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미국 러트거스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달라이라마가 연설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티벳에 대한 중국의 잔인한 통치에도 불구하고 무력보다는 평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앞장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 러트거스대
얼마 전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2500년 전 붓다는 뭇 중생의 고뇌와 고통을 헤아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그 영향으로 불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중에 하나가 되었고 최근에는 미국·프랑스 등 서구사회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는 부다바(Buddha Bar)라는 체인화된 레스토랑이 생길 정도로 대중들에게 깊이 파고들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오늘날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심리치유분야, 생명·평화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이 라마·틱낫한 스님이다. 두 사람은 중국의 티베트 침략과 베트남 전쟁과정에서 무력투쟁 대신 평화적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 공로로 달라이 라마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틱낫한 역시 후보로 추대된 바 있다.
한국에서도 달라이 라마나 틱낫한의 책은 종교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 화제를 모았고 달라이 라마의 경우는 참여불교재가연대를 중심으로 국내 불교계가 방한을 위해 노력했으나 중국의 눈치를 보기 바쁜 정부당국의 불허로 여러 차례 방한이 무산된 바 있다. 대신 종단 또는 개인차원에서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직접 찾아가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듣거나 면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도올 김용옥과 동국대 명예교수 황필호 같은 이들은 달라이 라마와 만난 후 책을 펴내기도 했다. 두 고승 외에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때 세계 '4대 생불'의 하나로 존경받은 캄보디아의 고사난다 스님(2007년 3월 입적)도 역시 평화운동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 내전 당시 전쟁에 맞서 목숨을 걸고 비폭력 평화 운동을 전개했고 전쟁 후에는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아직 내전이 끝나지 않았을 때 평화와 화해를 위한 행진인 '담마예트라(진리의 행진)'를 주도했으며 태국 인근 국경지역에 있는 난민 수용소에 불교사원을 세워 사람들을 구호하고 위로했다. 당시 크메르루즈군이 담마예트라를 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사난다 스님은 이를 굴하지 않고 평화행진을 계속했다.
내전이 끝난 후에는 평화협상이 진행될 때 크메르루주의 주장에도 경청할 것을 주문해 일부의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그는 "자비는 그들이 고귀하거나 저급하건 간에,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모든 생명을 감싸 안는다"고 말하면서 법구경의 구절인 "증오는 결코 증오에 의해 그치지 않으니 자비로써만 치유될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고금의 영원한 진리"라고 강조하며 화해를 주문했다.
그는 이외에도 1980년 UN 산하 기구 '평화 계획'을 설립했고,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의 날'을 제정했으며, 88년 캄보디아 종정에 추대된 이후 로마, 미국, 티베트, 영국, 호주 등에서 순회법회를 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고사난다 스님은 그 공로로 1992년 세계 인권상 수상, 1998년 나와노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과연 누가 적인가> <평화는 우리 모두의 목표> 등의 저서를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호국불교론 주장하며 승려 군입대 인정하고 권력에 순응
이처럼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고승들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은 고통의 현장에서 복수가 아닌 자비로서 상대를 껴안고 전쟁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많은 이들을 위로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숭산(2004년 입적)같은 분이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한국전쟁과 냉전이라는 숨 막히는 상황에서 자기 몸을 내놓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에 기여한 인물은 많지 않다.
요즘 들어 조계종을 비롯한 각 종단에서 남북불교 대표자간의 만남, 북한기아돕기, 금강산 신계사 복원 등 많은 일들을 했지만 본질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본질적이라는 것은 군비축소나 대체복무제 같은 것을 말한다. 요즘 이명박 정권의 졸렬하기 짝이 없는 대북강경책으로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불교계의 평화운동은 더욱 절실하다.
만약 군축이 너무 거창하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면 대체복무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있고 승려의 군복무 등 불교계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대체복무와 관련해 논란의 중심이 된 인물로는 불교신자인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한국학)와 오태양씨가 있다. 박 교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같은 저서를 통해 줄곧 이 문제를 제기했고 오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국가로부터 처벌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국불교가 승려의 군 입대를 인정하고 호국불교를 내세우는 것은 불교의 근본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자기 생명을 바치면서라도 불살상계를 지켜야 할 승려들이 정권의 안보논리에 순응하고 스스로 살생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군부통치시절의 왜곡된 호국불교론은 문제가 많지만 고려시대 몽고군과의 전쟁,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같은 상황에서 승군참여는 당연한 것으로 중생의 고통이 극단에 이르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에 호국의 긍정적인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승려의 군 입대에 대해서는 군이 존재해야만 한다면 그곳에서 장병들을 위무하고 포교 활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오히려 대승불교의 정신에 맞는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학자 헨릭 소렌슨은 불교의 윤리측면에서 승려의 입영은 그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모든 계율을 어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입영한 승려들은 육식과 음주, 흡연, 사창가 출입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출가 수계할 때 한 서원을 실제로 포기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불교의 모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것은 입영한 승려는 바라이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파계 행위는 전통적인 불교 수행을 하는 나라에서는 승단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불교인들은 이런 점을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수계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저 요식 행위란 말인가? 또한 그렇다면 한국 불교는 도대체 어떤 불교란 말인가?"(불교평론 2004년 10월호, 호국불교, 나라를 지키는가 정권을 지키는가?)바라이죄는 비구나 비구니가 승단을 떠나야 하는 무거운 죄로 음행·도둑질·살인·거짓말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호국불교론은 한국 불교계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뉴라이트불교연합(대표 장산)이나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상임회장 박희도)같은 불교계 보수우파조직은 아예 진보진영을 타도하기 위해 호국불교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 폐해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월남전 당시 일부 승려 소지공양 통해 참전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