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는 일반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학자다. 하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미시 경제학'이나 '재정학'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이창용 교수와 같이 쓴 '경제학 원론', '미시경제학' 등은 가장 주요한 교재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주립대(올버니)에서 강의를 하다가 1984년부터 모교인 서울대로 와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학자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어찌보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상위계층이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는 보수적인 성향의 학자라는 평을 들었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완전한 연관관계를 둘 수 없지만 한미FTA에 대해서는 찬성이다.
그런 이준구 교수가 참여정부 후반부터 '좌빨'이라는 댓글이 달릴 만큼 강한 어조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또 한겨레에 칼럼을 쓰는 등 현 정부에 대해 계속해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빼어난 경제학자의 날카로운 칼 끝이 정부에는 달가울 리 만무할 것이다. 무엇이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를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될 만큼 화나게 만들었을까. 때로는 '바보'라는 간접적인 힐난까지 던지는 그의 책을 자세히 읽어봤다.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절망적인 외침을 패러디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막장을 향해 치닫는 우리 정부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메스를 대는 책이다. "검증되지 않은 소박한 아이디어에 불과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안타까움에서부터 대운하나 종부세 무력화, 교육 문제 등 경제학자지만 시평을 통해 활발한 자신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책은 나에게 90%의 공감과 10% 정도의 아쉬움으로 읽혔다.
첫번째로 메스를 들이댄 것은 대운하 사업이다. 그는 말도 되지 않은 편익 계산과 민자유치의 허구, 환경 문제 등을 주장하며 대운하 사업을 깨끗하게 접으라고 충고한다. '녹색(환경) 뉴딜(개발)'이라는 그 자체로 모순된 이 신화를 버리라고 주장한다. 토목사업으로 경기를 살린다는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대운하는 만들어 놓은 다음에 더 힘들어지는 괴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장에서는 종부세 문제 등을 바탕으로 주택시장의 문제를 지적한다. 2007년 1월부터 쓴 그의 글은 일관된 목소리로 투기판으로 전락한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고 버블을 줄이기 위해서는 종부세 유지 등 투기 억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사이 정부는 이 교수의 제안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유지했고, 다시금 주택시장은 요동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것은 시장에서 투기세력이 판을 칠 수 있게 한 환경이었다고 보고, 종부세 등이 막판에 영향력을 발휘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했다고 본다. 물론 이 종부세는 헌법재판소의 부분 위헌 판정으로 누더기가 되었고, 양도세 감면 등 현 정부의 정책으로 부동산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그는 지난 10년간 부동산 가격이 두배나 오른 것에는 "투기적 수요의 비교적 작은 변화가 큰 폭의 가격 변화를 가져온"(68P) 것으로 본다. "주택 가격의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의 억제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주택이 투자 수단으로 갖는 매력을 대폭 줄여야 한다. 주택을 아무리 많이 지어도 이 투기적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는 한 가격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수도권에서 새로 지은 주택의 80% 이상을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들였다"(79P)는 것도 그 근거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장치인 종부세 등의 골격에는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단기적 경기 부양에 마음이 팔려 그 기본 골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날이 오게 된다"(70P)고 봤는데, "이 점에서 볼 때 종부세는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다. 이 마지노선이 무너질 때 주택시장 안정의 보류는 여지없이 유린되고 말 것이다"(93P)고 봤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 교수의 주장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갔다. 종부세는 부분 위헌 판결로 누더기가 됐고, 다가구 주택자의 세금 면제 등이 이어졌다. "최근 들어 3~4% 정도 내렸을 뿐인데 큰일이 난 듯 대규모 개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런 든든한 후원이 있기에 부동산을 사잰 사람들은 늘 발 뻗고 잘 수 있다"(96p)고 본다.
