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67) 코너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4] '서점 코너', '식당 소개하는 코너', '사진 찍는 코너'

등록 2009.04.09 11:39수정 2009.04.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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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서점 코너

 

.. 서점에 들어가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여행' '역사'라는 안내 표시와 더불어 '중독 증세와 회복' 코너가 따로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현실을 알 수 있지 않은가? .. <아이를 단순하게 키워라>(프레드 고스만/노혜숙 옮김, 현암사, 1997) 69쪽

 

"새로운 사실(事實)을 발견(發見)한다" 같은 글월은 으레 쓰기 때문에 굳이 손볼 곳이 있느냐고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새로운 일을 알게 된다"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안내 표시(表示)'는 '안내글'로 다듬고, '충분(充分)히'는 '넉넉히'나 '얼마든지'로 다듬으며, '현실(現實)'은 '참모습'이나 '우리 모습'으로 다듬어 줍니다.

 

 ┌ 코너(corner)

 │  (1) 일정한 공간의 구석이나 길의 모퉁이

 │      '구석', '모퉁이', '쪽'으로 순화

 │   - 청 코너 / 홍 코너 / 네거리에서 코너를 돌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  (2) 백화점 따위의 큰 상가에서 특정한 상품을 진열하고 팔기 위한 곳

 │      '가게', '방', '전', '-점', '집'으로 순화

 │   - 아동복 코너 / 상설 할인 코너

 │  (3) 어떤 일이나 상황이 헤쳐 나가기 어렵고 곤란하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코너에 몰리다 / 그의 회사는 지금 자금난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

 ├ … 코너가 있다

 │→ … 칸이 있다

 │→ … 자리가 있다

 │→ … 곳이 있다

 └ …

 

아무래도 거의 우리 말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만한 미국말 '코너'입니다. 물건을 파는 자리뿐 아니라, 골목을 가리킬 때에도 쓰이고, 힘들거나 어려운 삶을 나타낼 때에도 쓰이는 낱말입니다. 우리가 예부터 익히 써 오던 '구석'이나 '모퉁이'나 '자리'나 '벼랑' 같은 낱말은 어느새 뒤로 밀리고 밀렸습니다.

 

 ┌ 청 코너 → 파란 쪽 / 파란 옷

 ├ 코너를 돌다가 → 모퉁이를 돌다가

 ├ 아동복 코너 → 어린이옷 자리

 ├ 상설 할인 코너 → 늘 싸게 파는 가게

 ├ 코너에 몰리다 → 구석에 몰리다

 └ 코너에 몰려 있다 → 벼랑에 몰려 있다

 

격투기에서 흔히 '청 코너-홍 코너'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청홍'이란, 선수들 입는 옷이나 장갑 빛깔을 가리키는 만큼, '파란 옷-빨간 옷'이나 '파란 자리-빨간 자리'로 풀어낼 수 있어요. 쓰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국어사전 낱말풀이를 보아도 (1)나 (2) 모두 '코너'라는 미국말을 쓰는 일은 알맞지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맞지 않아서 고쳐써야' 하는 낱말임에도 버젓이 우리 삶터 구석구석 쓰이고 있어요. 어느 자리이고 함부로 끼어들어 쓰이는 낱말이며, 어느 곳이고 활개를 치며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 (어떤 책이) 꽂혀 있다

 ├ (어떤 책을) 팔고 있다

 ├ (어떤 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어떤 책이) 쉽게 눈에 뜨인다

 └ …

 

알맞게 쓸 말은 알맞게 쓰면서 우리 마음자리를 가다듬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합니다. 올바르게 쓸 말은 올바르게 쓰면서 우리 마음바탕을 추스를 수 있으면 얼마나 반가우랴 생각합니다. 즐겁게 쓸 말은 즐겁게 쓰면서 우리 마음밭을 일굴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랴 생각합니다. 싱그럽게 쓸 말은 싱그럽게 쓰면서 우리 마음그릇을 튼튼히 다스리면 얼마나 훌륭하랴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반가운 생각을 뽐낼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기쁜 사랑 나눌 수 있고, 우리 스스로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참말로 하기 나름 아닙니까.

 

ㄴ.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

 

.. 세 꼭지 가운데 한 꼭지가 '서울에서 오래되고, 그다지 크고 화려하지 않고, 주인이 직접 음식을 해 오고 있는 사연 많은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인데 그것이 꽤 인기를 끌었거든요 ..  <썸데이서울>(김형민, 아웃사이더, 2003) 298쪽

 

"크고 화려(華麗)하지 않고"는 "크고 멋지지 않고"나 "크고 예쁘지 않고"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직접(直接) 음식(飮食)을 해 오고"는 "손수 밥을 하고"나 "손수 밥을 내오고"로 손보고, '사연(事緣)'은 '이야기'로 손봅니다. "인기(人氣)를 끌었거든요"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눈길을 끌었거든요"나 "사랑을 받았거든요"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 식당을 소개하는 코너인데

 │

 │→ 밥집을 알리는 자리인데

 │→ 밥집을 보여주는 꼭지인데

 │→ 밥집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 …

 

보기글 앞쪽을 보면 "세 꼭지 가운데 한 꼭지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기글 뒤쪽을 보면 '코너'라고 적혀 있습니다. 앞이나 뒤나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한쪽은 '꼭지'이고 한쪽은 '코너'입니다.

 

그러면 두 낱말은 같은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셈이고, 사람들이 으레 쓰는 "방송 코너"는 "방송 꼭지"로 고쳐써도 괜찮다는, 알맞다는, 잘 들어맞는다는, 퍽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랴 싶습니다.

 

 ┌ 밥집을 다루는데

 ├ 밥집을 이야기하는데

 ├ 밥집을 보여주는데

 └ …

 

아니면, 뒤쪽은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밥집을 다루는데, 꽤 사랑을 받았거든요"처럼 고쳐써 봅니다. "밥집을 이야기하는데, 꽤 눈길을 끌었거든요"처럼 고쳐써도 되고요.

 

ㄷ.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

 

.. 체육대회 시상대에서 착안하여 미륵도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바다쓰레기 1, 2, 3위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시상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이다 .. <바다로 간 플라스틱>(홍선욱,심원준, 지성사, 2008) 113쪽

 

'착안(着眼)하여'는 '생각을 얻어'나 '좋은 생각을 얻어'로 다듬고, '발견(發見)된'은 '나온'이나 '주워들인'으로 다듬습니다. '확인(確認)하고'는 '알아보고'나 '살펴보고'로 손질합니다.

 

 ┌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이다

 │

 │→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칸이다

 │→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이다

 │→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 …

 

권투 같은 운동경기를 들려주건, 다른 어떤 운동경기를 보여주건, 또 운동경기 아닌 우리 삶을 이야기하건, "코너에 몰렸다"는 소리를 곧잘 듣게 됩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저이는 벼랑에 내몰렸다는 셈이군' 하고 생각합니다. '저이는 구석에 몰려서 괴롭겠군' 하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말 '구석'은 'corner'에 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모퉁이'라는 말도 들을 일이 없습니다. '絶壁'한테 밀려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벼랑'과 '낭떠러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손과 발과 머리와 입과 귀와 눈으로 우리 말을 내몰고 있다고 할까요. 내치고 있다고 할까요. 내동댕이친다고 할까요. 내팽개친다고 할까요. 우리 말을 내쫓고 미국말을 얼싸안는달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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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9 11:3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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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외국어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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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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