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신경민이 MBC 9시뉴스의 진행을 맡은 것은 작년 3월이니 우리는 고작 1년 남짓 그를 보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역대 어느 앵커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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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서울로 돌아와 청와대 첫 밤을 보냅니다. 하지만 지척에 집회 소리로 조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 박혜진 앵커 멘트) 이 대통령의 사과 담화대로 소통만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첫 진단부터 문제였는지 진심을 갖고 사람다운 사람과 소통해야 합니다. 시간도 넉넉해 보이지 않습니다. 출범 100일인 오는 3일과 9일 국민과의 대화를 기대해 보겠습니다."(2008년 5월 30일)
"(오늘 청와대 회견은 한 달 전 담화보다 훨씬 감성적이었습니다.'뼈저린 반성과 자책'이라는 표현과 또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이 뒷산 부분은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박혜진 앵커 멘트) 쇠고기 부분에서는 담화와 비슷했습니다. 협상을 서둘렀음을 인정한 점이 달라졌습니다. 대운하는 사실상 포기로 들립니다. 다만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라는 단서에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납니다."(2008년 6월 19일)"(이명박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 주식 발언을 해 소란하자 오늘 청와대 관계자가 해명했습니다. 이로써 발언 소동이 한 차례 더 추가됐습니다.- 박혜진 앵커 멘트) 이번에도 안타까운 점은 청와대가 이미 카메라에 찍힌 발언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고 애쓴 대목입니다. 조선과 중앙일보가 즉각 오늘 아침 사설에서 매섭게 비판한 점은 특히 눈에 띕니다."(2008년 11월 26일) 위 세 글은 모두 '힘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언론 본연의 임무라고 한 그의 말이 얼마나 어김없이 실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힘 있는 사람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데 별로 망설임이 없었다.
[클로징멘트#2] "법 공부한 사람 같지 않아 내일 다시 묻겠습니다""(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이 갑자기 바뀐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공식 설명은 피곤이 쌓이고 연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스스로 그만둔다는 겁니다.- 박혜진 앵커 멘트) 다섯 달도 안 돼 서울경찰청장 바꾸는 건 이례적인 인사입니다. 최근 한 청장의 집회시위 대응을 둘러싼 내외부의 평가 때문에 경질됐다는 관측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2008년 7월 22일) "(촛불집회 사건 몰아주기 배당에 대해 법원 고위층은 정상적이고 적법해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고 공식으로 답했습니다.- 박혜진 앵커 멘트) 그렇다면 법원장과 수석 판사가 그 당시에 무작위 배당으로 바꾼 건 평판사들 힘에 밀려서 그랬다는 얘기입니다. 70~80년대 어두운 시절, 법원이 누가 알까봐 숨어서 몰래 배당한 것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법원 답변이 너무나 법 공부한 사람 같지 않아서 내일 다시 묻겠습니다."(2009년 2월 23일)"(오늘 이 메일에서 사법부의 현재 모습, 배당에서 판결까지, 또 지방 법원에서 대법원까지가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 박혜진 앵커 멘트) 이상했던 시절의 이상한 사법부가 왜 2008년 이 시점에 다시 나타났을까요. 출세욕과 인사구조 때문에 계속 그래왔을까요, 또는 이번에 우연히 내 외부 여건으로 그런 걸까요? 답과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법원 간판만 바꾸느라 소란하다가 도로 사법부가 될 수 있습니다."(2009년 3월 5일) 위 셋은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의 공무 수행이 얼마나 사적이고 이기적인지를 알려 준다. 평소 무게를 잡고 권위를 부리던 사람들이 이런 보도 앞에서 여지없이 소인배로 전락한다.
이런 보도가 힘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예민하게 만들지는 눈에 보듯 뻔하다. 아울러 이런 보도에는 민주정신과 상반되는 권위주의를 냉철히 압도해 버리는 기자정신이 구현되어 있다.
[클로징멘트#3] "오히려 악플러가 측은해 보입니다""(여대생 머리를 짓밟는 군화와 직사 물대포에서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 수뇌의 다급함과 피곤한 전경의 화풀이만 보였습니다.- 박혜진 앵커 멘트) 이렇게 많은 열성 시민이 주말 새벽부터 밤까지 왜 그랬을까요. 만약에 배후가 있었다면 이런 시민을 동원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정부와 경찰이 아직도 디지털시대와 시민 분노를 이해하지 못 하고 7080식으로 대처했습니다."(2008년 6월 2일)"(거액을 기부해 온 탤런트 문근영씨에게 악플이 달렸습니다. 이 악플은 문씨의 기부와 상관없는 고향과 외조부 내력까지 들춰내고 있습니다.- 박혜진 앵커 멘트) 이래가지고는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악플러가 측은해 보입니다."(2008년 11월 17일) "(22년 전 오늘, 87년 6·10항쟁의 도화선이었던 박종철 군이 물고문을 받다 숨졌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지킨 대학 선배 박종운씨와 또 진실을 캐낸 안상수 검사는 정치에 입문했고 고문 정황을 처음으로 폭로한 오연상씨는 의사가 됐습니다. - 박혜진 앵커 멘트) 그를 역사에 되살려낸 데는 바른 길과 진실을 추구한 신문과 재야가 있었습니다. 살아있다면 40대 중반, 그가 지금 우리 사회와 언론을 어떻게 평가할지 오늘 문득 정말로 궁금해집니다."(2009년 1월 14일)위 세 클로징멘트에는 민중의 저항력에 대한 신뢰가 있는가 하면 이데올로기 대립의 비인간성을 보는 고뇌가 담겨 있으며, 민주화의 역정을 통시적으로 파악하는 안목도 깃들어 있다. 방송철학, 기자정신과 함께 높은 수준의 역사의식도 엿볼 수 있는 보도라고 본다.
신경민 앵커를 MBC 보도국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