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교육수장들의 자율성 지수는 '빵점'

[주장] 정권과 교육감, 학교장들이 학교 자율성 말살의 진짜 주범

등록 2009.04.01 18:01수정 2009.04.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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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교육계 최대 화두는 '자율성'?

MB정부 교육정책의 핵심 화두는 자율성인 것 같다. 가끔씩은 다양성이라는 말로 변형되어서 사용되기도 하고, 경쟁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어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가장 큰 교육계 갈등의 씨앗인 일제고사 역시 경쟁과 자율이라는 이 기제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다.

2008년 교육계 갈등의 최고 화근이었던 4.15 학원자율화 조치 역시 학교 자율성 증대라는 미명 하에 0교시와 강제보충을 부활시켰다. MB정부 초중등학교 정책의 핵심인 자율형사립고를 비롯한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터의 명분 역시 자율성 증대를 통한 학교 다양화이다. 국제중과 특목고 확대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입시와 대학정책의 핵심인 대입 자율화 조치 역시 자율성 증대라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MB 정부 하에서 자율성이라는 말은 교육계 전 분야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학교의 자율성 강화를 반대하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자율성 증대가 누구의,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자율화라는 포장 속에 숨겨진 획일화라는 알맹이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과연 그들에게 자율화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2005년 교원 임면권 싫다면서 사학법 반대하던 300 사학 총장들

사립학교법은 2005년 내내 국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였다. 사립학교의 인사와 재정 등 거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이사회로부터 경영권을 제외하고 학교 교육과 직접 관련된 교원임면권과 학교 교육에 관한 권한을 분리하여 학교장에게 되돌리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었다.


사학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4월 대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학 이사장들이 사유재산 침해가 어쩌고 경영권이 어쩌고 하면서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이야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 총장들이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교원임면권을 받지 못하겠다고 하고, 사립대학장협의회 의장단에서 총장들에게 사학법 개정 반대에 대한 모든 행동을 위임한다는 백지 위임장을 받고 나선 것이다.

대한민국 진리의 상아탑의 수장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씁쓸한 장면이었다. 교육 전문가이고 교육주체들의 수장들에게 교육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주겠다고 하는데 이를 반대하고 나서는 사학총장들에게 자율권은 한낱 사치였던 셈이다. 그러고도 그들은 정작 교수들과 학생들에게는 왕처럼 군림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2009년에도 이런 모습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대학입시가 자율화되어 고교등급제가 시행되고 본고사가 도입되면 이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은 수도권의 소위 명문대와 지방의 몇몇 대학교밖에 없다는 것이 명확한데도 어느 총장이 나서서 입시자율화를 반대하였다는 뉴스를 볼 수가 없다. 이것이 2009년 대한민국 진리의 상아탑 수장들의 자화상이다.

2009년 공문 한 장에 벌벌 떨며 체험학습도 결정 못하는 1만 학교장들

현행 법률상 체험학습에 대한 허가권자는 학교장임이 명백하다. 즉, 체험학습을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권한은 오로지 학교장의 자율권에 속한다는 의미이다. 교육감 아니라 교육부장관도, 대통령도 학교장의 체험학습 허가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없다.

그런데 학업성취도 평가나 진단평가를 전수평가로 한다는 교과부의 공문 하나에 벌벌 떨며 1만에 이르는 학교장들이 일제히 그들의 권리인 체험학습 허가권을 반납해 버렸다. 자기들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된 자율권마저도 권한 없는 공문 한 장에 헌신짝처럼 버리면서 그들은 입만 열면 학교장의 자율권이 없다고 투덜댄다. 법에 따라 그 자율권을 행사한 전북 장수중의 교장 선생님은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는 것이 2009년 대한민국이다.

이것이 해방 이후 50년간 우리 학교의 수장들이 보여온 모습이다. 과연 학교의 자율권을 부정하는 것이 누구인가? 스스로 부여된 체험학습에 대한 자율권도 버리면서 학교장의 지위를 교육 주체들의 학교공동체 대표가 아니라 행정 관료 체제의 말단 관료로 전락시켜버린 것이 바로 그들 학교의 교장들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2008년 교육감 당선되자 대통령부터 찾아가는 공정택 교육감

