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이나 드세요' 했지만 자출족도 씁쓸합니다

자전거 출퇴근 즐거움 가로막는 과속 자동차

등록 2009.04.23 09:25수정 2009.04.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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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제가 파주에서 출퇴근하는 길입니다. 확 트인 경치에 선선한 바람마저 불어주면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출퇴근길제가 파주에서 출퇴근하는 길입니다. 확 트인 경치에 선선한 바람마저 불어주면 그야말로 일품입니다.김용국
▲ 출퇴근길 제가 파주에서 출퇴근하는 길입니다. 확 트인 경치에 선선한 바람마저 불어주면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 김용국

비가 온 다음이라 날씨가 쾌청합니다. 오늘도 출근길에 자동차를 집에 버리고(?) 자전거를 몰고 나옵니다. 집에서 사무실(파주교하읍에서 금촌동)까지는 10km 남짓한 거리입니다. 사실 차로 달리면 금세 도착하는데, 자전거를 끌고 나오려면 마음의 갈등도 심합니다.

 

옷을 갈아입고 이것저것 챙기는 것도 귀찮고, 자전거가 과속차량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될 수 있는대로 차도를 피해 논길로 한참 에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천성이 게으른 탓인지 몸이 자꾸 편해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자전거에 몸을 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달라집니다. 월요일에 비가 온 후 하늘은 더욱 푸르고, 논밭과 냇가의 새들도 저를 반겨줍니다. 상쾌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는 다리의 고통은 어느새 잊혀지고 맙니다.

 

제가 출퇴근하는 길은 철새들도 많이 찾아오고, 두루미 까치가 날아다니는 곳입니다. 아직은 훼손되지 않은 곡릉천을 사이에 두고 있는 데다 곡릉천을 따라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이 나옵니다. 가을엔 갈대밭이 장관을 이루어 사진사들이 제법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여름 밤에는 풀벌레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위를 식혀주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춘 곳입니다.   

 

이런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강적이 있었으니, 바로 자동차입니다. 사무실까지 가려면 몇군데 찻길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차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쌩쌩' 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멀리서라도 차들이 보이면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사무실까지 가는 길 절반쯤 다다랐을 즈음,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좌우를 살핀 후 도로를 가로질러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른쪽 2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오던 택시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환한 시간에 갑자기 쌍라이트까지 밝히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마치 "네가 자신 있다면 어디 한 번 가로질러 가봐라. 그러다 황천길 가도 난 책임 못진다"는 식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부딪쳐서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나게 생겼습니다.

 

작전상 후퇴!

 

눈물을 머금고 뒷걸음치며 오는 택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울에 비춰보고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거울에 비춰보고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김용국
▲ 거울에 비춰보고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 김용국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순간 저도 모르게 쏜살같이 지나가는 택시운전사 눈 앞에 중지를 들어보이며 속으로 외쳤습니다.(이럴 때 보면 제가 좋은 성격은 아닌가 봅니다)

 

"엿이나 드세요!"

 

제 '손짓'에 당황했는지 택시 운전사도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아 보였으나 워낙 순식간이라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제 앞을 지나간 택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속도를 늦추며 제 갈길을 갈 뿐이었습니다.

 

저는 자전거로 자동차의 흐름을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방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안전하게 갈 길을 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택시는 눈앞에 자전거가 보인다는 이유로 말 그대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집에 가는 길 조금만 더 가면 가족이 있는 집에 도착합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힘이 절로 납니다.
집에 가는 길조금만 더 가면 가족이 있는 집에 도착합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힘이 절로 납니다.김용국
▲ 집에 가는 길 조금만 더 가면 가족이 있는 집에 도착합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힘이 절로 납니다. ⓒ 김용국

물론, 이건 저만의 생각이고 택시 운전사는 또다른 항변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택시 운전사에게 보였던 저의 행동도 썩 잘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괜히 후회되고 마음이 씁쓸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도로에서 자전거나 사람보다 강자인 택시가 위협을 주면서까지 달릴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문명은 분명히 우리에게 편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세상을 빠르고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나 빨라지고 얼마나 더 편해져야 만족할까요. 사람을 위해서 만든 문명의 이기가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 얼마나 역설적인지요. 아침의 사건은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출근길 상쾌하던 기분은 갑자기 감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기분을 추슬러서 저녁에도 자전거로 퇴근할 생각입니다. 왕복 30km로 길을 달리는 자전거가 주는 기쁨을 마다할 수야 없겠지요.  

 

2009.04.23 09:25ⓒ 2009 OhmyNews
#자전거 #자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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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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