실제로 보수 언론과 건설사들의 연합으로 부동산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고, 분양시장까지 활성화되고 있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의 입구에도 은행들이 매매가에 가까운 아파트 담보 대출을 해준다는 공고를 붙이고 있다. 이 교수의 주장대로 부동산 불패가 유지될 것 같아지자 버블이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주택 소비층이 생겨서가 아니라 정부의 부양책으로 내놓은 돈들이 은행으로 가고, 은행은 이 돈으로 다시 주택시장의 버블을 키우고 있다. 주택의 신규 수요자가 될 중산층은 현 위기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는데, 이미 주택을 보유한 이들이 새로운 투기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종부세가 부동산 가격을 잡는 괜찮은 수단으로 봤다. 하지만 현 정부는 종부세를 사실상 사장시켰다. 헌재가 결혼 중립성을 이유로 부분 위헌을 내면서 부부가 각각 등기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한쪽만 세금을 물리는 것이 "똑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는 똑 같은 조세 부담을 져야 한다는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128p)을 무시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정책이 실행됐다. 이 결과 "그들의 임기가 끝나는 날 우리는 역사의 시계가 최소한 20년 이상 뒤로 돌려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106p)는 이교수의 주장이 맞는 비극적 상황도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부자들의 마인드가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보주의인자인 척하는 '리무진 리버럴' 들이 판치는 이 사회의 미래를 암울하다고 봤다. 그런 상황이 결국 이 교수가 이 정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는 또 "보수진영의 오랜 꿈이었던 자율과 경쟁이 3불(본고사, 학교등급제, 기여입학제) 정책을 몰아내고 새로운 교육의 기본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194p)고 본다. "대학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인장받을 수 있는 좋은 연구업적을 내고 좋은 학생을 길러내는 것"임에도 대학이 금지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결국 대학까지 기득권층의 신분 유지 장소로 전락하는 것을 한탄한다. 실제로 경기고, 서울대 등 명문과정이 있는 KS시대보다는 평균화 세대인 제자들이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반열에 드는 사례가 더 많다는 예를 들며, 평준화가 교육의 질을 망치는 주범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필자가 그의 책에서 공감하지 않은 부분은 미국 금융위기를 아직은 미국 중심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찾아온 금융위기를 1990년 초 동유럽의 붕괴로 시작된 이념의 붕괴에 비유하면서 "미국의 사례를 통해 시장이 결코 만능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상, 이에 대한 적절한 감독과 통제의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289P)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 역시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국식 경제 이론으로 학문적 바탕을 세운 이 교수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지금 맞이하는 세계 금융위기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이 지난 수십년간 금융공학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버블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식량자원과 소프트웨어, 유학시장 정도다. 그런 미국이 과연 세계 기축통화를 찍어내는데 국제사회의 새로운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가다.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주도되어 유럽이 뭉친 상황이고, 아랍권도 노골적으로 유대인이 주축이 된 월가를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의 부흥을 위해서는 금융공학이 아닌 실물위주의 회전 시스템을 짜야 하는데 이는 미국이 주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여전히 미국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다. 물론 미국의 GDP 규모를 생각할 때 미국의 부활 없이는 세계가 대공황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주택시장을 환부마다 약을 바르는 대증요법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보듯이 세계 금융시장도 다시 미국의 버블을 키우는 식으로 되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그 주체가 중국 주도이든 유럽주도이든 설득력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사실 그의 책을 들고 우선 그의 홈페이지(www.jkl123.com)을 방문했다. 그의 강의하는 모습이 이제는 고인이 된 정운영 선생을 생각나게 했다. 좌파 경제학을 지칭하던 '정치경제학'의 대명사 였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만 가는 세상을 보고 갔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경제학'적인 시선들이 더 주목을 받아야하는 시점인데 그가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무덤에 있는 사람마냥 잘못된 세상에 침묵하는 대개의 학자들에 비해 이준구 교수가 빛나는 것은 이런 저작을 통해 세상과 호흡하기 때문이다.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푸른숲,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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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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