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기획사에서 일하다 보면 '초대권'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물질에 약한 사람인지라 비싼 공연의 초대권일수록 기분이 좋더라구요. 공돈이 생긴듯한 느낌도 들구요. '에이콤'에 들어온 이후 일 년 동안 여기저기서 생긴 초대권 덕분에 학창시절 4년 동안 친구들과 보러 다닌 공연만큼 본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초대권이 생기면 열일 제쳐놓고 공연장에 쫓아가서 즐겁게 놀다 옵니다.
최근에는 뮤지컬 <영웅>의 한아름 작가가 쓴 연극 <청춘 18대 1>이라는 공연의 초대를 받아 두산아트센터를 놀러 갔습니다. 워낙 평도 좋고 보고 싶던 작품이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4명이 두산아트센터를 방문했지요. 마지막 공연이 며칠 안 남았던 때라 거의 매진이었는데 초대권은 2장이라 2장을 더 구입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초대권 2장만 더 있으면 공짜로 볼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2시간여가 흐른 뒤 공연장을 나왔는데, 공연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난 직후라 공연 시작 전에 들었던 생각이 미안해졌습니다. 친구들과 간단히 요기를 하러 나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연 기획사에 들어오고 난 뒤에 처음으로 내 돈을 지불하고 공연을 본 거더라구요. 그동안 초대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공짜 심리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은 많았지만 정작 내가 초대권을 가장 바라고 있었던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에 뜨끔하더군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을 귀에 닳도록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공짜 심리가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때 뜨끔했던 것은 아마도 배우와 스태프들의 몇 달 혹은 몇 년간의 노력을 초대권이라는 이름 하에, 내가 아까운 시간을 들여 감상해주는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을 그 순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연 기획사에서 여러 공연을 만들어나가면서 저도 초대권 발행하는 일을 여러 번 진행했습니다. 초대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더군요. 첫 번째로 공연을 위해 노력하고, 무대 안팎으로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초대권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공연의 흥행을 위해 진행하는 광고 및 프로모션에서 현금을 광고비로 지불하는 대신 액면가 기준의 티켓으로 지불할 수 있는 경우에 초대권을 발행합니다.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두 번째 이유로 발행되는 초대권입니다. 다량의 초대권이 광고 또는 프로모션 진행업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흘러가고, 초대권을 받은 사람은 공연을 공짜로 보게 되지요. 초대권으로 공연을 본 뒤에도 아낌없는 응원하고 소문을 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일부는 공연은 공짜로 볼수록 좋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듯싶습니다. 가끔은 인터넷 중고 시장을 통해 초대권을 팔기도 하구요. 그렇다 보니 공연을 제작하는 회사나 배우, 스태프는 좋은 공연을 만들고 나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잘 만들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초대권으로 인해 생기는 전반적인 문제가 어느 한쪽의 문제는 아닙니다. 공연 제작업체 측에서 당초에 초대권을 발행해서 뿌리지 않았다면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공짜표를 바라고 공연에 대한 적절한 가치에 대하여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테고, 더욱이 인터넷에서 초대권을 타인에게 판매하는 일도 생기지 않겠지요.
이 부분에서는 공연 제작자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공연의 자리 채우기 이상으로 공연 시장 전체의 질서와 공연 관람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책임감을 가지고 초대권의 적절한 사용을 해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것입니다. 공연을 사랑하는 관객들도 공연이라는 하나의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데에 있어서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도 꼭 필요할 것이구요.
이 글을 쓰면서 저 또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공연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업무 상에서 초대권 발행시 어떻게 정책을 세울 것인지에 대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자기는 공짜로 다 보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 말라는 소리냐'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저도 앞으로 좋아하는 공연을 볼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제 돈을 들여서 관람을 하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없는 돈 모아서 공연장에 데이트하러 갈 때의 설렘도 다시 느껴보고 싶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제가 공연업계에서 단순히 저희 미래를 위해 준비해나가는 것 이상으로 공연 전체를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작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앞으로 공연 시장이 성장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공연계 내의 규정도 더 탄탄하게 세워질 것이고, 관객들도 공연의 가치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 문화가 점점 더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그러면 공연 시장에서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즐겁게 일하고, 관객은 더 훌륭한 작품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토양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장병욱 기자는 에이콤인터내셔날 마케팅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9.04.15 18:0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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