교육의 자율성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이 과연 학교의 장들뿐일까? 2008년 7월 공정택은 최초로 1천만 서울시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서 서울시민과 교육주체들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비록 16%의 낮은 투표율과 40% 초반의 득표율, 그리고 강남 3구의 몰표라는 기형적 현상에 의해 '강남교육감'이라는 비아냥 속에 교육감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형식적 합법성을 갖춘 선거에 의해서 뽑힌 최초의 주민직선 교육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교육감이 된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청와대이고,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리고 그가 제일 먼저 밀어붙인 것이 서울 시민 70%가 반대하는 국제중이었고, 곧이어 자립형 사립고를 강행했다. 그러면서 그가 이런 정책을 밀어붙인 근거가 "대통령이 소신껏 하라고 했다"는 MB의 격려의 말 한 마디였다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올밖에 없다.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자신에게 주어진 교육 자치라는 자율권을 포기하고 정권의 하수인이기를 자처한 것이다. 1천만 서울시민과 150만 서울 학생들의 교육 대표로서 교육 자치공동체의 수장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정권의 임명직 관료로 전락한 참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공 교육감이 과연 학교의 자율성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

2009년 자율 평가하라는데 통일한다며 체험학습도 허용 못하는 시도교육감들

교육의 자율성을 스스로 땅바닥에 내팽개친 교육 수장은 비단 공정택 교육감만이 아니었다. 애초 교과부는 2008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표집 학교만 수합하고 나머지 학교는 학교별로, 시도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했다.

그래서 시험을 친 이후 표집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채점을 하였고 그 결과를 교과부가 수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가 교과부가 방침을 바꾸어 전국 모든 학교의 평가 결과를 취합하여 보고하라고 하더니 급기야 이를 모아서 2009년 1월에 공개했다.

교과부는 현행법상 초중등학교에 대한 지도감독권이 없으며 시도교육감이 지도감독권자이다. 교과부는 그럴 계획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럴 권한도 없었는데 모든 학교의 평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고,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마치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듯 학교장들을 다그쳐서 급하게 그 결과를 모아 교과부에 보고하였다. 임실의 사례에서 보여주듯 어쩌면 그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장들이 학교공동체의 대표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16개 교육감 모두가 지방교육 공동체의 수장이기를 포기하고 교과부 장관의 하수인으로, 정권의 마름으로 행세를 한 것이다.

2008년에 이어 이런 장면은 2009년에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임실을 필두로 하여 전국적으로 성적 조작과 파행 사례가 잇따르자 교과부는 결국 2009년 3월 11일에 예정되어 있던 전국 일제고사식 진단평가를 31일로 연기하고 0.5% 표집학교를 제외하고는 시도교육감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실시하도록 했다.

그런데 16개 시도교육감들은 다시 회의를 소집하여 결국에는 모두가 자신들의 자율권을 포기하고 모든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시간에 평가 응시를 강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한 번 그들 스스로 어떤 자율권도 가질 능력도, 의사도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학교를 관료체제의 말단 행정조직으로 전락시켜 자율성을 훼손시킨 장본인들

학교는 교육주체들의 희망의 공동체라고 한다. 학교는 결코 교과부 장관을 정점으로 하는 교육행정체계의 말단 하부 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학교장의 1차적 지위는 학교라는 교육공동체에서 그 학교 교육주체들의 대표이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장들은 자신의 권한을 교육주체들의 대표로서의 권한으로 인식하지 않고 정권과 교과부, 교육감에 의해서 부여된 권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 교사, 학부모의 백마디보다 교과부와 교육청의 공문 한 장을 더 무섭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의 학교장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교육주체들의 수장으로서의 자율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교과부와 교육청의 말단 관료로 행동하며, 교육주체들에게는 왕국의 군주처럼 군림하는 것이다.

시도교육감은 교육자치에관한법률에 의하여 교육자치 공동체의 수장이자, 주민 직선으로 뽑힌 주민과 교육주체들의 대표로서 자율권을 가진다. 그러나 공정택 서울교육감을 비롯하여 현재 16개 시도교육감들은 스스로 이런 지위를 망각하고 청와대가 임명한 행정 관료를 자처하고 있다. 이는 교육에 대한 자율성 침해일뿐 아니라 우리 헌법이 부여한 교육의 중립성 위반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교사들에게는 교재 하나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게 하고, 교과서 하나도 교사들이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현 정권이고 교과부장관, 교육감들, 그리고 학교장들이라는 점을 지난 교과서 파동에서 몸으로 보여주었다. 교사들에게는 계기 수업 하나도 학교장의 허가가 없으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또한 그들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학교 자율성의 수준이다.

입만 열면 교육의 자율성, 학교의 자율성을 외치는 현 정권과 시도교육감, 그리고 학교장들은 진정으로 우리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자율성을 한낱 비웃음 거리로 전락시킨 장본인이 자신들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입만 열면 자율성을 입에 올리는 그들이 자율성을 어떻게 말살하고 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입만 열면 자율성을 입에 올리는 그들이 자율성을 어떻게 말살하고 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자율성 #일제고사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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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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