 유후인 가는 특급 열차를 탔습니다. 지정석 칸인데요. 승객이 저 이외 아무도 없습니다. '제 생애 최고의 특급열차'를 독채로 빌려 타는 기분이던걸요.^^:

 

 잠시 후 승무원이 표 검사로 제게 다가옵니다. 패스를 보여주고 지정석표를 건네주었습니다. "하이~"하고 깍듯이 인사하고 사라집니다. 자리를 뒤로 제끼고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1시간은 이대로 달릴 것입니다. 창밖에 차츰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어요.

2009.03.27 09:25ⓒ 2009 OhmyNews
#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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