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렇게 철없는 딸이었을까?

가족관계에서도 소통을 위한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등록 2009.04.02 17:19수정 2009.04.0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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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사-출근은 예전 집에서 하고 퇴근은 새집으로 한다고?

 

28일날  이사를 했다. 포장이사라 크게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딸아이는 봉사활동 간다고 하길래 다녀오라고 했다.

 

아침 8시가 되어 이삿짐센터 차가 왔다. 포장이사는 처음이다. 와서 다 해준다니까 크게 신경쓸게 없을 것 같아서 귀중품과 잃어버리기 쉬운 몇가지 물건들만 차에 챙겨서 넣어 놓았다. 집도 작은데 일하는 사람이 여럿이라 걸리적거리는 것 같아 가방 메고 왔다갔다 하는데 춥다.

 

전날 저녁 잠도 부족한 김에 차에서 좀 쉬었다. 잔금 치르는라 양쪽 부동산(빼는 쪽과 입주하는 쪽)으로 뛰었다. 가끔씩 버릴 건지 가져갈 건지 묻는 말에 대답해주랴, 게다가 가구 들이느라 짐 정리하고 짐 놔야 할 위치을 묻는 말에 대답해주랴, 하루가 고단했다.

 

딸아이는 점심무렵에 들어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짐 다 부려서 대충 정리해놓고 그들은 떠나고 식구들만 남았다. 아들녀석까지 학원에서 돌아와 저녁 먹으러 나가쟀더니 싫단다. 세 식구만 저녁을 먹고 아들녀석은 결국 포장해다 바쳤다.(?)

 

딸은 자기방 가구가 싼티 난다는 둥, 가구가 약하다는 둥, 수납 공간이 적다는 둥, 풀바른 도배를 시키면 싸다는 둥, 혼자서도 도배가 가능하다는 둥... 춥다는 소리는 입에 달고 있고, 피곤하시기까지 하단다.  이사하는 집에 난방 틀어놓고 할까? 추운거 당연하지.

 

제 어미는 돈구하느라 마음고생하고 추운데서 동동거리고, 이삿짐센터, 가구점, 관리비 정산, 도시가스, 한전, 전화국 등등 교통정리 하느라 지쳤다. 예전처럼 포장이사 아닌 일반이사였다면 아마 까무러쳤을 것이다.

 

이사 후 철없는 식구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하고 싶고, 궁금한 것 쏟아내느라 바쁘다. 결국 저녁에 내 언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맘에 안들면 너희들 다 나가! 독립해. 그리고 이사를 네가 했니? 네가 뭐가 피곤해? 추우면 옷 걸쳐 입으면 되지!"

"엄마 자꾸 말 시키지마. 필요한 거 있으면 네가 집안 한바퀴 돌아보고 찾아봐. 엄마는 이 집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니? 나도 오늘 이사 와서 물건이 어딨는지 모르긴 매 한가지야" "너 그렇게 잔소리하지 말고 너 잘하는 노래나 한자락 해봐. 그러면 엄마가 즐거워지고 덜 피곤할 것 같애"

 

"아들 너도 마찬가지야. 네 방 정리는 네가 해야지. 앉아서 게임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  책상 위치는 맘에 안들면 바꾸면 되지. 그게 짜증낼 일이야? 이제 나이가 스물씩이나 됐으면 스스로 판단해서 일을 해나가야지. 정리가 안되어 있다고 공부할 맘 안난다고 게임하고 있을 일이니?"


"아직도 네가 어린 줄 알아? 네 일을 남한테 핑계대고 미루면 되냐고?
일단 이 집이 맘에 안들면 다 나가. 엄마 혼자 살아도 돼. 그리고 너희들도 이제 성인이라 돈도 벌 수 있고 독립할 수 있어. 얼마든지 알아서 하라고!"

 

저녁에 피곤하고 힘들어도 말 안하고 있었는데, 결국 저녁먹고 나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나니 식구들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식구들을 통해 돌아가신 친정엄마한테 나는 어떤 딸이었는지 반추해본다

 

가슴 한켠에서 또 다른 생각이 피어 올랐다. 10여 년도 더 지난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늦둥이로 태어나 귀여움 많이 받고 자랐다. 부모님은 당신들 생전에 나를 결혼시킬 수 있는지를 평생 걱정하셨었다. 다행이 결혼하는 걸 보시고 외손주까지 10년 가까이 키워주시다 돌아가셨다.

 

나도 엄마한테 이렇게 속썩였을까?

나름대로는 엄마 속 안썩이고 잘 컸고, 공부걱정 안시키고 대학 잘 갔고, 취직해서 밥벌이 잘 해서,엄마 걱정 안시키고 잘 살았다고 자부했었다. 물론 맘에 안차는 결혼을 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음 편하게 해드리진 못했지만.

 

자랄 때 그런 소리는 들었던 것 같다. 가끔 고집세우고 내주장 안꺾을 땐 "너 하고 똑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야 혀."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생각나면 하고 우선은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부터 피력해야만 하는, 이기적인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성숙이 덜 된 거라고 봐야하나? 자기 궁금한건 못참는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그렇게(딸처럼) 상대방 생각 안하고 내 입장만 그렇게 내세웠었나? 난 주변사람들이 나한테 신경쓰는거 싫어서, 조용히 없는 듯 그림처럼 살았는데. 아프면 아프다는 소리 안하고 혼자서 약사먹고, 힘들어도 내색 별로 안하고 혼자서 해결하고, 배고프면 내가 찾아서 해먹고, 대학 다닐때 자취할 때도 김치까지 내가 담가 먹고 살았는데, 연로하신 엄마한테 신세지는 거 미안해서 내가 다 하고 살았는데....

 

딸과의 마음의 간격 좁히는 비결은

 

왜, 내 딸은 내 딸나이때의 나하고 판이하게 다른 걸까? 너무 풍족하게 키웠나? 아님 어렸을때 개념을 제대로 심어주질 못했나? 여러가지로 반성하고 자문해본다.직장에서 선배들 동료들하고 얘기해보면 비슷한 집이 많다. 요즘의 많은 아이들이 다 이럴까? 조금 아프면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조금 추우면 춥다고 쫓아다니며 인식시켜주고.

 

어쩌다 케이크나 쿠키라도 구우면 엄마 직장에 가서 함께 먹으라고 포장까지 해주곤 저녁에 오면 어땠었는지를 꼭 물어본다. 대답을 할 때까지. 설거지라도 좀 많이 했다 싶으면, 청소기라도 깔끔히  한 번 돌리면 했다고 꼭 확인을 한다.

 

어쨌든 딸하고는 부딪칠 때가 종종 있다. 요즘의 나름대로 터득한 해법은 말을 안섞는 것이다. 일단 말을 하면 내 입에서 짜증섞인 말이 나가니까,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대꾸를 안하는 것이다. 마치 못들은 것처럼. 그리고 가능하면 같은 공간에서 안부딪치는 것이다.

 

그래서 딸이 집에 있는 날엔, 내가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든가 여행을 가든가 어쨌든 밖으로 나간다. 출근하는 날은 퇴근을 늦추어 일을 하다가 늦게 들어가기도 했다. 서로 얼굴 볼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딸이 있으면 서로 의지하고 인생을 살면서 동성으로서 느낀 점을 같이 의논하고 공감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소통이 안되는 답답함은 엄마인 나만이 아니라 딸도 느끼겠지.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씨처럼 오피스텔이라도 얻어 구속받지 않는 나만의 자유를 누려볼 날이 내게도 올까?

 

 

 

2009.04.02 17:19ⓒ 2009 OhmyNews
#딸 #개념 #정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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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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