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매력을 가진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겉만 보면 분명 사랑싸움 이야기다.
엔디피케이
지난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봤다. 결론은 명불허전. 막이 내렸어도 며칠 동안 내 입가에 되뇌는 꼽추 콰지모도의 서정적인 음악은 사랑의 비애를 반추하게 했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나 권력이 아닌 결국 사랑이라는 메시지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이 뮤지컬은 소설 속 인물과 갈등 구조를 그대로 담아냈다. 당시의 낭만주의 성향이 대중공연인 뮤지컬에도 진하게 반영되었는데 감미로운 노래와 프랑스적인 예술 감각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수작이다.
스토리는 평이하지 않지만 공연은 이를 쉽게 풀어냈기에 이해하기 쉽다. 심각한 남녀관계의 대명사인 삼각관계를 넘어 사각관계가 주된 갈등구조이지만 그 속에는 당시 프랑스 계급사회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어 가볍게 넘길 작품은 아니다.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16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두고 노트르담 대성당 주교 프롤로, 파리시의 근위대장 페뷔스, 꼽추 콰지모도가 각축(?)을 벌인다. 겉만 보면 분명 사랑싸움 이야기다.
나는 설익기 쉬운 '사랑'을 전 인류적인 공통분모로 승화시킨 빅토르 위고의 문학성에 감탄했다. 종교권력을 대표하는 프롤로,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페뷔스, 프랑스 민중계층의 대변자 콰지모도와 집시들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 직전 계급사회의 모순과 삼부회의 갈등을 보여준다. 어디에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평등·박애의 상징이리라.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것은 자유이며, 남과 나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에 있다는 진리가 뭉클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에스메랄다를 소유하려는 프롤로와 페뷔스의 욕망은 여자를 소유하려는 수컷의 본능으로 한정시킬 수 없었다. 인간 갈등의 시초는 자유를 구속하고 억제하려는 시도와 권력욕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 현대에도 감동을 주는 것은 왜일까. 이미 인간 역사에서 계급 사회는 고대 유물로 취급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빅토르 위고가 품었던 문제의식이 현재에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매우 불길하지만.
시대를 꿰뚫는 고전에 비친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