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공장 노동자에겐 공정한 임금을, 인디 디자이너에겐 일자리를, 소비자에겐 친환경 제품을 제공한다는 게 지난 3월 소셜 벤처 오르그닷을 세운 김진화(33·오른쪽) 대표·김방호(31) 이사의 꿈이다.
선대식
왜 이들은 NHN(네이버)·다음에서 나와 봉제공장으로 향했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인터넷 기업에 다니던 20~30대 청년들이 회사에서 나와 옷 장사를 하겠다니.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도, 100만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자도, '눈물의 땡처리' 의류브랜드도 이들 눈에는 들어오지 않은 걸까?
바로 지난 3월 오르그닷(Org.)이라는 의류 생산·유통 '소셜 벤처'를 세운 김진화(33) 대표·김방호(31) 이사의 이야기다. 봉제공장 노동자에겐 공정한 임금을, 인디 디자이너에겐 일자리를, 소비자에겐 친환경 제품을 제공한다는 게 이들의 꿈이다.
그 꿈은 가상하나,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값싼 외국산 의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봉제공장 노동자에게 공정한 임금을 주는 것부터 쉽지 않을 일. 하지만 이들은 "그곳에 길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미 이들의 무한 도전은 1·2막을 거쳐 3막이 시작됐다.
[도전①] 최고의 직장을 그만두다오르그닷은 오는 25일 세상과 만난다. 이날 오르그닷의 꿈을 키우는 곳이자 인디 디자이너들의 전시 공간인 '오르그닷 갤러리'가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오픈하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오전 현장을 찾았을 때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또한 그곳으로부터 2분 거리에는 친환경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의 디자인소품과 공정무역 제품을 모은 편집숍(여러 브랜드 제품을 모아놓은 매장)인 '오르그닷샵'이 공사를 마무리하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이는 오르그닷의 또 다른 사업 축이다.
갖가지 윤리적·친환경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포털(관문) 사이트 같았다. 김 대표·김 이사의 이력과 겹쳐졌다. 이들이 포털사이트에서 느낀 건 무엇이었을까? 95학번인 김 대표는 대학교 때부터 인터넷의 소통 가능성에 주목했고, 2001년 다음에 입사했다.
"2002년 20대였던 대선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사회를 바꿔나가는 흐름에 동참할 수 있어 의미 있었고, 재미있었다. 시민들이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발언권을 되찾고 사회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다음이 공공적 미디어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 다음은 포털사이트 업계 1위로서 자신감과 에너지가 충만했다"면서도 "다음은 처음부터 공공적(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디자인되지 않은 곳이었다"고 밝혔다.
2004년 엠파스에서 지식검색 서비스를, 2007년엔 NHN에서 네이버 오피스를 담당한 김 이사는 "커뮤니케이션·교류에 관심 있어 엠파스·NHN을 선택했다"면서 "영리기업으로서 한계가 있었다, 하는 일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곳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10여명의 20~30대 청년들로 이뤄진 오르그닷의 구성원들 역시 안정적인 직장을 박찬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3년 5개월 동안 국내 1위 인터넷 서점인 예스24(Yes24)에 다녔던 이미정(28)씨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만뒀다"며 "주변에선 '거기 밥은 먹여주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20대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전②] 봉제공장을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